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시인 김용택

바보처럼1 2007. 11. 24. 14:12
[스크랩] 詩人김용택 2007/09/14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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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이 되던 해 나는 한 산골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이 느닷없는 삶의 전환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싱그러운 스물한 살의 팽팽한 젊음은 그러나 산골 아이들 앞에서 너무나 심심했다. 까만 머리통의 아이들과 작은 들과 산은 내게 무료했고, 너무나 적막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심심하게 보내고 있는데, 그 먼 산골까지 책을 월부로 파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산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낮에는 동무들과 산에 나무 가고, 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달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그 해는 눈도 많이 왔다. 세상 가득 눈이 온 날 아침 나는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징검다리 위의 눈을 밟으며 강을 건너갔다 왔다.


겨울방학이 그렇게 끝나자 나는 전집 여섯 권을 거의 다 읽고 있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그러나 내게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산과 들과 나무와 길과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내 걸음걸이가 방학 전의 것들이 아니었다.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가 그렇게 큰 줄 나는 그때야 알았다. 앞산 산등성이를 비껴오는 아침 햇살은 눈부셨고, 산굽이를 돌아가는 아침 강물 소리는 새로웠다. 세상은 내게 그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신비롭던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눈부시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박목월 전집' '이어령 전집' '니체 전집' 그리고 한국문학 50권짜리 전집도 그때 읽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전혀 낯선, 그러나 그 어디에선가 보았던 것 같은 그 샛길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다. 나는 날마다 나를 응시하고, 나를 신기해 했다. 늘 버리고, 무엇인가 설레는 그 무엇을 새로 얻었다.


그리고 나는 평생 농사를 짓고 사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그분들의 아침과 그분들의 일과 놀이를 나는 보았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 그 동네에서 살다 죽어 그 동네 산에 묻히는 농부들의 삶은 내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을과 내가 사는 이 나라와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늘 새날이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그런 생각들이 쌓였다. 늘 죽고 늘 태어났다. 사사로운 나의 가치들이 폐기되고 아름다운 공통의 가치가 내 속에 찾아와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5, 6년 지난 어느날 아침 나는 마루에서 뚤방으로 내려섰다. 뚤방 시멘트 바닥에 무엇이 떨어졌다. 코피였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던 달짝지근한 것, 그것, 그랬다. 내 것이 나의 목마름을 적셔주었던 것이다.


어느날 나는 방에 누워 멀거니 여기저기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그렇구나. 저 책을 사람들이 쓴 것이로구나. 그래, 맞아. 나도 글을 써 보아야지. 그리고 나는 글을 써 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외로웠다. 내겐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스승도 문학을 이야기할 그 누구도 내겐 없었다. 오직 나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면서 나를 키워갔다. 빈 방을 찾아온 달빛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힘이 들었다. 절망은 예고도 없이 수시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어두운 저 절망의 나락 속에서 한 줄기 불빛을 살려내곤 했는데, 그것이 시였다.


그렇게 내가 산과 강에 내 몸을 모두 기대고 살기를 13년, 어느날 시가 내게로 왔다. 어두운 산에서였는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 그 어느 굽이에서였는지, 내게로 시가 왔던 것이다. 내 몸이 환해지는 시, 암울한 내 청춘의 어둠 속을 뚫고 달려왔던 한 줄기 불빛 같은 시, 세상을 알아낸 것 같은 시, 시가 내게로 왔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다섯 살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다만 살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섬진강 가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에 태어나 나는 이 곳의 모든 자연들과 갈등하고 화해하며 살았다. 나무가 나무로 보이고, 산이 산으로 보이고, 소쩍새 소리가 소쩍새 소리로 들리기까지 내가 겪은 수많은 날들이 나를 시인이게 했다.


나는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늘 보던 산과 물이지만 늘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자연과 그리도 하얀 운동장에 나뭇잎 같은 아이들, 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시가 있었다. 내 몸을 빛내주는 시, 내 암울한 청춘을 훤하게 뚫고 지나온 그 빛나는 시,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랑과 자유, 그리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정신의 풍요로움. 나는 지금도 내 의지와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로댕의 말이다.


문학을 왜 하는가? 살아야지. 죽어도 괜찮다는 하루를 나는 그냥 살 뿐이다. 문학은 최고의 삶을 사는 일이다.


[한국일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연재글 중 편집]




『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소설책,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1969년 순창농림고교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읽고 문학에 첫 관심을 가졌으며 박목월, 이어령, 서정주 등의 전집을 읽었다. 그는 발레리 시 중에 ‘바람이 분다/살아 봐야겠다’를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김수영의 《풀》을 읽고 작은 풀을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느낌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란다. 이때부터 김수영을 비롯하여 박용래, 김종삼, 황동규의 시에 심취했다.

