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워싱턴에 낙엽이 우수수 쌓이던 어느 가을, 헨리 키신저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환담했다. 그 당시 국제정세는 이라크전에서 미군 3000명의 사상자로 육박하면서 부시의 인기도는 곤두박질을 쳤고, 미국의 이라크전 수행에 대해 미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응시해야 할 때였다. 부시행정가 곤경에 처했을 때, 닉슨행정부 시절 대통령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외교 현안문제를 언급하는 주요한 면담시간을 가졌다.
헨리 키신저는 1968년 공화당 대선시절 록펠러의 외교수석이었는데, 닉슨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닉슨행정부 시절에 외교안보보좌관, 국가안보협의회 의장과 국무장관(1973-77)으로 발탁된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다. 키신저는 1938년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며, 1954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교수가 되었다. 키신저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19세기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한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메테르니히의 세력균형 노선을 바탕으로 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익을 우선시하는 그에게는 正義, 道德과 倫理라는 개념은 일종의 사치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1957년 〈핵무기와 외교정책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을 출판한 이후 미국 전략정책의 최고 권위자로 부상했다.
부시; (피곤하고 짜증나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키신저 박사, 이렇게 來訪해 주어서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국무장관 곤잘레스 라이스가 키신저 박사로부터 좋은 충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어요. 골치 아픈 일이 많아요.
이라크전쟁이 무한정 길어지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북한의 김정일은 핵문제로 애를 먹이고 미국 경제도 좋지 않으니 밤에 잘 잠이 오지 않아요. 이러다가 ‘최악의 대통령’이란 역사적 평가를 받게 생겼어요. 어디 좋은 해결책을 없을 까요?
키신저; 감사합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 노심초사 국정을 운영하시느라, 벌써 흰머리가 많이 났군요. 사실 이라크전쟁은 너무 무리를 했어요. 사담 후세인을 응징한 이후에 재빨리 발을 빼는 방안을 마련했어야하는데 시간을 너무 끌었습니다.
저도 베트남전쟁 후반기 닉슨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에 기용되어 베트남전쟁을 수습하느라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라크전에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쿠웨이트의 침략과 독재정원이라는 것을 구실로 후세인 독재정권을 붕괴시켰지만, 아군의 희생이 너무 컸어요. 다행히 석유를 확보했지만, 막대한 전비 등 너무 손해가 큽니다. 점차적으로 철군 방향을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부시; 키신저박사는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75년 베트남의 공산화만 되지 아니었어도, 73년의 파리평화협정이 더 높이 평가를 받았을 텐데, 노벨평화상이 무색해졌어요. 정말 아쉬워요. 사실, 이라크전을 벌린 것은 다목적 카드였어요. 21세기에 에너지 특히 석유문제는 심각합니다. 중국과 인도가 해외시장에서 석유를 무한정 매점매석하고 있었고, 이라크에도 석유를 눈독 드리고 있었고 후세인이 우리 석유기업들의 석유채굴권 참여를 거절하기에 손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후세인 정권을 쉽게 붕괴시켰는데, 수습이 어려워요. 당장 철군하면 이라크에서 정국이 불안정하게 되어 內戰이 발생하므로 우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안정시킨 후 철군을 고려하려 합니다.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김정일이 끝까지 완강히 저항하고 있어요.
키신저; 이라크전쟁은 베트남전쟁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국이 제3세계에 무한정 주둔하거나 그들을 무한정 지원할 수는 없지요.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베트남에서 미군철수가 불가피했지요. 10여년동안 싸웠는데, 죽도록 싸워주어도 베트남에서는 반미운동을 더 격화되었고, 하노이로부터 침투한 간첩이 사이공 권력 핵심부에까지 침투해 있어서, 미군정보가 줄줄이 새어서 하노이로 흘러갔습니다.
