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은 곳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바보처럼1 2007. 11. 13. 20:03
 
[작가임동헌의우리땅우리숨결]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다랑논 - 파도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
 ◇가천마을은 행정지명보다 다랭이 마을로 유명하다. 다랭이논과 바다가 어울려 해안 마을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은 ‘다랭이마을’로 더 유명하다. 산비탈을 깎아 계단식 논을 만들다 보니 가을이 되면 눈부신 황금빛 물결이 층을 이루어 빛난다. 다랑논이야 전국 곳곳에 많지만, 가천 다랭이마을이 유명세를 치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안 도로 바로 아래에 있으니 다랑논과 파도가 하나의 풍경을 이뤄 사진가들이 얘기하는 ‘달력 그림’을 연출하는 것이다.

경운기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민박집으로 변신한 농가의 황토벽에는 나들이에 나섰던 사람들의 낙서가 벽화를 이루고 있고, 비탈에 세워진 양철지붕 아래 마당에는 색색의 빨래들이 널려 있다. 강한 바닷바람에 빨래들이 그네를 타는데, 할머니 한 분이 하늘빛을 곁눈질하더니 빨래를 걷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비가 내릴 모양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후두둑 듣기 시작한다. 이런 날, 부침개 한 장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한데 바로 옆에 ‘시골할매 막걸리’ 간판이 보인다. 간판이라야 문패보다 조금 큰 정도인데, 객을 반기는 사람은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어서 오시다(어서 오세요).”

◇다랭이 마을의 농가 앞마당에서 노파가 빨래를 걷고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하늘빛과 바람으로 기상청보다 정확한 날씨를 예측해 낸다.

알고 보니 객을 반긴 사람은 시골할매의 딸이란다. 시골할매가 얼마 전 마루에서 내려서다 넘어지는 바람에 몸져 누워 계시단다. 문 열린 방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요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싶은 요강이 구석에 놓여 있다. 아랫목에서는 시골할매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는 넘어지기 전까지 농사도 짓고, 유자잎을 갈아넣은 시골 막걸리를 담기도 했는데 황홀지경의 가을볕도 쬐지 못한 채 누워 있는 것이다. 가슴 한쪽이 싸해진다.

막걸리 한 사발 팔아주는 것 외에 도울 길이 없다. 막걸리를 시켜 놓고 집을 휘 둘러보는데, 처마며 벽이며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40여 년 전에 지었다는데도 백 년 전에 지은 듯하고 3년 전에 지은 듯하다. 시골 할매의 딸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 집에서 3대가 뫼여 살아예.”

3대가 한 집에 산다는 것, 귀한 일이고 아름다운 동거다. 막걸리 잔에 저절로 손이 간다. 막걸리 잔을 내려놓는데 입구 쪽에서 여러 인기척이 들려온다. 얼굴빛들이 밝지 않다.

“어서오시다.”

◇다랭이 마을 깊숙이에 자리한 밥무덤. 음력 10월15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풍년과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시골 할매의 딸이 손님을 맞는 줄 알았는데 모두 마을 사람이란다. 벼도 베어야 하고, 태풍 온다는 소식 있으니 배도 대피시켜야 하는데 시골 할매가 몸져 누웠다는 얘기를 듣고 문병을 온 참이다. 역시 아름다운 이웃들이다.

몇 뼘밖에 안 되는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들이 공동체 정신을 잃지 않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안에 바짝 붙어 있는 ‘밥무덤’에 그 해답이 있다. 밥무덤은 음력 10월15일 풍년과 마을 사람의 안녕을 위해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제사를 지내기 한 달 전부터 가장 정갈한 사람을 제주로 뽑아 무덤 안의 황토를 바꿔 넣고, 밥을 한지에 싸 넣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지도 세월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는 것, 시골 할매가 몸져 누운 것이 그 단서이다.

다랭이마을에서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시골 할매의 집을 나서는데 할매의 딸이 여행정보를 건넨다. 마을에서 나가 왼쪽으로 가다가 고갯길에서 사진을 찍으란다. 신문이며 텔레비전이며 가릴 것 없이 다랭이마을의 전경은 다 그곳에서 찍는다는 것이다.

◇삼동면 물건항 해안의 물건방조림. 오랫동안 숲에 투자한 지혜 덕에 웬만한 태풍에는 피해를 보지 않는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거센 바람이 초가을의 나뭇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가지고 부러져 도로 여기저기에 흩어진다. 날이 저물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곡예운전을 하면서 스쳐간다. 그렇다고 숲 중의 숲으로 꼽히는, 삼동면 물건리방조림을 포기하고 갈 수는 없다.

물건항 쪽에 다가가니 바다의 해안선을 향해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게 보인다. 팽나무, 이팝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해안선을 따라 1.5㎞에 걸쳐 겹을 이루고 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나무들이니 견고하기 그지없다. 비바람이 몰아치지만 숲은 끄떡하지 않는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마을 역시 끄떡하지 않는다. 나무를 믿고 수십 수백 년 보살피다 보니 이제는 나무들이 사람을 보호하고 삶터를 보호하는 현장이다. 그러니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천연기념물(150호)이다.

방파제 안쪽으로 눈을 돌린다. 방파제 안쪽에 대피해 있는 소형 선박들이 거세게 달려드는 파도에 맞서 출렁인다. 5t도 안 되는 배들은 거센 파도에도 용케 버텨낸다. 포구 옆의 횟집 상가 사람들은 사나운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태풍경보가 내려져 있는데도 다급해하지 않는 모습이 의아하다. 할 수 없이 뱃사람 한 명을 붙들고 묻는다.

◇물건항 방파제 안쪽에 대피해 있는 작은 배들 주변으로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바다 사람들은 소형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어주기만 하고 물러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태풍이 왔다는데, 배가 괜찮겠어요?”

“할 수 없지예. 이미 와버린 태풍을… 태풍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라예.”

5000여만원짜리 작은 배를 갖고 횟집도 운영하고 있는 이동헌씨의 얘기는 간단하다. A급 태풍이 들이닥치면 바람이 작은 배들을 방파제 위까지 밀어올려 그야말로 생계 수단을 완전히 망가뜨리지만 소형 태풍은 별 다른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흙 갈아엎듯이 바다를 뒤집어엎어 산소를 공급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물갈이가 되니 물고기들이 활력을 얻고, 어종까지 교체되면서 당연히 어획량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가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향해 지긋한 눈길을 보내는 것은 태풍이 물러간 후 바다에 나가면 만선 깃발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럼, 태풍이 이 정도에서 소멸되면 바다 농사 잘 짓겠네요. 선원은 몇 명이나 있어요?”

“선원? 배가 코딱지만한데 무슨 선원을… 마누라하고 나하고 둘이 나가지예.”

문득 바다에 나가서는 부부싸움 하지 말라는 뱃사람들의 우스갯소리가 스쳐간다.

이제 강풍을 헤치고 길을 떠나야 한다. 사진 한 장 찍자는 청을 끝까지 마다하던 이동헌씨가 바람 좀 잔 뒤에 떠나라고 만류한다. 낯선 객은 바닷사람들을 걱정하고 바닷사람들은 먼 길 떠나는 사람을 걱정하는 시간, 그 역시 아름답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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