이성부의 시집과 《해방전후사의 인식》, 잡지《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을 읽고 역사와 문학에 눈뜨게 되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시《섬진강》을 발표, 등단하였다. 그의 시 대부분은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섬진강에 대하여“나의 모든 글은 거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믿으며 내 시는 이 작은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초기 시는 주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태에 비추어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이는 이성부나 고은의 시에 영향 받은 듯하다. 초기 연작시 《섬진강》의 지배적 이미지는 작가 주변 인물들의 서사적 이야기이며 대부분 긴 형태로 기도나 분노, 풍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1990년대 이후로는 《사람들은 왜 모를까》(문학사상사, 1997)와 같이 직관에 의한 서정성이 강조된다. 이 시는 소박한 진실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특이한 감응력의 시로 평가되었다. 그는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 등의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그는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69년 순창농림고 졸업

1970년 임실 청웅초등학교 옥석분교 교사ㆍ현재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1982년 창작과비평사 발행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ㆍ1' 등 8편 발표 등단

시집 '섬진강' '꽃산 가는 길'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 편지' '그대 거침없는 사랑'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나비가 날아간다',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등

김수영문학상(1986) 소월시문학상(1997) 등 수상



[대표시 감상]


그리운 꽃편지1 / 섬진강 / 사랑하는 너에게 / 내사랑 / 불길 해지는 들길에서 / 그대생의 숲속에서 / 늘보고 싶어요 / 사람들은 왜 모를까 / 달이 떴다고 전화주시다니요 / 사랑이라는 땅 / 오늘도 / 참좋은 당신 / 내사랑은 / 11월의 노래 / 달맞이꽃 / 빗장




그리운 꽃편지 1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김용택 시인 대표작- 섬진강>
* 참고로 섬진강이라는 시는 30여편 정도가 되는데 주요 몇 작품만 올려드릴께요.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2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 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 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섬진강 3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니
이 땅에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섬진강 5


- 삶 -



이 세상

우리 사는일이

저물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보낼 일이다.

버릴 것은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밤 깊어질수록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별빛같이 눈떠 있고,

짜내도 짜내도

기름기 하나 없는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 데 박고

날릴 불티 하나 없이

새벽같이 버티는

마을 등불 몇 등같이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새벽 강물에

눈곱을 닦으며,

우리 이렇게

그리운 눈동자로 살아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


 

섬진강 10

 

전라도나 경상도
여기저기 이곳 저곳
산굽이 돌고 논밭두렁 돌아
헤어지고 만나며 아하,
그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움에 목말라
애타는 손짓으로 불러
저렇게 다 만나고 모여들어
굽이쳐 흘러
이렇게 시퍼런 그리움으로
어라 둥둥 만나
얼싸절싸 어우러지며
가슴 벅찬 출렁임으로 차오르나니
어화 어화 숨차
어화 숨막히는 저 물결
어화 어기여차
저 시퍼런 하동 포구




사랑하는 너에게




네가 잠 못 이루고 이쪽으로 돌아누울 때

나도 네 쪽으로 돌아눕는 줄 알거라.

우리 언젠가 싸워 내게 보이던

고운 뺨의 반짝이던 눈물

우리 헛되이 버릴 수 없음에 이리 그리워 애가 탄다.

잠들지 말거라 깨어 있거라 먼데서 소쩍새가 우는구나.

우리 깨어 있는 동안 사월에는 진달래도 피고 오월에는 산철쭉도 피었잖니.

우리 사이 가로막은 이 어둠 잠들지 말고 바라보자.

아,보이잖니 파란 하늘 화사한 햇살 아래 바람 살랑이는

저 푸른 논밭 화사한 풀꽃들에 나비 날지 않니.

(아,너는 오랜만에 맨발이구나)

이제 머지 않아 이 얇아져가는 끕끕한 어둠 밀려가고

허물 벗어 빛나는 아침이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화창한 봄날 날 잡아 대청소를 하고

그때는 우리 땅에 우리가 지은 농사 쌀값도 우리가 정하고 없는 살림살이라도

오손도손 단란하게 살며 밖으로도 떳떳하고 당당하자꾸나.

그날이 올 때까지 잠들지 말고 어둔 밤 깨어 있자꾸나,

어둠을 물리치며 싸우자꾸나,

아침이 올 때까지 손 내밀면 고운 두 뺨 만져질 때까지

그리하여 다리 쭉 뻗고 곤히 잠들 때까지.

네가 뒤척이는 이 밤 나라고 어찌 눕는 꼴로 잠들겠느냐.




내 사랑




당신은

내 깊은 잠을

문득문득 깨웁니다

당신은

바삐 걷는 내 발길을

문득문득 멈추게 합니다

당신은

문득 내 생각을 가져가 버리고

문득 내 말문을 닫게 합니다

당신은, 그런 당신은

어떤 사람들이 용공이라 해도

내 사랑입니다

나를 찾게 해 주신 당신

내 당신께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발소리, 숨소리 죽이며 가시를 이고 갔습니다.

