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 구다라스(百濟洲)였던 오사카 앞바다 스미요시 지역(오사카시 미야고지마구 미야고지마혼도리)에는 스미요시대사(住吉大社)라는 웅장한 사당이 있다. 이 스미요시 사당의 마유미 쓰네타다(眞弓常忠) 궁사는 일본 고대 신학계의 태두(泰斗)이다. 현재 일본 신도학의 정통 고가쿠칸대학 신도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마유미 궁사는 지난 6월 스미요시대사 궁사실에서 “스미요시대사에서 모시는 스미요시대신은 바다를 지켜주시는 신라신 해신(海神)”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일본의 개국신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烏尊)’는 한반도 신라 땅에서 이즈모(出雲) 땅으로 건너왔다”고 말한 신도학자로도 유명하다.
오사카 앞바다를 지키는 해신인 스미요시대신이 신라신이라는 것은 마유미 궁사도 인정하는 바이다. 일본 고대 문헌인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 1254)에는 “스미요시의 신을 일컬어 고귀덕왕대보살(高貴德王大菩薩)이라고도 한다”고 지적한 대목이 나온다.
마유미 궁사는 “지금부터 3년 전 일본 개국신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연고지로 알려진 한국 강원도 춘천의 우두산(牛頭山)을 직접 답사한 적이 있다”면서 “왜 일본에서 스사노오노미코토를 일컬어 ‘우두천왕(牛頭天王)’이라고도 존칭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고령에도 다녀왔는데, 그곳에는 ‘일본 왕실 천손(天孫)의 터전’을 의미하는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라는 큰 바윗돌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면서 “일본 개국신이 신라로부터 고대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크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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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과 오미쿠지단.(왼쪽)◇신라신 스미요시대사의 일왕 참배 기념표석. |
스미요시대사의 신주(神主)가 신라 해신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시인한 마유미 궁사는 신라신 스사노오노미코토를 신주로 제사모시는 일본 최대 야사카신사(八坂神社·교토)의 궁사로서도 오랜 세월 봉직했다. 이후 스미요시대신을 제사모시는 스미요시대사로 3년 전에 부임했으니 그는 일본 개국신과 해신 등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일본의 대표 신관이자 신도학자인 셈이다.
마유미 궁사는 자신이 입고 있는 하얀 신관복 ‘시라기유후(白木綿)’를 가리키며 “신라 면을 뜻하는 옷감 이름”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일본에는 신라신들을 모신 사당(신사)이 도처에 수도 없이 많다. 어째서일까. 일본의 대표적인 개국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신라 땅에서 배를 만들어 타고 동해를 건너가 일본 이즈모 땅에서 머리 8개 달린 뱀을 퇴치했다는 개국신화가 일본 고대사 책에 흥미롭게 쓰이며 시작되고 있다.
그 내용에 대해 도쿄대학 사학과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 교수는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신라국의 군주(君主)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신라대명신(新羅大明神)’으로 숭배받았다”(‘古代史’ 1907)고 지적했다. 구메 교수는 이러한 주장으로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대학교수직에서 추방당했다. 하지만 요즘은 일부 반한적인 학자를 빼놓고는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신라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일본 역사책 ‘고지키’(古事記 712)에는 한국신들이 엄연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 내용에 대하여 지금부터 37년 전에 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1970년 펴낸 ‘일본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논술했다.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 일본 최초의 개국신·필자주)가 고천원(高天原·하늘나라)에서 쓰키시의 휴가(日向: 일본 규슈 남쪽) 땅 다카치호 산봉우리를 향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글 대목이 있다.
그 내용이 담긴 ‘고지키’에 보면 니니기노미코토는 “이 땅은 한국(韓國)을 향하여, 가사사곶(岬)을 감고 돌아 아침해가 곧바르게 비치는 나라, 저녁해가 빛나는 나라이노라. 때문에 길(吉)한 땅이로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즉 한국을 향하는 고장이기 때문에 ‘길한 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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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해신 스미요시 대신 신주를 모신 선박. |
‘고지키’에서는 오토시노카미(大年神)의 계보에 이 신하고 이노히메 여신이 결혼한 사이에 다섯 명의 아들 신이 태어나는 과정에 가라카미(韓神·한신)와 소호리노카미(曾富理神·소부리신)라고 하는 한국 계통의 신의 탄생 기록이 등장하기도 한다. 소호리노카미란 신라와 연고를 가진 신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가라카미는 소노카미(園神) 신과 함께 일본 왕실 궁내성에서 모시는 한국신이다. 궁중제사 축문 음악(御神樂)에서도 한국 격식(韓風)은 존중되고 있다.”
