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지

(30. 끝)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바보처럼1 2007. 11. 13. 19:40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30·끝)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 낙동강을 휘감아 도는 청량산은 암벽이 불쑥불쑥 솟은 바위산이다. 높고 크지는 않아도 연이어 솟은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울려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릴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다. 일찌기 퇴계선생이 노래한 36개 봉우리 외에 각종 기암괴석과 수십개에 이르는 동굴로도 유명한 산.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청량산이다.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는 청량산이 보이는 데서 오른쪽으로 낙동강을 가로 질러 북쪽에 접경을 이룬곳이다. 산 뒤 북쪽에 마을이 있어 북곡리라 불렀다. 서너 아름의 한그루 고목이 북곡리의 오랜 역사를 넌지시 알려준다.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청량산은 황홀하다. 해마다 수많은 산꾼들이 다투어 찾아간다는 청량산. 그 빼어난 산세가 손닿을 듯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산의 일부를 떼어다 청량산 한 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전설에 걸맞을 만큼 조각한듯한 수려한 산세에 흠뻑 취해 정신을 놓고 있을 즈음... 마치 병풍속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오듯 단풍계곡사이에서 지게를 짊어진 노부부가 나타났다. 땔감을 진 부부는 70줄의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젊은이 못지 않은 혈색이다. 마을까지 길안내를 자청하는 권혁재씨(70)를 따라 낙엽의 융단을 밟으며 20여분을 걸었다. 큰 재를 넘어가는 골이라 하여 ‘한티마을’로도 불리는 곳.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항상 촛불과 호롱불이 준비 되어 있는 아담한 집 한 채. 내부는 주인을 닮아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멧돼지 가족들이 한꺼번에 무리지어 앞마당에 왔다 갈때가 종종 있심다.”

새벽에 소피를 보러 나왔다가 감나무밑에서 조그만 후레쉬 불빛 같은 멧돼지눈과 두눈이 마주친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손전등으로 두어번 껐다 켯다 했더이만 고개를 돌리고 슬며시 도망가 삐대.”

20여년전까지만 해도 7가구가 모여 살았던 이곳엔 현재 집터와 논밭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고 권씨 부부가 사는 집이 유일하다. 집 앞에는 한티약수라 부르는 샘물이 있다.

“옛날에 문둥병이가 이 물을 먹고 나았다지요.”

옻독이나 어지간한 피부병, 웬만한 속앓이에 특효란다.‘만병통치약’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권씨도 한때는 도회지 생활을 했단다. 건강이 안좋아져서 다시 고향으로 왔다.“약수만 마시고서 속병을 고쳤심다.” 모시고 사는 노모(97)가 아직도 설거지를 손수 할 정도로 근력이 좋은 것은 모두 ‘물’ 때문이라며 약수자랑이 끝이 없다.

물한잔을 얻어 마신 후 1년의 반을 얼어있다는 ‘얼음달폭포’로 향했다. 산이 깊어서 응달이 많은 탓이다. 이곳을 가자면 본 마을인 ‘윗뒤실’을 거쳐야 한다. 마을에 북두칠성의 형상을 한 ‘칠성바위’와 ‘말 바위’가 있어 ‘두실’이라 하다가 훗날 ‘뒤실’로 바뀌었단다.

마을길 외딴 농가 뒤로 수렛길이 이어진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산길에는 계절에 걸맞지 않는 야생화가 빼곡하게 피어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뒤돌아보는 남쪽에는 청량산의 멋진 산세가 늦가을 빛에 눈부시다. 알수없는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뭉게뭉게 일어난다.

윗뒤실 마을에서 12대째 살고 있는 박주원(68)씨.“밀양박씨 청재공(淸齊公)파 후손이 400여년전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자 의주에서 자결을 했지요” 그 후손들이 몸을 피해 이곳 봉화땅으로 와서 첫 입주자가 되었단다.

“겨울에는 눈길에 막혀 한달 내내 옴싹을 몬해요.” 산골마을의 겨우살이 준비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쁜듯 했다. 고랭지의 청정지역. 특히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과수에는 천혜의 조건이다.6.25전쟁이 나기 전만 해도 대추농사가 잘돼서 부자동네 소릴 들으며 80가구나 살았던 곳이다.

“청량산전투에서 국군과 공비들이 사흘 낮밤으로 전투를 벌여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잉교” 그후 하나둘 고향을 떠나서 현재는 20명의 주민만이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태(81)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뇨에 좋다는 야콘 농사를 하고 있다.“이제는 마… 나이를 묵어서 팔러가는기 더 힘든기라” 그래도 이방인에게 대접할 것이 없다며 미안해 한다.“우리 야콘 좀 잡숴봐요.” 부인인 김점례(78)할머니가 건네주는 야콘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상큼한 ‘봉화인심’이 묻어 나오는듯 하다. 자연의 넉넉한 인심이다.

마음이 절로 구부러져서 무욕(無慾)이 되는 곳. 그리움, 정다움, 순박함을 간직한 산골마을. 보듬고 껴안고 어루만지며 지켜야 할 우리네 ‘삶의 원형´을 만날 수가 있었다.

글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기사일자 : 2007-11-14    28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