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삼국유사 등 역사서나 역사소설을 보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라에는 천심이 담겨있다." 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주로 아이들의 노래에서
나라의 망국, 왕실의 이상, 전쟁의 기운, 민심 등등 읽어내는 장면에서 선각자들이 읊는 말이다. 인현왕후전(혹은 장희빈전?) 에서도 숙종이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일세"란 노래를 듣고 민심을 파악했다고 한다.
별 생각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노래가 어째서 시대를 읽는 한 지표가 되었나....물론 역사소설에서 극적 장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_-;;;; 정말로 '별 생각없이'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없이 부르는 만큼 무의식이랑 가깝다. 더구나 특정한 정치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아이들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 노래에 담긴 무의식은 어린 아이들조차 물들 수 밖에 없었던 강력한 틀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어떤 사회적 분위기가 무의식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즉 놀이 속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대적 상황과 거기에 대응하는 개인적 정서가 합치되는 어떤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비단 아이들의 노래 뿐 아니라, 한 때 유행했다는 삼풍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등등 '속된 어른들의 놀이'도 꽤나 시대를 읽는 가치로 유용해 보인다....(그러나 이것들의 구체적 룰은 잘 모른다..-_-)
근래의 역사학계의 관심은 "사료를 남길 수 있는 자" 뿐만 아닌 여러 인간들의 심리와 생활의 영역으로 넓어져 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특히나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등은 '기록' 외에도 적절한 사료로 매우 각광받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억하려면, 사료관리 차원에서 "우리들의 놀이"를 계속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놀이는 어떠할까?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가 일본의 어느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그 학교에 방문한 적 있었다. 일본에도 '아이 앰 그라운드' 류의 게임이 있어(리듬도 똑같던데....설마 일본에서 온 건가??) 어렵지 않게 함께 놀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게임에서 걸린 사람 벌칙을 줄 때 우리가 한국에서 하던대로 미친듯이 사람을 때리니-_-;; 일본학생들이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의 친구관계 - 인간 관계가 격의 없이 끈끈한 관계를 지향한다지만 엄청난 강도의 매질(?)로 그것을 표현할 줄이야....! 하지만 우리도 놀랐다. 지극히 당연했던 이 현상에 사람들이 놀랄 줄이야...;; 그 다음번에는 일본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일본 학생 식으로 벌칙을 가했지만 영 밍숭밍숭한게 재미가 없었다....그러나 사람은 원래 폭력적인 데에 길들여지는가...일본 애들이 우리를 점점 흉내내기 시작하더라-_-;;;;
한 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 놀이 문화의 극성스러움을 얼마 전 TS에서 다시 체험했다. 게임에서 걸린 사람이 엎드리고 그 사람의 등을 두드릴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가장 흔한 건 인디안 밥~ 그러나 짧아서 열혈 한국인들에게는 영 싱겁다. "분위기 살려라~"란 노래가 있는 데 놀라운 것은 이게 지역마다 또 달랐던 것이다.
- A: 너 때문에 분위기 망쳤다 ~ 머리 속에 뭐가 들었니, 돌돌돌! 야아~야아~ 무식하다야!
- B: 못생긴 게 분위기 망쳤다~ 분위기 살려라~ 똥통에 빠져 죽어라
- C: 빙신같은 게 분위기 망쳤다~ 분위기 살려라~ 똥통에 빠져 디져라~
어쨌든...잠시 지역 차이를 확인한 사람들은 처음에 당황해하다가 자기 것이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C: 게임에서 틀렸다고 못 생겼다라니~너무 루키즘 아니에요? 심하다...
-B: 빙신이 더 심하지...못 생겼다는 귀엽게 봐 줄 수 있지만 빙신은 완전 인격모독이잖아.
-C: 빙신은 그냥 에그 그것도 못하냐~에 지나지 않다구요...
-B: 그것도 그렇고 디져라가 뭐야 디져라가.
-A: 디져라나 죽어라나.-_-;;;; 게임 못 했다고 죽으라 그러면 어떡해.
-C: 게임 못 한다고 머리 나쁘다고 그러는 것도 인격모독이잖아요. 그냥 빙신이 낫지...(빙신은 일상어?)
