▶한국의 名人◀ (36) 단청장(丹靑匠) 정성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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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名人◀ (36) 단청장(丹靑匠) 정성길씨
(인천=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인천시 무형문화재 14호(2004년)로 지정된 단청장 정성길(50)씨가 인천 남구 주안동 수도사에서 자신이 제작한 단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씨는 30여년간 국내 100여개의 사찰과 궁궐의 단청을 제작해왔으며 현재 문화재청 단청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mina113@yna.co.kr (끝) |
(인천=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내가 작업을 해놓고도 어느날 작품을 다시 보면 색과 문양에 빠져들 때가 있어요. 작업에 쏟아부었던 혼과 열정이 꿈처럼 아련하게 되살아나는 거예요. 그 황홀한 순간들 덕분에 지금까지 붓을 못 놓고 있지요"
따스한 봄 햇살 속에 이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는 화려한 단청을 바라보며 단청장(丹靑匠) 정성길(鄭聖吉.50)씨는 첫마디를 뗐다.
인천시 무형문화재 14호(2004년)로 지정된 정성길씨. 인천 도심 속 작은 사찰 수도사(인천 남구 주안동) 안뜰에서 누빔이 들어간 회색 민복 차림에 수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인사를 나눈뒤 정씨가 기자를 이끈 곳은 인천 서구의 20여평 남짓한 작은 작업실이었다. 그곳에는 청룡금박, 봉황금박, 비천상 등이 그려진 갖가지 화려한 단청 작품들이 즐비했다. 장인이 걸어온 30여년 세월의 깊이와 무게가 전해졌다.
서울 우이동 도선사와 청주 용화사, 충주의 미륵사 등 국내 100여개 사찰과 궁궐, 전통 건축물 단청이 정 씨의 손을 거쳐 탄생됐다. 정씨는 자신의 작품들을 더듬어가며 지난 세월을 반추했다.
인천 영종도에서 태어난 정씨는 집안 어른들이 모두 불교신자였던 탓에 어릴때부터 집에서 가까웠던 천년고찰 `용종사'를 자주 드나들었다. 용종사에서 서까래를 장식한 단청을 올려다 볼때면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고 한다.
철이 들 무렵 어느날 알고 지내던 동네 형이 단청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후 무작정 그 형을 따라다니다 단청 분야에서 전국에서 가장 손꼽혔던 통도사 혜각스님(국가중요문화재 단청장 48호)을 알게 됐다. 1975년 열여덟살의 어린 나이에 스님을 찾아가 사사, 단청의 길에 정식 입문하게 됐다.
당시는 국내 섬유.직물산업이 한창 발전하던 시절이어서 부모님이나 주위사람들은 모두 재단사나 제봉사가 되라고 성화였다. 단청 작업을 하겠다며 후미진 산골 사찰에 들어가 2∼3개월씩 나오지 않는 정씨에게 주위사람들은 모두 `미친놈'이라며 혀를 찼다.
재단사 일당이 1천500원이던 시절 정씨가 단청 작업을 하면서 받은 일당은 고작 150원. 작업을 하러 절에 들어가면 동료들과 함께 일당을 모아 쌀과 연탄만 사다놓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낮없이 단청에 매달렸다.
그러기를 10여년.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화공, 도금, 옻칠 등에서 기능자로 인정받기 시작, 2004년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2005년엔 문화재청 단청 상시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단청은 그림처럼 색과 면으로 이뤄지는 하나의 미술이지만 건축물에 그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처럼 단순히 색을 잘 표현하고 문양을 정교하게 그리는 것 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단 한 곳의 틈도 있어선 안돼요. 색채와 문양이 건축물 전체에서 완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지"
본격적으로 단청에 대해 설명하는 정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정씨 역시 처음엔 색채의 황홀함에 빠져 정교하게 색을 칠하고 문양을 그리는 데 몰두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깔과 문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문양들의 크기와 배열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전체를 망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치를 터득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단청의 기본 색깔은 오방색(청.적.황.백.먹) 5가지. 이 색들을 물감이 없던 옛날에는 자연에서 구했다. 납으로 적색, 돌로 먹색을, 조갯가루로 흰색을 만들었다.
지금은 시중에서 물감을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어 물감을 만드는 어려움은 없어졌고 바탕에 초벌로 칠하는 흰색만 조갯가루로 만든 호분을 사용한다. 호분을 써야 질감이 매끄러워지고 색깔이 오래 보존된다.
안료 준비 이후 단청작업의 첫번째 과정은 출초 작업이다. 단청에서 `초'란 문양, 도안을 이르는 것이며 `출초'란 문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종이에 문양을 그린 뒤 송곳으로 선을 따라 작은 구멍을 촘촘히 낸다.
다음은 타초작업. 만들어진 출초를 단청을 넣고자 하는 석까래나 기둥에 대고 헝겊에 밀가루를 넣어 톡톡 두드리면 구멍들 사이로 하얀 밀가루가 묻어 밑그림이 그려진다.
그려진 밑그림에 색을 칠해나가는데 한 면에 기본으로 칠해지는 색을 초빛, 기본색이 조금씩 변형돼 초빛에 추가되는 색을 이빛, 삼빛, 사빛이라고 한다. 이 색들이 점점 추가되면서 단청을 화려하게 만든다.
단청에 주로 사용되는 문양은 병입구처럼 둥근 원형무늬에 한쪽이 잘록한 병머리초와 양쪽이 원형이고 중간이 잘록한 장구머리초 등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골격이 되는 문양을 `개풍'이라고 한다.
서까래 하나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이 개풍을 양쪽 끝에 1/3씩 넣고 가운데에는 `금(錦)초'라고 하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문양을 넣는다. 개풍들의 균형과 금초의 정교함. 개풍과 금초의 조화 정도가 단청의 수준을 좌우한다.
단청은 색칠작업 등에서 일손이 많이 필요해 국내에서 이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천여명에 이르지만 건축물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해 전체를 디자인,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정씨는 작품 전체의 빼어난 균형미와 함께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금초 문양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단청 작업에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씨는 거침없이 "혼"이라고 대답한다.
"혼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색과 문양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보는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해요. 선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이고 혼을 쏟아넣어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져 건축물이 더욱 아름답고 경건해지는 것이지."
정씨는 요즘 단청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 자체보다 대가로 받는 돈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지난 88년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전통 건축물의 신축과 보수 가 많아짐에 따라 단청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최근엔 단청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다.
그는 또 단청이 전통방식에만 매여 시대와 호흡하지 못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정씨가 최근 단청의 현대화, 대중화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얼마전부터 직접 만들어낸 현대적인 단청 문양에 서양화의 유화같은 채색방식,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을 사용해 종이와 삼베에 그리고 나무와 기왓장 등에는 단청 문양을 응용한 꽃이나 십이지간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만든 소품이 벌써 500여개.
지난해에는 소품 몇 점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고 노인대학 등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간단한 단청그리기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더욱 많은 이들과 단청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요. 지금까지 단청에 매달려온 열정을 더 불태워 우리의 전통미술인 단청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포부를 밝히는 정씨의 단호한 목소리가 단청의 빨갛고 푸른 색깔만큼이나 선명하게 가슴을 울려왔다.
mina113@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3/27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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