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뜨락

가을 1

바보처럼1 2008. 9. 18. 12:34
  • 가을 1
    정 훈 소

    가족들 외출하고
    하루종일 전화통 앞에 붙어 앉아
    가족들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외출한
    가족들 대신 받아주다 보면 자꾸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비가 조금 온다
    비가 오고 잠도 안 오는 날
    기분도 그런데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친구나
    내가 아는 사람 중 누구를 하나 불러내려고
    아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적힌 수첩을 뒤적이다 보면 내가 지금껏
    헛살았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헛살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나의 목을 조른다

    ―신작시집 ‘정훈소 시집’(뿌리)에서
    ▲1963년 충남 서산 출생
    ▲1996년 계간 ‘뿌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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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09.12 (금) 14:53, 최종수정 2008.09.12 (금)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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