결국..게임은 B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관습이니 너무 마음상해 하지 말자고 하면서.
그러나 이것이 어릴 때 불렀던 노래라는 점에서 살짝은 소름이 끼쳤다. '병신''못생긴 게' '돌대가리(서울 사람들이 순화하긴 했지만)'란 표현이 아주 쉽게 쉽게 일상적으로 등장하다니 말이다. 영어의 Kill you는 굉장히 섬뜩한 어감을 주는데 한국말의 '죽어라'는 왜 이리 친근한지..-_-;;; 한국만큼 평상시 '배고파 죽겠어.' '졸려 죽겠다' 등 죽음을 일상적 언어에 올리는 언어권도 없다더니 참 새삼 놀랍다. 일상의 강한 폭력성의 사회!
이 외 아주 어릴 때 불렀던 노래중에 기역나는 게 있다. 1,2,3...으로 시작해 말을 맞추는 노래인데 정말 한국 사상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85년생 및 그 앞 세대는 기억나시려나? 요즘 유치원생도 부르는 지 정말 궁금하다.
일, 일, 일본놈의 ○○○ 이, 이 이 세상에 태어나.
--> ○○○ 는 놀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 이름 '일본놈'이 욕설로 쓰이는 강한 반일사회를 볼 수 있다.
삼, 삼, 삼팔선을 넘어서, 사, 사 사람들을 죽이고
--> 무의식적으로 50년대 무장공비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다. 반공의식;;;(그리고 어릴 때 삼팔선과 휴전선 구분 못 하는 사람 꽤나 많았다.)
오, 오, 오락실에 들러서, 육, 육, 육개장을 먹다가
-->이건 좀 생뚱맞지만
칠, 칠 @&%#$(기억안남), 팔, 팔 팔 다리가 부러져
-->아직 약과다.
구, 구, 구급차에 실려가, 십, 십, 십초만에 깨꼬닥.
--> 결국 팔다리 부러지고 죽는다는 애용이다...-_-;;;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교 1,2 학년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친구더러 '죽어라' 하고 저주성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말이지.
해방 전후 형성되었을 법한 이 노래를 비롯하여...죽음은 인간에게 최고의 형벌인데 이렇게 일상에서 가볍게 남발되는 까닭은 뭘까. 어쩌면 유난히 죽음이 빈번했던 시대 탓일지도 모른다. 일제 말 징병, 징용, 정신대 등의 국가 폭력, 해방 후 가난, 질병, 정치테러, 4.3 사건, 여순 반란 사건 등과 민간인 희생, 끔찍한 한국 전쟁, 4.19 항쟁, 경부고속도로 건설(노동자 몇 명 죽었더라..), 공비사건, 각종 노동상해, 전태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약 50년 간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가까운 누군가의 '인공적' 죽음을 보는 것은 꽤나 빈번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제 명에 다한 죽음이 아니라 정치 변동에 의해, 국가의 폭력에 의해...
-여기에 관해 에피소드. 무당집에 갔을 때 무당이 "자네 집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 있지?"라고 묻는 것은, 사실 대한민국 역사상 한 집에 억울한 사람 한 둘은 꼭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으레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라나?-
국가에 의해 가까운 사람이 죽었음에도 국가더러 뭐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만큼 힘 없는 사람들은 주변인들이 죽어나가는데 침묵을 강요받을 밖에 없었고 그저 죽음을 무덤덤히 느끼는 것이 대응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당장 죽을 수 있다...이런 일상적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가 역설적으로 '죽음 가볍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노래는 그런 죽음 경시하는 버릇을 어릴 적부터 익히는 일종의 수단이다.
