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지

(26) 경남 산청군 오봉마을

바보처럼1 2007. 8. 30. 21:18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6) 경남 산청군 오봉마을

지리산 아래 사방으로 뻗은 다섯 산봉우리 사이 분지에 자리잡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오봉마을. 산 아래 동네는 몇 십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도 해발 600m 고지에 위치한 이곳의 밤 공기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13가구 30여명이 살아가는 오봉마을의 토박이는 마을 최고령자인 이이순(83) 할머니. 나머지는 10여년 전부터 이곳에 요양차 이주해 눌러앉은 외지인들이다.17년 전 산세가 너무 좋아 터를 잡은 최호경씨. 그는 함양에서 종묘업을 하면서도 거주는 이곳에서 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만 들릴 때가 더 많은 지리산자락 마을. 산골마을 부부의 나지막하고 한가로운 대화가 훈훈하기만 하다.

최씨가 마을 자랑을 한다.“몇년 전 술땜시 간이 문드러질 정도로 상해서 들어 왔던 사내가 여 살문서 병이 싸악 나아가꼬 펄펄해져가 나갔다 카데예.” 물하고 공기가 ‘엉캉’ 좋았기 때문이란다. 페인트공장에서 일을 하다 폐에 이상이 생겨 낙향한 민대호(44)씨도 건강을 다시 찾았다. 지금은 집 앞으로 펼쳐진 지리산을 정원 삼아 토종꿀, 나물, 약초 채취를 하며 살고 있다.

마을 이장 강신국(57)씨는 기자를 만나자 찾아오는 데 고생이 많았다며 아내를 시켜 손수 만든 콩국수를 내온다.“산골이라 이런 거밖에 대접해 드릴 게 없어서….” 진하고 고소한 콩국에 소금을 반숟가락 정도 넣고 간을 맞춘 다음 국물을 맛보았다. 고소하면서도 입안 가득 느껴지는 풍미에 염치 불구하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함께 나온 겉절이의 감칠맛은 입안에 짝짝 붙는다.

“콩이며 배추며 이곳에서 나는 모든 게 농약을 안친 유기농 채소라예.” 주민 대부분은 특별히 농사를 짓지 않고 텃밭 정도만 일구며 지리산을 터전 삼아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몸에 해로운 농약은 아예 쓰질 않는다. 부족한 수입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 민박을 치며 메운단다.

이이순 할머니는 예전엔 산에서 곰, 노루 등 야생동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요즘은 먹잇감을 찾아 내려오는 멧돼지를 겨울철에나 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가 진리인 기라. 하늘 무서븐 줄 알고 순리대로 살믄 병도 안 생기고 생겼던 병도 시나브로 낫는다 카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들어와 살길 바라고 있다. 그래야 마을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풍토가 좋고 청정한 지역이라지만 새사람이 터잡고 살지 않으면 점점 쇠락하기 마련.

작은 오지마을에서 평화롭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론 외진 마을이 혹여 버려지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 같다.

마을을 뒤로하고 내려 오는 길. 이이순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다.“찬찬히 경치 보고 쉬엄쉬엄 가이소. 우리 마을 좋다꼬 이우재 소문도 쫌 내주시고예. 잘 댕기 가입시데이.”

글·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기사일자 : 2007-08-29    28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