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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초대석] “이제 글로벌 외식기업으로 간다” [조인스]
우리 전통음식 국제화로 새 길 열 터…매출 5,000억 원 내는 6,000명 ‘놀부가족’에 책임감
창업 20주년 (주)놀부 김순진 회장
창업 20주년 (주)놀부 김순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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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신촌 ‘장미여관’ 옆에 새로 간판을 내건 한 보쌈집 앞을 지나며 품었던 의문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그 보쌈집의 진짜 주인을 만났다. ‘놀부보쌈’의 창업자 (주)놀부 김순진(55) 회장 말이다. “놀부요? 놀부가 마음 씀씀이는 어땠을지 몰라도 현대적 의미에서는 적극적인 자립형 인간이잖아요?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취적 현대인의 모습과 부합하는 사람이죠. 착하기는 해도 무능해 보이는 흥부보다 훨씬 배울 구석이 많잖아요?”(웃음) 전래동화 속의 놀부가 자수성가로 부를 쌓았는지, 부모에게서 부를 물려받았는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놀부라는 이름이 “보쌈이라는 전통음식의 특징을 잘 함축하면서 손님들이 쉽사리 기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수성가·도전정신·뚝심·열정…. 놀부에게 그가 붙인 수식이지만, 사실 이러한 말들은 김 회장 자신과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오늘날 ‘지식산업’의 한 가지로 평가받는 프랜차이즈 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오른 그가 사실은 한때 도심 골목에서 밥을 지어 나르는 ‘구멍가게’ 안주인 출신인 탓이다. 몇 마디를 주고받았는데도 그에게서는 충만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음식맛에도 인생의 희로애락 있다” ― 놀부의 출발은 언제, 어디서입니까? “서울 신림동 ‘골목집’이 모태예요. 몇 번의 실패 끝에 방 보증금까지 빼 식당에 투자했는데, 온가족이 식당 바닥에서 먹고 자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어요. 단 1평의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운 시절이었죠. 그때 겪었던 희로애락이 오늘날 우리 놀부의 음식맛에 그대로 배어있다고 봐야죠.” 1987년 서울 신림극장 뒷골목에서 오늘날 5,500억 원의 거대 매출을 내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태동한 것이다. 5평 규모의 보증금 300만 원짜리 작은 구멍가게였지만, 김 회장이 몇 차례 사업 실패를 겪고 막다른 처지에서 마련한 식당이었다. “그때 고생했던 시절의 경험이 지금 회사를 이끌어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죠. 기업가에게는 힘든 시절에 간직했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몸으로 터득한 것이 손님만이 희망이라는 것이었어요. 골목길을 지나치는 저 사람들을 식당으로 끌어들여 내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오늘날까지 계속하죠. 결국 그 결론은 맛과 서비스였어요.” 보쌈집이 잘되자 이 사람 저 사람 간판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골목길 보쌈집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가 보쌈을 아이템으로 가맹점사업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였다. ― 당시만 해도 프랜차이즈가 생소한 시절이어서 한식을 표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주위에서도 과연 놀부가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요. 한식을 계량화하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는 말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차츰 브랜드를 차별화하려고 노력했어요.” ― 그때 설정한 놀부보쌈의 브랜드 전략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손님들이 편안한 옷 입고 주머니 사정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음식점을 만드는 것이었죠. 푸짐하게 먹어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저렴하지만 청결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자 했어요. 대신 메뉴판은 고객과의 계약서라고 생각하고 늘 신경 썼어요.” 2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고객을 섬기는 자세다. 그는 “고객 서비스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처럼 늘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객제일주의’를 바탕으로 ‘놀부보쌈’은 불황과 경기 침체의 터널 속을 헤쳐온 것이다. 현재 놀부보쌈의 가맹점은 280여 개.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가맹점이 많지 않은 것도 김 회장의 ‘안전경영’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 현재 놀부 브랜드는 ‘놀부보쌈’ 말고도 ‘놀부부대찌개’ ‘놀부솥뚜껑삼겹살’ 등 일곱 식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의 영역을 설정했습니까?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이템에 맞는 타깃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놀부보쌈은 가족 단위, 놀부부대찌개는 젊은 대학생층, 항아리갈비는 직장인, 놀부명가는 40∼50대 특화된 가족을 대상으로 상권과 인테리어를 정했어요. 그동안 이러한 브랜드 개념을 한결같이 고수해 왔습니다.” ― 창업 20년을 맞아 느끼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모진 아픔도 있었지만 보람과 행복을 함께 느낍니다. 하지만 기업이 커지고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기업가로서 부담도 큽니다. 