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스스로 살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직접 재배한 콩과 고추로 전통 된장을 담그는 서분례(여·60) 서일농원 대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20일 경기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서일농원에서 만난 서 대표는 “신뢰만 회복하면 아무리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와도 우리 농촌은 끄떡없다”고 말했다. 신뢰만 쌓으면 제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보다 신뢰가 먼저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서 대표가 지난 24년 동안 전통 된장을 만들면서 재료는 반드시 직접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작물만을 고집해온 이유도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다.
서 대표는 “농촌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흙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흙을 살리면 무엇을 심어도 잘되고 유기농사도 흙만 좋으면 잘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실제로 그가 지난 1983년 이곳에 농원을 세울 때만 해도 주변 흙은 온통 산성화돼 있었다. 그러나 제초제를 쓰지 않고 퇴비를 꾸준히 갈아주자 거짓말처럼 흙은 다시 살아났다. 땅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 대표는 연간 300가마의 콩을 수확해 된장을 만들었다. 35t 정도의 된장이 나오는데 이 정도면 10만명 정도가 먹는다. 서 대표가 된장을 팔아 올리는 수입은 연간 15억~20억원. 놀라운 점은 서일농원 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 중 상당수가 외지에서 이곳까지 직접 찾아와서 사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취미로 된장을 만들다가 이를 팔기 시작한 것은 15년전.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입소문을 탄 결과다.
서 대표는 두 손 놓고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오기만을 기다리진 않았다. 9만9000㎡(3만평)의 농원 전체를 거대한 전통된장 체험장으로 꾸며 사람들이 보고 만지고 먹으면서 전통된장의 좋은 점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잘 정돈된 농원 한편엔 콩을 삶는 데 쓰는 13개의 무쇠 가마솥이 장작불을 때는 부뚜막마다 걸려 있다. 원두막 지붕 밑엔 건조된 메주들이 한가득 달려 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된장 등 장류를 담가 놓은 2000여개의 항아리들이 장독대에 늘어서 있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 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여름이면 연꽃이 활짝 피는 연못이 나오고 콩·매실·배 등을 심은 밭들이 나온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식당에 들르면 시식도 할 수 있다. 휴일이면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밀려오는 이곳은 최근 인기리에 상영됐던 영화 ‘식객’의 촬영장소로 쓰이면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23년간 여행사를 운영했던 서 대표의 손끝에서 농원 전체가 잠시 와서 산책도 하면서 쉴 수 있는 관광농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 대표는 “실제로 보고 먹고 만져 본 뒤 좋다는 평판이 나와야 확실한 입소문이 나는 법”이라며 “이곳을 찾는 분들이 더 즐겁게 다녀갈 수 있게 장류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031-673-3171
안성 =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