병신 등 인격모독적인 언어가 아이들의 놀이에 너무나 쉽게 등장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거 같다.(사실 서울지역도 게임 중간에 병신~ 병신~ 하면서 걸린사람을 응징하는 노래는 꽤 많다.) 개인에 대한 사회적 살인이 빈번하고, 안전장치가 없던 시절 살아남으려면 철저히 자기가 강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 철저한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어릴 적 또래들 사이에서도 게임하다 실수를 범하면 '노래의 형식으로' 모진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전체 분위기를 망쳐놓은 개인의 역량 부족은 철저히 응징되어야 마땅하다는 가치를 학습힌다. 아울러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철저히 내가 강해지는 수 밖에 없다는 - 게임을 잘 해야 한다는 것 - 삶의 진리(?)를 깨닫기도 한다.
더불어 어릴때부터 병신, 머리나쁜 사람 등에 대한 혐오감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는 효과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달려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이런 약자들을 동정하기보다는 일찌감치 제거하고, 죽지 않기 위해, 나는 병신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노래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다.
일상의 약간의 폭력성이 오히려 극단의 폭력성을 막아준다는 견해가 있긴 하다. 일상에서 광기와 탈출의 공간이 마련되는 탓이다. 일본 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안정과 정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극도로 잔인한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함을 학습해오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에서 약자를 집단으로 공격하고, 갈구고 약자를 당연히 비웃는 문화가 만연하다. 개똥녀, 문희준,도둑으로 몰려 자살한 어느 중학생...질타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인격은 생각 안 하는 태도는 개인이든 사회에든 어떠한 긍정성도 보여주는 거 같지가 않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아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격이 가능한 상태다. 여기에서 '타인의 죽음과 아픔에 둔감한 우리네 감성'은 너무나 위험하다.
더구나 살아보려고 내가 남을 밟고 강해지는 세상의 잔혹함은 충분히 보아왔다.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을 물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주장해야 하는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옆사람의 죽음을 마음 속 깊이 아파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옆사람의 죽음을 한껏 아파해야 나의 죽음도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한국사회에서는 내가 병신이었지...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적잖아 있다.
사회에 가득찬 죽음의 수사학, 죽음의 문화를 이제 슬슬 한꺼풀 한꺼풀씩 벗겨낼 때가 되엇다. 물론 아이들의 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 분위기를 바꿔야 할 것이다. 반일감정이 많이 약해지면서 '일본놈'이 욕으로 쓰이는 경우가 점점 적어진 거 같은데...그런 것처럼 노래는 곧 당연히 민심을 반영할 테니까 말이다.
별 생각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노래가 어째서 시대를 읽는 한 지표가 되었나....물론 역사소설에서 극적 장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_-;;;; 정말로 '별 생각없이'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없이 부르는 만큼 무의식이랑 가깝다. 더구나 특정한 정치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아이들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 노래에 담긴 무의식은 어린 아이들조차 물들 수 밖에 없었던 강력한 틀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어떤 사회적 분위기가 무의식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즉 놀이 속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대적 상황과 거기에 대응하는 개인적 정서가 합치되는 어떤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비단 아이들의 노래 뿐 아니라, 한 때 유행했다는 삼풍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등등 '속된 어른들의 놀이'도 꽤나 시대를 읽는 가치로 유용해 보인다....(그러나 이것들의 구체적 룰은 잘 모른다..-_-)
근래의 역사학계의 관심은 "사료를 남길 수 있는 자" 뿐만 아닌 여러 인간들의 심리와 생활의 영역으로 넓어져 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특히나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등은 '기록' 외에도 적절한 사료로 매우 각광받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기억하려면, 사료관리 차원에서 "우리들의 놀이"를 계속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놀이는 어떠할까?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가 일본의 어느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그 학교에 방문한 적 있었다. 일본에도 '아이 앰 그라운드' 류의 게임이 있어(리듬도 똑같던데....설마 일본에서 온 건가??) 어렵지 않게 함께 놀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게임에서 걸린 사람 벌칙을 줄 때 우리가 한국에서 하던대로 미친듯이 사람을 때리니-_-;; 일본학생들이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의 친구관계 - 인간 관계가 격의 없이 끈끈한 관계를 지향한다지만 엄청난 강도의 매질(?)로 그것을 표현할 줄이야....! 하지만 우리도 놀랐다. 지극히 당연했던 이 현상에 사람들이 놀랄 줄이야...;; 그 다음번에는 일본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일본 학생 식으로 벌칙을 가했지만 영 밍숭밍숭한게 재미가 없었다....그러나 사람은 원래 폭력적인 데에 길들여지는가...일본 애들이 우리를 점점 흉내내기 시작하더라-_-;;;;
한 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 놀이 문화의 극성스러움을 얼마 전 TS에서 다시 체험했다. 게임에서 걸린 사람이 엎드리고 그 사람의 등을 두드릴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가장 흔한 건 인디안 밥~ 그러나 짧아서 열혈 한국인들에게는 영 싱겁다. "분위기 살려라~"란 노래가 있는 데 놀라운 것은 이게 지역마다 또 달랐던 것이다.