개인적 욕심을 부렸다면 가맹점을 수천 개로 늘렸겠지만 프랜차이즈의 안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요. 현재 6,000명에 달하는 놀부 가족에게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돈 세는 데 골몰하지 않고 일하는 데 늘 바빴어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요. 가맹점 영업 챙기느라 밥 굶기를 밥 먹듯 하자 주위에서 ‘600개 점포 식당재벌이 밥 세 끼를 못 먹느냐’고 나무라기도 했어요.” 회사 경영에 대한 열정은 그의 남다른 학구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창업 당시 초등학교 졸업장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에도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경원대에서 관광경영학 석·박사 학위까지 마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요즘은 그의 성공신화를 듣기 위해 특강 요청이 빗발친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김 회장은 자신의 부와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도 열심이다. “힘들게 구멍가게를 하던 시절에도 보쌈용 김치를 다듬고 남은 겉절이로 김치를 담가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찾고는 했어요. 그때의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깨끗한 눈망울을 잊지 못하죠.”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의 나눔의 경영철학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1989년부터 ‘놀부장학회’를 운영하면서 매년 75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직원 자녀들에게도 매년 1,5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회사에서 그는 언니이자 누나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람 냄새가 물씬한 ‘한솥밥 경영’이 오늘날 놀부의 성장을 떠받치는 기반인 셈이다. ‘놀부’는 최근 들어 국내 전통 음식문화 개발과 전파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최대 관광식당으로 꼽히는 ‘놀부명가’에 가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전통 음식문화의 전파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반응이 어떻습니까? “서울 강남에 600평 규모로 궁궐식 ‘놀부명가’를 열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어요. 놀부명가에서는 우리의 전통공연을 감상할 수도 있어 공연시간에 손님이 많이 몰립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각광받아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내 한식 프랜차이즈업체 선두를 달려온 ‘놀부’는 최근 글로벌 외식기업으로 발전을 꾀하고 있다. 1991년 말레이시아 진출을 시작으로 이듬해 미국시장에도 진출한 바 있는 놀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타진했다. 그해 4월에는 마스터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일본시장에 ‘놀부항아리갈비’ 브랜드를 수출한 데 이어 10월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에 놀부항아리갈비 1호점을 직영으로 개설한 것이다. “한국음식의 가장 큰 강점은 자연친화적이고 건강지향적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식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슬로푸드’가 다름 아닌 한식이거든요. 놀부가 그동안 쌓아온 음식문화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음식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종합 외식 브랜드로 도약 준비 중 ― 놀부에 해외시장 진출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해 일본 진출은 업계 최초로 마스터프랜차이즈 계약으로 브랜드를 수출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로열티를 받기 때문에 국내 토종 외식 브랜드가 이제는 당당한 지식산업으로 일어섰다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현재 일본에서 8개의 놀부항아리갈비가 영업 중이고, 제휴사 측에서 체인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 중국은 어떻게 진출했습니까? “일본처럼 놀부항아리갈비가 진출했지만 퓨전 레스토랑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2호점을 개설한 뒤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대해 나갈 생각입니다.” 창립 20주년을 맞는 (주)놀부는 아직 배가 고프다. 우선 중식과 일식에 비해 해외에서 덜 알려진 한식을 세계화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놀부는 글로벌 종합 외식문화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CI 변경작업에 나섰다. 한식 프랜차이즈의 영역을 넘어 사업 다각화도 꾀한다. 한식 이외의 외식사업을 개발 중이고, 문화사업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외식산업은 이제 먹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부를 키우면서 희로애락과 같은 인생의 다양한 맛을 다 보았습니다. 우리의 전통음식에는 인생처럼 단맛·쓴맛·신맛·메운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이러한 우리의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순진 회장의 열정이 녹아 있는 놀부는 성인식의 통과의례를 마치고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김홍균_월간중앙 차장 (redkim@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
2007.04.29 04:06 입력 / 2007.04.29 09:24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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