미국내에서는 68년 테트공세이후 반전데모가 격화되었고, 하노이의 사주를 받은 베트콩은 결사항전의 태도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계속 싸워도 승산이 없었어요. 사기가 떨어져서 더 이상 싸울 기분이 나지 않았지요. 73년에 베트남에서 미군철수가 없었으면, 국력은 더욱 소진(消盡)되었을 것입니다. 공산화되어서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미국 국력의 손실(損失)을 막았다는 점에서는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이라크전쟁을 보고 김정일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볼 때, 사담 후세인처럼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무참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핵개발 이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김정일은 핵무기개발을 포기를 하지 않은 채, 미국 등 우방국으로부터 에너지 등 자원을 원조를 받으면서 체제유지를 하겠다는 전략이지요.
그렇더라도 북한과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핵문제를 처리해야합니다. 이라크전쟁에서 많은 국력의 소모가 있어서 북한과 강경대응책이 능사가 아닙니다. 만약에 무력으로 응징한다면, 북한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겠지만 중국과 전쟁을 불사해야하고, 남한의 미군들이 희생이 클 수도 있지요. 3차대전의 위험도 있어요. 북한에 석유가 있지도 않으므로 미국이 쳐서 얻을 수 있는 자원도 없어요.
이라크전쟁으로 막대한 전비가 투입되었고, 무역적자에 재정적자가 합쳐져서 천문학적 재정적자가 기록되었는데, 북한을 공격할 전쟁 비용을 어디서 감당합니까? 현재 1년 복무의 지원병제도로는 무력분쟁에서 현실적으로 미국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어요. 미국민들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크다고 봅니다. 북한이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한국과 중국이 북한사태를 둘러싸고 분쟁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요.
미국에게는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즉 한반도에서는 근본적으로 현상유지 정책을 펴 나가야합니다.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면,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불문가지입니다. 미국에 이득이 없어요.
대통령 각하, 만약 한반도가 남한에 의해 자유통일이 되면, 통일한국이 미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하는지요?
부시; 한미동맹의 큰 변화가 오겠어요? 반미운동도 있지만, 한국만큼 미국에 오호적인 나라도 드물지 않습니까?
키신저; (고개와 손을 흔들면서) 아니지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닙니다. 동서독의 흡수통일의 예를 한번 살펴보세요. 서독이 통일이전에 각하의 아버지이신 부시 전 대통령에게 상전 모시듯 깍듯이 모셨지요. 분단이후 전후 서독은 미국의 對外정책에서 아주 고분고분했습니다. 서독이 통일을 달성할 직전에 미국의 노력이 얼마나 헌신적이었습니까?
콜 수상이 워싱턴에 달려와서 “통일을 도와달라”고 애걸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정다감한 부시 전 대통령이 친히 워싱턴에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콜 수상 등 유럽정상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지요. 부시 전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통일은 독일의 내정문제”라고 못 박게 했고, 통일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독일의 NATO 잔류를 허용하는 등 소련의 간섭을 배제하도록 조치를 취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서독이 통일된 이후 통일독일은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비근한 예로,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 통일독일 정부는 한명의 독일군 병사라도 이라크에 파병했는지요?
부시; (무릎을 치면서) 맞아, 한명의 독일군 병사도 파병을 하지 않았지. 그때 통일독일 정부의 오만방자한 거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려. 독일이 통일되었다고 감히 우리 미국의 청을 거절하다니. 나중에 독일 대통령이 사과하러 오면 무엇해. 고얀 것들. (부시는 분노의 치를 떨면서 입술을 악물면서 천정을 바라본다.)
키신저; (너털웃음을 띄면서) 허허. 그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통일독일은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통합의 기관차 노릇을 하고 있어요. 이제 독일은 미국의 지원이 필요없나 봅니다. 자주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북관계를 다시 봅시다. 만약 미국이 공중폭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하고, 평양의 지휘부를 공격하여 쑥대밭을 만들면서, 김정일 정권이 붕괴된다면, 그 사태수습은 어떻게 할 것이며, 미국이 만약 인적물적 희생을 감내하면서 한반도를 통일해 주면 미국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부시; 으흠. 그래? (부시는 연거푸 신음소리를 지르면서 알듯 모를듯 연신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인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조용하게 침울한 표정으로)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키신저; 해답은 한 가지입니다. 첫째, 한반도에 現狀維持 정책을 추구하시고, 분단이란 현상을 억지로 변화시키려하지 말고 그대로 즐기세요. 다만 북한에서 핵만 철거하도록 압박을 가하세요. 한국민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을 불허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어요.
