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특이한 지형을 손에 꼽으라고 하면 빠지지 않을 곳이 마이산일 것이다.
산의 형세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다.
평지에 우뚝 솟은 생김새도 그렇거니와 사진으로만 접해 본 그 지질의 형태가 주변의 지형과는 판이하게 달라 항상 호기심을 품고 있다가 직접 확인하러 갔다.
마치 옛날에 엄청나게 큰 거인이 있어 전라도 시골마을에 콘크리트 흙더미를 두 덩어리 몰래 쏟아부어 놓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마이산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이산에는 산신부부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글 아래 참조)

나즈막한 산들 사이로 다소 쌩뚱맞게 두 봉우리가 솟아있다.
모르는 이가 봐도 저건 마이산이다.

마이산 도립공원으로 들어가 탑사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산인데, 지질이 가까이에서 보니 듣던대로 콘크리트 더미같다.
마이산을 이루는 주된 바위는 사질역암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 굳은 바위를 말한다.
사질역암은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지만, 바다속이 아닌 내륙지방인 이곳에 역암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마이산 정상 부근에서 7천만 년전에 살았다고 하는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조개류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이산 자리가 먼 옛날에는 호수나 강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백악기에 이르러 지층이 솟아 오름으로써 지금의 고지대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탑사로 가는 길에 마이산이 통째로 비칠 듯한 '탑영제'라는 호수가 있다.

누군가 정성스레 쌓은 돌....마이산 탑사가 있는 곳은 기가 센 곳이라고 한다.
한겨울 산 골짜기에 물을 떠 놓으면 고드름이 거꾸로 치솟는다고 한다.
이런 신비함 때문에 마이산은 오래전부터 영산(靈山)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기도의 효험이 있을거란 믿음에선지 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작은 돌탑들이 쌓여 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마이산탑사다.
사진으로 많이 접해봐서 별 기대를 안했는데, 탑사의 지형적 위치나 돌탑의 축조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실제로 보니 그 신비감이 더하다.
이갑룡 처사란 분이 30여년 동안 108기의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수박크기의 돌덩이에서 부터 엄지손가락 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얹어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 다르다.
높이 15m, 둘레 20여 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
돌탑들은 그 쌓은 정성도 감탄할 만하지만, 1백여년의 풍상속에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덕 없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탑을 쌓은 것은 두가지 방식이 있는데 피라미드 형식과 일자형 탑인데 피라밋 형식의 탑은 타원으로 돌아 올라가며 밖으로 돌을 쌓고 안으로 자갈을 채우고
그속 가운데 비문을 넣고 올라가며 쌓은 것이다.
또한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을 올리는데는 100일 정성의 기도 후 올렸다고 한다.

왼쪽편 건물은 영신각, 중앙에 있는 건물은 대웅전이고, 대웅전 뒤에 뾰족한 한 쌍의 탑이 80여기 돌탑중 가장 큰 천지탑이다.
탑사 주변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쌓여 있다.
그래서 태풍이 불어도 그 산봉우리들이 병풍 역할을 하여 돌탑들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갑룡 처사의 기공력으로 쌓아 그렇다는 설도 있는데 증명할 길이 없고, 내 생각엔 지형적 조건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탑들이 아무 위치에나 서있는 것 같지만, 지리적 조건, 우주의 원리,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져 모두 계산되어져 쌓아진 것이라고 한다.

탑사 벽면에서 자라고 있는 능소화나무...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할 뿐이다.
탑사 주지스님이 심은 능소화라고 하는데, 담쟁이처럼 절벽을 타고 올라 끝까지 뻗어있다.
내년 여름에 와보면 과연 능소화가 어떤 모습으로 피어있을까...몹시 궁금하다.

손만 살짝 대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롭게 서있는 돌탑이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이다.
대웅전의 바로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돌탑들을 쌓은 이갑룡 처사는 1860년 임실군에서 태어난 효령대군의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고,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타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 상단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고 한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한 탑이다.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탑사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은수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이 절쪽으로 가면 멀리서 보았던 두 뾰족한 봉우리를 가까이 볼 수 있다.
한 봉우리는 암마이봉, 한 봉우리는 수마이봉이라고 부른다.
절 뒤쪽으로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수마이봉이다.
코끼리를 닮기도 했고, 사람 얼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에 수마이봉 앞쪽에 위치한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암마이봉...
암마이봉의 남사면에는 마치 공룡알로 찍어 누른듯, 거인의 발자국인듯한 형상을 한 커다란 구멍들이 푹푹 패여있다.
내외부 열차로 생기는 이러한 풍화현상을 '타포니'라고 부른다.
이 타포니는 동, 서, 북쪽에는 없고 오직 남쪽 면에서만 볼 수 있다.
마이산의 타포니처럼 집단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대규모의 타포니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절벽 움푹 패인 곳에도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절벽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쌓기 힘든 위치에 있는데 과연 누가 쌓았을까 혀를 내두를 뿐이다.

돌탑들 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관람시간 한 시간 정도 예상했었는데, 구석구석 보다보니 세시간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징하다, 이눔의 '궁금하면못참아'병!
마이산 탑사에 흰눈이 가득 쌓인 동화속 같은 사진을 봤다.
가을 단풍이 황홀하게 물든 사진을 봤다.
봄에 탑사 올라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벚꽃나무 사진을 봤다.
여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능소화 나무가 절벽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다음엔 어느 계절에 다시 찾을까 고민 중이다...
※ 마이산의 전설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 나라에서 ?겨난 한 산신 부부 내외가 이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다.
남편산신이 아내산신에게 승천할 때 사람들의 눈에 띄면 부정을 타니 한밤중에 승천하자고 말하자 아내산신은 한밤중은
무서우니 이른새벽에 승천하자고 한다.
남편 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마을의 어느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화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 댔다.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 차고는 두 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수마이봉(해발 673m)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암마이봉(667m)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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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탑사http://www.maisantap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