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야

사랑스런 아내도 이럴 땐 살짝 미워진다

바보처럼1 2010. 3. 28. 07:33

 

 

순천만의 가을 향기

















  




일본 최고부자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성공비결

 

"맛있는 음식은 끝없이 나옵니다. 새 휴대전화, 새 자동차도 끝없이 나오지요. 근본적으로 옷 역시 진화하는 이런 모든 제품과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양사업'이라고 하면 경영자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파이는 일정하다. 수요는 결정돼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뺏어 먹을까'라고. 생각이 산업 내부에 머물러 있어요. 확신과 도전 정신이 없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론 매출도, 이익도 늘어나지 못해요. 사양산업이란, 안정에서 성숙을 거쳐 쇠퇴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지요. 그 자체가 명쾌한 대답을 던집니다. '지금까지 방식대론 안돼!'라는." 

 

"10전 10승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지요. 진짜 장사에서 성공하려면 10번 중에 한 번만 승리해도 됩니다. 뒤집어 말해, 9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라는 얘기이지요. 바로 '1승 9패'입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그의 재산은 61억 달러. 미국 포브스지가 올해 이 사람을 일본 최고 부자로 꼽았다. 그는 싸고도 좋은 옷을 표방하며 유니클로를 창업했고, 유니클로는 지금 일본의 국민 유니폼이 됐다. 유니클로의 트레이드마크 상품 '플리스(폴리에틴렌으로 만든 양털처럼 부드러운 섬유)'는 2000년 한 해 동안 2600만벌이 팔렸고, 작년엔 이 회사의 속옷 ‘히트테크'는 2,800만벌이나 팔렸다.

 


 

 

 

 









순천만의 가을 풍경


 

 

중국 인물 역사 9인의 시사점

 

내가 수십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단 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 주나라 태공왕 강태공(姜太公)

지지리 운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 때 보잘것 없는 외모 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지 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 자리를 맴돌게 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 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 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용모가 볼품 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 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중국최고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짖밟혔다고 생을 포기하지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 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된 후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내 나이 67살,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

성신황제(聖神皇帝)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여자로 태어났기에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아예 포기하지 말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믐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 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 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 창업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집안 배경이 나빠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 상가희, 경계무의 삼번난(三藩亂)을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나이가 어리다고 어미의 치마폭에 숨어 칭얼거리지 말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신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털이가 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 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 청대말 거상 호설암(湖雪巖)

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르던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 옆에

꿇어 앉아야 했고 방광암 수술을 받고 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 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 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 속에 놓인 국가경제 재건,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 따위는 돌보지 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주은래(周恩來)

만년 2인자라고 보스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 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웅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소평(登小平)

잘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    *    *

 

 

 

 

 

 

 

 

9월 2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현대캐피탈 인비테이셔널 2009

세계체조갈라쇼에서 신수지가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국가대표 여홍철코치가 오래간만에 등장해 멋진 마루운동을 펼쳐보이고 있다.

 

 

 

 

 

 

 

 

꽃다발을 받고 인사하는 신수지

 

 

 

 

 

 ▲ 미디어 체인지▼

 

 

2009년 옥내 싸이클링 묘기 청년부 챔피언(Amazing 2 Girls,1 Bike)

좌측하단 플레이 버튼 클릭!


European Junior Champions for Indoor Cycling 2009

- Carla and Henriette Hochdorfer from Germany.

 

 

 ▲ 미디어 체인지▼

 

 

꿈결같은 마술쇼(Fantasy Magic Show)

 

 

 ▲ 미디어 체인지▼

 

 

"미운정" 오리지널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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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성공이란,

 

네 살 때 ...............  바지에 오줌을 싸지 않는 것이다.

 

열두 살 때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열 여섯 살 때 .............운전면허를 가지는 것이다.

 

스무 살 때.................섹스를 하는 것이다.

 

서른 다섯 살 때  ..........돈이 있는 것이다.

 

마흔 살 때.................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것이다.



마흔 다섯 살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아는 것이다.

 

쉰 살 때  ..................돈이 있는 것이다.

 

예순 살 때..................섹스를 하는 것이다.

 

일흔 살 때...................운전면허를 가지는 것이다.

 

일흔 다섯 살 때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여든 살 때 ..................바지에 오줌을 싸지 않는 것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 대회를

통해 LPGA 생애 첫우승을 한 최나연의 경기 모습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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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아내도 이럴 때는 살짝 미워진다

 

남편은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아내는 소도시 봉급쟁이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70대의 연세로서 자식들에게 무언가 기대고 싶은 사고방식을 지닌 구세대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양가의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서로가 많은  부담을 느끼게됩니다.

그러다보니 장남장녀는 양가의 대소사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만 모든 일이 진행이 됩니다. 시댁가려면 3시간, 친정가려면 3시간 30분 걸리는 거리는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닙니다. 매년 설명절과 추석명절의 짧은 휴가를 절반으로 누어서 양가를 다녀야 하고, 네분의 생신도 절때 빠질 수가 없고, 용돈도 똑같이 드려야하며, 심지어 여름휴가도 절반으로 나누어 양가를 다니게 됩니다.