만약 미국이 한국을 통일시켜주면, 통일한국의 합의서 잉크가 체 마르기도 전에, 24시간내에 반미운동의 바람이 불어 미군철수운동이 點火될 수 있고, 48시간내에 중국과 동맹을 체결하자고 親中 무드가 조성될 수 있어요. 과거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한미동맹 해체론’이 등장할 것입니다.
우선 통일된 한국정부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핑계로 미국산 무기구매력을 현저히 줄일 것입니다. 또 미국산 쇠고기에서 더 값이 싼 중국산 돼지고기로 수입선을 多變化하려 할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반도 통일은 미국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많은 미국의 외교관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핵문제로 북한과 협상루트가 마련되었으니 이 루트를 이용하여 북한을 親美國家로 만드는 것입니다. 친미정부가 만들어진 북한을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인데, 일종의 以夷制夷 전략입니다. 북한 김계관이 워싱턴에 와서 우리에게 “북한을 전략적 가치로 인식할 필요가 여지가 없어요?”하고 은근히 운을 띄었지 않았나요? 북한도 그동안 중국, 러시아 등을 반세기동안 구걸동냥식으로 등쳐먹은 뒤에 너무 의존이 심화되어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주권을 지키려면 한 나라에 지나친 의존은 화(禍)를 부르지요. 북한내부에서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동안 대통령각하께서는 너무 카우보이식 외교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제 ‘악의 축’이나 열악한 북한인권 등 김정일 정권을 압박하여 외통수로 몰아서 북한을 너무 자극하거나 너무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북한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지 않도록 대북원조를 적절히 운영할 필요가 있어요. 썩은 고목나무가 지탱하려면 외부의 링겔주사도 가끔 필요합니다.
부시; 흐흠 과연, 흥미있는 분석이구먼! 역시 키신저 박사는 뛰어난 책략가야! 以夷制夷 전략이라. (어느듯 부시의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는 和色을 감돌고, 부시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한다. 부시는 키신저에게 바싹 다가간다). 그럼 향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키신저; 북한 김정일에게 우호적 시그널을 보내세요. 그 첫 번째 방안으로 마카오 BDA 은행에 은닉된 김정일 비자금 2,500만 달러도 해제시켜주고, 나줌에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국제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해 주세요. 일단 김정일 체제에게 숨 쉴 구멍을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북한 인권문제를 미 행정부가 나서서 김정일을 자극할 필요는 없지요. 북핵을 완전폐기하느냐? 아니면 기존의 핵무기를 인정하되 단순히 해외로의 수출을 봉쇄하는 것이냐? 라는 과정의 세부적 선택과 구체적 절차에 대해서는 국무부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부시; 옳커니. 이제 외교를 조금은 알 것 같구먼. 헌데, 만약 기존의 북핵을 용인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좌시하지 않을 텐데, 그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지? 그들을 속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내가 그동안 너무 순진하게 외교정책을 추진했어요. 역시 외교는 일종의 체스게임과 같아. 역시 경험이 중요해. 많이 배웠어요.. 백악관에 자주 들려주기 바라오.
부시는 키신저와의 면담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부시는 북한에 대한 레짐체인지(체제교체) 정책을 버리고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을 진행시켜나갔다.
우선 부시의 김정일을 언급하는 공식 발언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몇 달 뒤, 2007년 2월 미국은 2.13합의를 통해서 마카오의 BDA 은행에서 김정일 비자금 2500만 달러를 해제하였고, 그리고나서 1년 9개월뒤 2008년 11월 3일, 미 국무부는 북한을 테러지정국 명단에서 해제하였다.
그리고나서 2주뒤 몇 차례에 걸쳐 김정일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한 미 민주당후보 오바마가 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벌써부터 클린턴이 추진하려다 불발탄으로 그친 평양방문을 추진한다는 ‘대북로드맵’의 소식이 오바마의 참모진영으로부터 들려온다. <보내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