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年15억원 수입 ‘주산사랑영농법인’ 김상음 대표

바보처럼1 2008. 7. 7. 20:59
[문화일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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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1촌 운동-스타 농민>
“친환경 쌀-가공식품 승부, 땅은 거짓말 모르더라구요”
年15억원 수입 ‘주산사랑영농법인’ 김상음 대표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김상음 주산사랑영농법인 대표가 31일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마을에서 모내기에 쓸 모판을 들어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심은 만큼 거두고 땀 흘린 만큼 얻게 돼 있습니다.” 김상음(42) 주산사랑영농법인 대표는 귀농인 아닌 귀농인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18년전 그가 처음 농사꾼이 됐을 때 그는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도 모르는 ‘도시인’이었다.

31일 오전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들판에는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어린 모들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수확을 앞둔 보리들도 누런 빛을 뽐내고 있었다. 주산사랑영농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1모작 모내기를 모두 마쳤다”며 밝게 웃었다.

서울에서 석수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김 대표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지난 1989년.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몸져 누우신 게 계기가 됐다.

“당장 추수를 해야 하는데 일손이 없더라고요.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내려왔죠.”

김 대표는 고심 끝에 귀농을 결심했다.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한 번 부딪쳐보자는 심정이었다. 2년간 농사일을 배우고 영농후계자, 전업농 선정을 받아 ‘진짜 농사꾼’이 됐다. 그가 친환경 농법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즈음의 일이었다.

“다른 일보다 농약 치는 게 제일 힘들더군요. 돈이 되겠다 싶었다기보다 이제 약은 안 쳐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죠.”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자 수입도 늘기 시작했다. 마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쌀 수입 개방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고 김 대표는 마을 젊은이들을 설득해 영농법인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99년 20여 농가로 시작한 주산사랑영농법인의 시작은 초라했지만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법인 설립을 함께한 이사들이 대부분 저 같은 귀농인들이죠. 고향에서 계속 농사를 지었던 사람은 1명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영농자금을 받아 농기계들을 현대화하는 일에 착수했다. 직거래 판로를 뚫기 위해 트럭에 쌀을 싣고 대도시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법인 설립 7년만에 이들은 연 15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부농이 됐다.

“단순히 밥상에 올라가는 쌀만으로는 경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가공식품과 차별화된 쌀로 승부해야지요.”

친환경 재배쌀인 ‘배메쌀’, 특유의 까칠함을 없앤 개량 발아현미 등이 이렇게 탄생했다. 대기업 유통망과 직거래로 중간 마진을 없애고 대학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쌀을 응용한 가공식품 개발에도 눈을 돌려 당뇨병 환자들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현미스낵도 만들어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촌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김 대표는 오히려 농촌에서 희망을 본다.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농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땅을 일구며 사는 게 꿈이에요.”

김 대표의 다음 목표는 소득원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김밥용 쌀, 만두용 쌀, 두부용 쌀 등 특화된 상품을 생산하고 바이오디젤의 원료가 되는 유채 시범경작도 시작했다. 농사일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껄껄 웃었다.

“농사일을 20년 했지만 아직도 재미있어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기 일쑤입니다. 흘린 땀만큼 결과를 보여주는 농사일처럼 즐거운 게 어디 있겠어요?”

부안 =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