이렇게 가문의 장남장녀는 양가를 차별없이 똑같이 예우 할 수 밖에 없는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에 살아가면서 때로는 서로간에 조금씩 서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시댁과 친정을 생각하는 행동의 차별화가 생긴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내가 살짝 미워지기도 합니다.



시댁은 천천히 갈수록 좋지만 친정은 빨리빨리 가고자 한다. 
추석연휴가 3일이라면 추석전날은 시댁가고, 추석날은 친정가고 다음날은 귀가길에 오릅니다.

시댁갈때 : 할일은 다하고 천천히 준비하면서, "천천히 가지뭐. 동서들도 늦게 오는데....."
친정갈때 : 추석날 아침 성묘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친정에 가고싶어 안달을 합니다.

시댁갈때는 차만타면 자고, 친정갈때는 좋아서 잠도 안잔다.
명절이나 양가의 부모님 생신때는 고향길을 가려면 3시간~ 4시간 정도 걸립니다.
시댁갈때 : 차만 타면 "왜이리 졸리지" 하품을 계속 하더니, 결국은 옆자리에서 쿨쿨 잡니다.
친정갈때 : 생글생글 웃어가면 끝까지 잠을 안자고 말을 붙어오면서 아양을 떨어댑니다.

차운전 못한다고 하더니 친정갈때는 운전도 만점이다.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야간근무 10시간 하고나면 아침에 졸면서 비몽사몽 퇴근합니다.
시댁갈때 : "당신 피곤한데 한잠 푹자고 오후에 천천히 출발하지뭐"
친정갈때 : "당신 피곤한데 옆자리에서 잠이나 자. 내가 알아서 운전할테니까....."

아프다는 사람이 친정가자면 벌떡 일어나서 먼저 준비한다.
대소사가 있어서 일찍 가야하는데 밤새 아프다고 끙끙대니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시댁갈때 : 준비 할일도 많고, 서둘렀으면 좋겠는데 아프다고 일어날 생각도 않고 끙끙댄다.
친정갈때 : "당신 몸도 아픈데 다음에 가지뭐" 하면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벌떡일어난다.

피곤하다고 연발을 하지만, 잠자는 시간에 차별화가 생긴다.
집안에 행사때문에 주말에 오전근무하고 오후에 귀향 할 때가 가끔있습니다.
시댁에서 : 저녁 해먹고나서 10시 조금 넘으면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서 먼저 잠을 잔다.
친정에서 : 같은 조건이지만 잠도 않자고 새벽 1시 2시까지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밥먹으면 살찐다고 걱정하더니 양푼이 비빔밥이다.
집에 있을때는 몸매 관리한다고 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저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시댁에서 : 밥을 가능한 먹지 않고 맛있는 별미가 있으면 조심조심 조금씩 아껴 먹는다.
친정에서 : 배고프다고 하면서 큰 양푼에다 온갖 나물 다집어 넣고 배두들겨 가며 퍼먹는다.

고향 방문후 귀가 할때도 시간대에서 차별화가 생긴다.
시댁에서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 빨리빨리, 친정에서는 가능한 천천히~~
시댁에서 : "집에 가려면 차 많이 밀릴건데, 아침일찍 서둘러서 나가지뭐"
친정에서 : "요즘은 길이 분산되어서 별로 안밀리더군만, 천천히 오늘안에만 가면 되잖아"

늦게까지 술을 마셨더니 다음날 운전하기 힘들어한다.
남편은 밤새 술을 마셨더니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힘들어서 비실시실대고 있다.
시댁에서 : "누가 밤새도록 술마시라고 시켰어?" "알아서 가던지 맘대로 하셔!"
친정에서 : "당신 어제밤에 술 많이 마셨어?" "힘들면 내가 운전할까?"

 

 

이 얘기는 살아가면서 아내에게 느낀 일상적 내용이며, 이런 비슷한 경우라면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할수 있는 내용일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사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상생활로 빗어지는 마음속에 감정문제를 일일이 따지다보면 늘 부부간에 불화가 그칠날이 없겠지요.


물론 아내의 입장에서도 분명히 마음속에 간직한 할말은 많을 테니까요. 부부란 인생사 살면서 서로 하고싶은말 다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면서 둥글둥글 덮어주고 사는게 현명한 인생사 처세술이 아닐까 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소한 감정들을 마음속에 살짝 묻어두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듯 웃음 지으며 "당신이 최고야"로 표현한다면 최고의 남편, 최고의  가장으로 불려질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스런 아내라지만 이런 경우는 살짝 미운생각이 드는것은 비단 한사람의 생각만은 아니겠죠?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여! 아내들이여!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은 몇개의 항목에 공감하십니까?  <출처: 털보아찌 블로그 '즐기면서 세상사는 이야기'>

 

▲ 미디어 체인지▼

 

 

 

 

 

 

 

사랑했던 이가 어느날 갑자기 헤어지자고 할 때
왜 내가 싫어졌느냐고 그에게 묻지 마세요.   
생각해 보면 사랑할 때에도 이유가 없었잖아요.   

하지만 당신이 먼저 이별을 얘기해야 한다면
사랑한 적 없었다며 거짓말을 하지는 마세요.
<발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