- A: 너 때문에 분위기 망쳤다 ~ 머리 속에 뭐가 들었니, 돌돌돌! 야아~야아~ 무식하다야!
- B: 못생긴 게 분위기 망쳤다~ 분위기 살려라~ 똥통에 빠져 죽어라
- C: 빙신같은 게 분위기 망쳤다~ 분위기 살려라~ 똥통에 빠져 디져라~
어쨌든...잠시 지역 차이를 확인한 사람들은 처음에 당황해하다가 자기 것이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C: 게임에서 틀렸다고 못 생겼다라니~너무 루키즘 아니에요? 심하다...
-B: 빙신이 더 심하지...못 생겼다는 귀엽게 봐 줄 수 있지만 빙신은 완전 인격모독이잖아.
-C: 빙신은 그냥 에그 그것도 못하냐~에 지나지 않다구요...
-B: 그것도 그렇고 디져라가 뭐야 디져라가.
-A: 디져라나 죽어라나.-_-;;;; 게임 못 했다고 죽으라 그러면 어떡해.
-C: 게임 못 한다고 머리 나쁘다고 그러는 것도 인격모독이잖아요. 그냥 빙신이 낫지...(빙신은 일상어?)
결국..게임은 B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관습이니 너무 마음상해 하지 말자고 하면서.
그러나 이것이 어릴 때 불렀던 노래라는 점에서 살짝은 소름이 끼쳤다. '병신''못생긴 게' '돌대가리(서울 사람들이 순화하긴 했지만)'란 표현이 아주 쉽게 쉽게 일상적으로 등장하다니 말이다. 영어의 Kill you는 굉장히 섬뜩한 어감을 주는데 한국말의 '죽어라'는 왜 이리 친근한지..-_-;;; 한국만큼 평상시 '배고파 죽겠어.' '졸려 죽겠다' 등 죽음을 일상적 언어에 올리는 언어권도 없다더니 참 새삼 놀랍다. 일상의 강한 폭력성의 사회!
이 외 아주 어릴 때 불렀던 노래중에 기역나는 게 있다. 1,2,3...으로 시작해 말을 맞추는 노래인데 정말 한국 사상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85년생 및 그 앞 세대는 기억나시려나? 요즘 유치원생도 부르는 지 정말 궁금하다.
일, 일, 일본놈의 ○○○ 이, 이 이 세상에 태어나.
--> ○○○ 는 놀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 이름 '일본놈'이 욕설로 쓰이는 강한 반일사회를 볼 수 있다.
삼, 삼, 삼팔선을 넘어서, 사, 사 사람들을 죽이고
--> 무의식적으로 50년대 무장공비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다. 반공의식;;;(그리고 어릴 때 삼팔선과 휴전선 구분 못 하는 사람 꽤나 많았다.)
오, 오, 오락실에 들러서, 육, 육, 육개장을 먹다가
-->이건 좀 생뚱맞지만
칠, 칠 @&%#$(기억안남), 팔, 팔 팔 다리가 부러져
-->아직 약과다.
구, 구, 구급차에 실려가, 십, 십, 십초만에 깨꼬닥.
--> 결국 팔다리 부러지고 죽는다는 애용이다...-_-;;;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교 1,2 학년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친구더러 '죽어라' 하고 저주성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말이지.
