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화가 김반산씨

바보처럼1 2007. 10. 12. 11:48
 
[편완식 新풍류기행]화가 김반산씨
화선지도 인생도 비우니 채워지더라
그가 저만치서 걸어 나온다. 긴 머리에 콧수염이 넉넉한 인상이다.그를 따라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서야 어느 다세대주택 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문을 열고 그가 안으로 이끈다. 계단을 오를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급경사의 좁은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 작업실이다. 생활은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작품들이 쌓여 있는 한켠을 가리킨다. 작은 방이 그곳에서 빼죽 얼굴을 내민다. 그제야 작업대 옆에 놓인 싱크대가 주방이란 걸 알았다. 모두 합쳐 보았자 20여평도 안 되는 공간이다. 작가의 생활과 작업이 공존하는 지하벙커인 셈이다.

비좁지만 아내와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하는 보금자리다. 어느 시대에나 가난했던 작가의 살림을 말해 준다. 아들녀석으로부터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곳에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 1층에 올라가 공동화장실을 쓰는 것이 불편해서 그랬겠지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자식마저도 희생시키는 것 같아 그림 그리는 일을 내팽개쳐 버릴까도 했다. 무얼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리는 일은 그의 존재 이유였다.

서울 외곽 경기 구리의 한 주택가 지하 월세집에 7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화가 김반산(45). 그는 이름처럼 자신은 산의 반(半山)이기에 나머지 산의 반을 그리기 위해 산다고 한다. 숙명적인 부족함으로 자신을 채색해 나간다고 했다. 무엇의 한 부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위대함의 근원이란 말이 떠오른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그렸다. 농촌 현실은 그런 그에게 그림 그려 밥이나 먹겠느냐며 재능을 애써 무시하게 만들었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시간이 나면 잡기처럼 그리고 또 그렸다.

어느 날 그림을 표구하러 갔다가 표구상에서 만난 화백이 그의 그림을 보고는 자신에게 그림을 배우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나중에 안 일지만 그는 청전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붓질의 기본을 그에게서 사사했다. 붓 놀림에 이력이 붙으면서 석도화집 등을 구해 10여년을 모사했다. 그제야 선을 그으면 나름의 그림이 됐다. 시간이 나면 화랑이나 표구사를 순례하며 많은 그림을 봤다. 안목을 키우는 눈 공부를 위해서다.

장벽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술계의 학맥·인맥 등에 치였다. 작품으로 말해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중앙미술대전 수상 이후 해외 아트페어에서 의외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해외 무대는 어느 대학 출신인지 따지지 않았다. 요즘 국내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그는 요즘 오히려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학생들 작품에서 틀에 박히고 뭔가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이론조차 버리려고 한다. 알면 알수록 틀에 얽매이는 것 같아 한땐 고민했다. 그것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웠다. 처음엔 공간을 채우려고 했지만 이젠 비우려 한다. 공간을 비울 수만 있다면 최고의 경지란 생각에서다.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 단순함이다.

가난한 살림으로 그는 한동안 경기 양평 문호리 셋집에서 살기도 했다. 개구리 그림은 거기서 태어났다. 한겨울 문짝 바람막이 비닐에 개구리 한 마리가 숨어들어 봄이 되니 말라죽어 있었다. 안됐다 싶어 캔버스에 옮겨 생명을 불어넣었다.

셋집이 팔려 쫓겨나듯이 나온 곳이 지금의 거처다. 요즘엔 야생화와 곤충의 이미지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야생난이나 개미가 화면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중앙은 비어 있다. 사각 금박이 화면 상단에 붙여지기도 한다. 그는 기하학적인 요소를 화면에 한번 던져 보았다고 한다. 사각의 의도적 개입이 밋밋한 화면에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40만원 월셋집 생활에 개인전 한 번 준비할라치면 쌈짓돈까지 다 털어야 하지만 최근 들어선 그림을 사 주는 이들이 늘어 행복하다.

다만 아내가 공장에 나가 번 돈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이 못내 미안할 따름이다. 그도 캔버스와 물감 등 작업 재료만큼은 아내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인테리어 벽화나 일본에서 주문하는 상업화를 간간이 그려 충당한다. 예전엔 아침 일찍 건물을 청소하거나 공사장 막일을 해 작업 재료를 샀다.

98년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보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 구름 소리를 그렸다. 하늘 등 공간의 작업에 치중했다. 자유롭고 호방하게 일필휘지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필력의 기운생동하는 감동이 시적 조형미로 넘실댄다. 과감한 생략으로 텅빈 하늘은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까지 만든다.

그의 붓끝이 화선지에 닿는 순간 삶의 희로애락은 묵향에 묻힌다. 작업은 현실이며 생활이다. 그러기에 일을 하다 보면 작품은 늘 그의 앞에 서 있다. 그와 일치된 그림을 갈망한다. 필력의 충동질에 내맡기고 싶다. 종국엔 행위마저 부질없다. 이런 사고는 행위를 하게 하고 행위는 사고를 자유롭게 한다.

가을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강둑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외로운 계절이다. 그에게도 헐렁한 바지 속만큼의 삶의 공백이 허허로움으로 찾아올 것이지만 붓을 다잡는다. 붓대를 휠 듯이 움켜잡고 손가락에 기를 모으듯 멈춰 서 있다가 붓끝으로 먹을 뿌리면서 화선지 위를 자유분망하게 노닌다. 긴장과 흥분됨, 천진스러우면서도 독수리 먹이 채듯이 강한 필력은 근성을 드러낸다.

모순 속의 조화가 삶의 원리라면, 그는 그림을 통해 불균형 속의 균형과 혼란 속의 단순함을 추구하고 있다. 한 예술가로서 그의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진정 예술이란 무언인가. 영원한 질문의 한 줄기 떨림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에게서 그림은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아름다워야 한다. 행위는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최근의 작품에선 한두 마리의 개구리만 텅 빈 화면에서 외롭다. 훨씬 고요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텅 빈 여백이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정제된 느낌이다. 그래서 훨씬 평온하다. 단순하고 명료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훨씬 근원적이다. 단순함은 살아온 세월의 지난함에 역비례하여 주어지는 깨달음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깨달음 속에 열의 의미가 담기는 것처럼. 그는 화면을 지워 가며 단순성을 말하고, 그렇게 회화와 다시 만난다. 삶이 완결 없는 과정 그 자체이듯이, 그의 그림은 완결을 목표 하지 않는 과정으로 열린 끝없는 질문이다. 생각의 번잡함을 지워 가듯이 그리기와 지우기의 반복이 그의 그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에게서 선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놔두는 것이나 같다. 선의 자유자재함은 선의 몸 마음이 드러나 춤추는 모습 같다. 순간의 시간을 담아내는 것처럼, 여운처럼 잔영처럼 그 흔적만 남는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바람의 숨결처럼 짧고 명쾌하다.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릴 듯한 선을 통해 그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그는 그림을 통해 고통을 경작하여 희망을 싹틔우고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이 상존하는 존재는 늘 슬프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울음은 눈물이 없다. 그가 흘려야 할 눈물은 붓 선이 대신한다. 눈물을 붓 선에 가르쳤다. 우주와 하나되는 순간이다.

그는 지금 어느메쯤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앞길을 보장할 수 없는 끝없는 유랑길 같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바람처럼 이 한세상 붓을 휘두르다 물처럼 흘러가리라.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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