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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홍주(珍島紅酒)는 조선시대에 지초주(芝草酒)라 하여 최고 진상품으로 꼽혔는데 이는 고려시대부터 라고
전하고 있다. 조선 세조 때에 경상도 절도사 허종(許琮)의 부인 청주한씨가 홍주의 양조비법을 알고 있어 후손들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성종이 윤비를 폐출하려 어전회의를 열던 날 허종은 어전회의 참석을 말리는 누님의 말씀을 듣고 부인이 권한 독한 홍주를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한 허종, 허침 형제는 출사 중 낙마하여 입궐을 못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성종이 사망 후 임금이 된
윤비의 소생 연산군의 보복으로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이 때 어전회의에 참석 못한 허종만은 화를 면하였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
후 5대 후손 허대(許岱)는 선대부터 물려받은 고조리를 진도로 가지고 내려와 그 부인 경주 이씨가 전수한 양조법으로 홍주를
만들었다.
이 비법은 진도의 양천 허씨 문중에서 대대로 전해져 계승 보전되었다고 한다. 진도홍주는 1994년 전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외 전래설]
증류주인 홍주(紅酒)는
지초주(芝草酒)라고도 하며 고려 때 원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소주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별초를 토벌하러 온 몽고인들이
홍주 내리는 비법을 전한 것이 아닐까 주장을 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지초는 황폐한 몽고에서 재배가 힘들기 때문에 생약(生藥)을 활용한
홍주를 전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 말 이후 우리 선인들은 어느 지방에서나 한주, 백주라 하여 소주를 제조하여
마셔왔다.
본래 소주는 조정에서만 사용되어 왔으나 차츰 서민층에 대중화 된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소주에 약재를 가미하는 지혜가
생겼고 약소주 또는 한소주로 발전되어 지방마다 특색 있는 명주를 낳게 된 것이다. 진도홍주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져 토속 명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주를 내릴 때 고조리 끝에 지초를 놓고 그 위에 소주가 떨어져 지초를 통과한 붉은 색의 술이 홍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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