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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호 서울대 사학과 교수와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판독한 결과는 지난 27일 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석가탑 발견 유물조사 중간 보고’에서 공개됐다.
이두는 대체로 뜻을 가리키는 대목은 한자의 새김을 취하고, 문장의 형태를 만드는 대목은 한자의 음을 취하는 신라시대 이후의 표기법이다. 한문 문장의 이해를 돕고자 구절이 끝나는 곳에 끼워 넣은 구결(口訣)이나, 주로 향가에 쓰인 표기법인 향찰(鄕札)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승재 교수는 “기존에 구결자로 알려진 몇몇 글자가 묵서지편에서는 이두문에 두루 쓰였다.”면서 “이런 사례는 아직껏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두자와 구결자의 혼용은 이두와 구결이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판독 결과 현종 15년 석가탑을 해체하면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9편(偏)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卷)을 꺼냈다가 석탑을 다시 세우며 보협인다라니경(보협인경)과 함께 사리공에 안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정종 4년 중수할 때는 보협인경과 함께 무구정경 1권을 다시 넣었다고 적었다.
또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년)에 해체 보수했지만,12년 만인 정종 2년(1036년) 대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수 공사를 다시 벌여야 했다. 하지만 사리장치를 안장하는 등 복원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정종 4년(1038년) 다시 지진이 일어나, 또 한 차례 해체 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