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③전경련-산악인 엄홍길
바보처럼1
2008. 9. 18. 11:06
<‘1사1촌’ 세상을 바꾼다> ‘山 사나이’ 엄홍길 “1사1촌이 농촌어린이들에 꿈 심어줘” |
③전경련-산악인 엄홍길 |
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 |
“어린이 여러분, 자승최강(自勝最强·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하다는 뜻)해야 합니다. 자!승!최!강!, 뭐라고요?” “자!승!최!강!” 갑작스러운 기습 폭우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지난달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전국경제인연합회관의 작은 강의실이 어린이들의 외침으로 잠시 흔들렸다. 아직 등산이 무엇인지, 에베레스트가 무엇인지도 모를 아이들이지만 ‘히말라야 16좌’를 정복한 산악인 엄홍길(48)씨의 쩌렁쩌렁한 강연 앞에서 그가 걸어온 쉽지 않은 인생을 이해하는 듯 진지하기만 했다. 이날은 전경련과 ‘1사1촌’ 결연을 한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소재 희양분교와 유치원 아이들 20명이 전경련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서울 구경에 나선 날이었다. 지난 2006년 여름 전경련은 이 마을에 귀농한 전경련 직원의 중재로 이 마을과 1사1촌 결연을 하고 매년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 구매하고 있다. 새벽 일찍 버스를 타고 상경한 때문인지 일부 지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엄씨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린이 여러분, 이 대장님(엄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을 다닐 때 정말 못사는 나라의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그곳 아이들은 산 길을 두 시간씩 걸어다녀요. 학교에 의자도, 책상도, 칠판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요.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세요. 여러분들은 그 친구들에 비하면 너무 행복한 겁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엄씨가 동영상을 틀었을 때 정절에 달했다. 엄씨가 16좌를 등극하기까지의 역경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정리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눈사태를 맞은 엄씨 일행과 크레바스(Crevasse·빙하나 설원에 생긴 깊게 갈라진 틈)에 빠져 발목이 부러진 엄씨가 고통에 신음하는 순간엔 침을 ‘꼴깍’ 삼키기까지 했다. 엄씨가 부러진 다리를 끌고 무사히 하산하자, 이내 아이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그의 승리를 축하하기도 했다. “여러분, 만약 대장님이 다리가 부러지고 눈보라가 치는 상황에서 ‘나는 할 수 없다’고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저 높은 산들을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며, 저 차가운 눈속에서 영원히 잠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안좋다, 싫다, 힘들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해요. 그래야 꿈도 이룰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로 여러분들한테 달려 있어요.” 그는 “비록 요즘 농촌생활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기가 죽어서는 안된다”며 “항상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약간은 어렵게 들릴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한 시간가량의 강의는 사뭇 진지하게 진행됐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엄씨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사인 요청을 하나하나 들어주는 세심함도 보였다. 조심스레 메모지를 내민 한 아이의 이름을 묻더니 ‘한준이에게! 꿈을 이루기 바랍니다. 도전! 엄홍길’이라는 사인을 써줬다. 이날 동행한 학부모 양애진(39)씨는 “아이들이 이렇게 진지한 것은 처음봤어요. 애들 눈빛을 보세요. 오늘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억 못해도, 강연 내용이 무엇인지는 다 알아들었을 겁니다”고 말했다. 이날 엄씨가 아이들에게 던진 결론은 바로 ‘극기(克己)’였다. “어린이 여러분, 싸움을 잘하는 게 강한 게 아닙니다. 친구를 이긴다고 강한 게 아니에요. 바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자승최강해야 해요. 자승최강.” 아이들은 엄씨와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 하고, 전경련의 도움으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여의동 LG트윈타워에서 LG그룹이 자랑하는 사이언스홀을 견학했다. 다양한 게임과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면서 시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디지털 세상을 만끽했다. 문경으로 돌아가기 전엔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프로그램인 ‘어린이난타’도 관람했다.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이들을 따라온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더 신나 보였다. 이들 20명의 어린이를 이끌고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귀농인 장경영(48)씨는 “우리 마을이 전략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전경련측이 사줌으로써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어주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1사1촌 운동’은 물고기를 준다기보다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재활 훈련인 셈”이라고 말했다. 엄씨는 “전경련의 1사1촌 교류 덕분에 오늘 소중한 만남을 가졌다”며 “1사1촌 교류가 농촌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