해방 전후 형성되었을 법한 이 노래를 비롯하여...죽음은 인간에게 최고의 형벌인데 이렇게 일상에서 가볍게 남발되는 까닭은 뭘까. 어쩌면 유난히 죽음이 빈번했던 시대 탓일지도 모른다. 일제 말 징병, 징용, 정신대 등의 국가 폭력, 해방 후 가난, 질병, 정치테러, 4.3 사건, 여순 반란 사건 등과 민간인 희생, 끔찍한 한국 전쟁, 4.19 항쟁, 경부고속도로 건설(노동자 몇 명 죽었더라..), 공비사건, 각종 노동상해, 전태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약 50년 간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가까운 누군가의 '인공적' 죽음을 보는 것은 꽤나 빈번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제 명에 다한 죽음이 아니라 정치 변동에 의해, 국가의 폭력에 의해...
-여기에 관해 에피소드. 무당집에 갔을 때 무당이 "자네 집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 있지?"라고 묻는 것은, 사실 대한민국 역사상 한 집에 억울한 사람 한 둘은 꼭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으레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라나?-
국가에 의해 가까운 사람이 죽었음에도 국가더러 뭐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만큼 힘 없는 사람들은 주변인들이 죽어나가는데 침묵을 강요받을 밖에 없었고 그저 죽음을 무덤덤히 느끼는 것이 대응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당장 죽을 수 있다...이런 일상적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가 역설적으로 '죽음 가볍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노래는 그런 죽음 경시하는 버릇을 어릴 적부터 익히는 일종의 수단이다.
병신 등 인격모독적인 언어가 아이들의 놀이에 너무나 쉽게 등장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거 같다.(사실 서울지역도 게임 중간에 병신~ 병신~ 하면서 걸린사람을 응징하는 노래는 꽤 많다.) 개인에 대한 사회적 살인이 빈번하고, 안전장치가 없던 시절 살아남으려면 철저히 자기가 강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 철저한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사회였다.
어릴 적 또래들 사이에서도 게임하다 실수를 범하면 '노래의 형식으로' 모진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전체 분위기를 망쳐놓은 개인의 역량 부족은 철저히 응징되어야 마땅하다는 가치를 학습힌다. 아울러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철저히 내가 강해지는 수 밖에 없다는 - 게임을 잘 해야 한다는 것 - 삶의 진리(?)를 깨닫기도 한다.
더불어 어릴때부터 병신, 머리나쁜 사람 등에 대한 혐오감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는 효과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달려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이런 약자들을 동정하기보다는 일찌감치 제거하고, 죽지 않기 위해, 나는 병신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노래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다.
일상의 약간의 폭력성이 오히려 극단의 폭력성을 막아준다는 견해가 있긴 하다. 일상에서 광기와 탈출의 공간이 마련되는 탓이다. 일본 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안정과 정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극도로 잔인한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함을 학습해오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에서 약자를 집단으로 공격하고, 갈구고 약자를 당연히 비웃는 문화가 만연하다. 개똥녀, 문희준,도둑으로 몰려 자살한 어느 중학생...질타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인격은 생각 안 하는 태도는 개인이든 사회에든 어떠한 긍정성도 보여주는 거 같지가 않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아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격이 가능한 상태다. 여기에서 '타인의 죽음과 아픔에 둔감한 우리네 감성'은 너무나 위험하다.
더구나 살아보려고 내가 남을 밟고 강해지는 세상의 잔혹함은 충분히 보아왔다. 살아남으려면 옆 사람을 물로 떠미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주장해야 하는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옆사람의 죽음을 마음 속 깊이 아파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옆사람의 죽음을 한껏 아파해야 나의 죽음도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한국사회에서는 내가 병신이었지...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적잖아 있다.
사회에 가득찬 죽음의 수사학, 죽음의 문화를 이제 슬슬 한꺼풀 한꺼풀씩 벗겨낼 때가 되엇다. 물론 아이들의 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 분위기를 바꿔야 할 것이다. 반일감정이 많이 약해지면서 '일본놈'이 욕으로 쓰이는 경우가 점점 적어진 거 같은데...그런 것처럼 노래는 곧 당연히 민심을 반영할 테니까 말이다.
출처 : 희망은 언제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글쓴이 : EP통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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