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춘성의 건강칼럼] 산악인과 외과의사

바보처럼1 2008. 6. 30. 21:08

[이춘성의 건강칼럼] 산악인과 외과의사

전문 산악인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다.8000m 봉우리 하나 올랐으면 그만둘 법도 한데,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떠너는 엄홍길씨나 박영석씨 같은 산악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산행을 위한 경비를 마련해야 하고 스폰서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한다. 명예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8000m 정상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올랐기 때문에 맨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 경’과 같은 영예는 기대할 수 없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무모함으로 비쳐지는 산악인들의 위험한 산행. 도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모험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외과의사인 필자는 이들이 줄기차게 산을 타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자아 실현, 즉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외과 의사도 매일 간이식 수술, 심장 수술, 척추기형 수술, 뇌 수술 등 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을 한다. 위험한 수술을 하면 월급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병원은 오히려 위험이 높은 수술을 싫어한다. 만에 하나 의료사고라도 나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간이식 수술을 하는 의사나 정신과, 피부과 의사나 월급의 차이도 크지 않다. 산악인들이 위험한 산을 피하고 매일 북한산이나 도봉산만 오른다면 과연 만족할까. 아마도 “도대체 나는 세상을 왜 살까.”라는 자괴감으로 괴로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험하고 힘든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들이 매일 간단한 수술만 하면 자신과의 타협이라고 느껴져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8000m 정상을 정복한 뒤에 느끼는 만족감과 희열은 대수술을 집도한 뒤 외과의사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그 감정은 물론 오래 가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면 또 다른 봉우리에 도전하고 싶듯이 외과의사도 또 다른 수술을 시도하게 된다.

산에서 예상치 못한 기상변화로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외과의사도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에 맞닥뜨릴 수 있다. 산악인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게 온갖 안전장치를 갖추는 것처럼 의사도 만전을 기한다. 우리사회의 관심도 중요한 안전장치다. 포기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격려해야 정상을 정복하고 고난이도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기사일자 : 2008-06-14    22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