이처럼 우에다 박사는 여러 문헌(‘의식’, ‘연희식’, ‘강가차제’ 등)을 바탕으로 고대 일본 왕실이 한국신들을 조상신으로서 모시고 궁중 제사를 지내왔음을 고증하기도 했다.
일찍이 에도시대(1603∼1867) 사학자 도데이칸(藤貞幹 1732∼1797)도 고대 일본 왕실에서는 신라신만을 숭상하며 제사지냈다고 밝혔다.
도데이칸은 “신라 아메노히보코(天日槍·이하 천일창) 왕자가 신라로부터 ‘히모로기’(神籬: 일종의 제사용 신단)를 가지고 건너왔는데, ‘히모로기’는 후세의 신사(神詞·사당)가 되었다. 신라말 ‘신리’를 빌려 ‘히모로기’라는 다른 한자어로 새겨서 읽었다. 천일창이 가지고 온 ‘히모로기’(熊神籬: 곰의 신단)도 천일창이 조상님을 신주로 모신 것이다”라고 단정했다. 이는 고대 일본 신도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 천일창 왕자에 의하여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80년 전 도쿄음악학교 다카노 다쓰유키(高野辰之 1876∼1947) 교수도 “스진(崇神) 천황은 히모로기를 미와산(三輪山: 나라현 사쿠라이시 소재)에 세워 놓고 조상님 제사를 지냈다”(‘日本歌謠史’ 1926)며 “스진 천황이 제사지낸 조상신은 신라신”이라고 시인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신라 천일창 왕자가 신라에서 히모로기를 왜나라로 모셔온 것은 신라인 스진 왕조의 신통(神統)을 일본 땅에서 튼튼하게 세워주기 위해서였다고 보고 싶다.
특히 신라 왕실에서 제사를 모시던 신들 중에는 단군의 어머니 웅녀신(熊女神)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왜나라 정복자인 스진왕은 미와산에 대물주신과 대국혼신에 이어 또다른 웅녀신도 함께 모셔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신라의 천일창 왕자가 왜나라의 신라인 스이닌(垂仁) 왕조 3년에 히모로기, 즉 웅녀신단(熊女神壇)과 일본 왕가의 삼신기(三神器)라는 신보(神寶)인 옥·거울·검을 함께 모셔온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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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안에서의 궁사와 필자.(왼쪽)◇제사중인 흰 신라면 무녀복과 무녀들.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 ‘고지키’에는 “옛날에 신라의 국왕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라고 했다. 이 사람이 건너왔다”(昔, 有新羅國主之子 名謂天之日矛 是人參渡來也)는 내용의 기록이 오진조(應神朝)에 실려 있다.
또 ‘하리마풍토기(播馬風土記)’에도 보면 신대(神代: 신화시대의 옛날)에 “천일창신이 한국으로부터 건너왔다”(天日槍命從韓國渡來)는 전설의 기록이 있다.
마유미 궁사는 “신라 바다신인 스미요시대신은 바다에서 한 몸뚱이가 아닌 세 분의 몸으로 나뉘어 태어나셨답니다. 즉 첫째 분이 소코쓰미노오노미코토(底筒男命)이고 둘째 분은 나카쓰노오노미코토(中筒男命)이며 셋째 분은 우하쓰노오노미코토(表筒男命)입니다. 신라 앞바다인 쓰시마(대마도)에도 우리 신라신의 와다쓰미신사(海神神社)라는 사당과 스미요시신사 등 두 사당이 각기 있습니다. 그렇듯 고대 신라 바다로부터 신이 건너오신 발자취마다 사당이 섰다고 봅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제1 본궁의 신라신 신주가 소코쓰미노오노미코토이며, 제2 본궁, 제3 본궁에 각기 나카쓰노오노미코토와 우하쓰노오노미코토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제4본궁 신전에는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神功皇后)의 신주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역사책 ‘니혼쇼키(日本書紀)’는 신라계 여인(‘신찬성씨록’)인 진구황후가 “신풍(神風)을 등에 업고 돛배를 몰아 신라를 침공했다”고 왜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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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한국외대 교수 |
스미요시대신이라는 세 신의 몸으로 나뉘어 태어난 신라 해신의 또 다른 세 가지 명칭도 흥미롭다.
고쿠가쿠인대학 신도학 담당 아베 마사미치(亞部正路) 교수는 “스미요시의 3신은 각기 ‘와다쓰미노카미(綿津見神)’로 부르는 바다신이다. 와다쓰미(綿津見)의 ‘와다’는 ‘바다(海)’를 가리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어인 와다는 한국어 바다가 전화된 말이라는 것은 일본 사학자들의 오랜 통설이다.(다음에 계속)
한국외대 교수 senshyu@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