그러나 모든걸 불사하고 격렬히 달아갔습니다.

인생이 허무 위에 서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허무가 아름다워지고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걸 보았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존재, 고독, 아픔, 고요, 가난과 거기에서 오는 평화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그 은혜로운 밤으로부터 영원히 그것을 깨우쳤습니다.

세상에서 사철 피고 지는 그런 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꽃은 한번 피기가 어렵고 한번 피면 질 수 없는 꽃이었습니다.

 

▒나무

 

 

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섬진강 이야기’의 시작, 산문집「정님이」펴낸 김용택 시인

레이디경향 | 기사입력 2004.08.18 11:33



“섬진강은 내 시의 젖줄!  내가 사는 작은 강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신작 산문집 「정님이」를 펴냈다. 「정님이」는 절판된 아동물 「옥이야 진메야」 의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수정하여 다시 쓴 작품. 시인이 집필중인 ‘섬진강 이야기’ 가운데 가장 앞부분에 해당하는 「정님이」에는 그의 초등학교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50여 년 전 자신이 다녔던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용택 시인의 시가 있는 마을로의 초대.  전교생 53명에 교사 6명이 전부인 ‘미니 학교’의 2학년 담임 “늘 티격태격! 아이들과의 사랑 싸움은 질리지도 않네요”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마을. 이 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든 문만 나서면 곧바로 섬진강이다. 한여름의 따사로운 햇볕이 물 위로 은가루를 마구 뿌려대는 섬진강 중・상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 속에는 푸른 하늘과 산 그림자가 잠겨 있고, 그 하늘과 산 위로는 고기들이 유유히 날아다닌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온통 산이다. 산으로 빙 둘러싸인  형상이 마치 직사각형의 구유 속 같다. 강가에는 족히 40년은 됐을 법한 커다란 느티나무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두 팔을 가득 벌려 손님을 맞는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강변 마을, 이곳에  섬진강 시인 김용택(57)의 둥지가 있다. 진메마을에 학교라곤 오로지 하나, 덕치초등학교뿐. 그곳에선 초등학교 선생님 김용택을 만날 수 있다. 전교생 53명에, 학년마다 한 학급씩 교사 6명이 전부인 미니 학교. 꽃길 따라 난 자그마한 운동장을 지나 시인이 담임으로 있는 2학년 교실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인의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수업이 끝났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교시가 한창이다. 반쯤 열려 있는 창 틈 사이로 교실 안을 훔쳐보던 순간, 시인과 눈이 마주쳤다. 시인은 차마 손님을 밖에 세워둘 수 없다는 듯 교실 안에서 잠시 기다려줄 것을 청했다. 서울에서 온 손님이 마냥 신기하다는 듯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힐끌힐끔, 검은자위를 열심히 굴려댔다. “주목!” 낯선 이방인의 출현으로 산만해진 주위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다시금 칠판 앞으로 모아진다. “여러분이 말을 안 들으면 엄마 얼굴에 주름살이 늘겠죠? 그렇게 안 되게 하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죠?” 선생님의 질문에 한 여자아이가 손을 드는 것도 생략한 채 선생님의 말에 감히 토를 달고 나섰다. “우리 엄마 얼굴엔 주름살 없는데… 스물여덟밖에 안 됐어요.”  아이다운 천진함에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엔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여기서 ‘킥’, 저기서 ‘킥킥’. 화를 삭이던 시인의 목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불호령이 떨어진다. 교실 안은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아이들은 이내 무슨 일이 있기나 했냐는 듯 또다시 제각각, 제 할 일에 바쁘다. 수업이 끝나자 시인은 ‘휴우〜’ 하고 한숨을 한 번 크게 쉬더니 푸념부터 늘어놓는다. “정말 못해 먹는다니까요. 1학년은 더 못 가르쳐요. 한 학기 내내 ‘조용히 해’만 가르치다 끝나버리죠. 요즘 애들은 말을 너무 안 들어 큰일이에요.” 시인에 대한 어설픈 선입관 때문일까. 섬진강과 함께 나고 자란 시인,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후에도 교편을 놓지 않았던 그는 분명 마른 몸매에 우수에 찬 표정으로 철없는 아이들을 나름의 노하우로 요리하겠지 확신했건만, 그는 우리 어릴 적 초등학교 선생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작은 키에 넉넉한 배, 동글납작한 얼굴, 큼지막한 안경테, 헐렁한 마 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시인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자연에서 가르침을 얻고, 시로서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사람 “사람들은 간섭이라 말하지만 나에게는 관심입니다” 아이들이 빠져 나간 텅 빈 교실, 김용택 시인의 입에선 ‘요즘 애들은 안 된다’식의 지루한 얘기가 한참 이어졌다. 시인의 넋두리를 듣고 있다가 “이젠 시만 쓰시며 살아도 되지 않나요?” 물었더니 시인은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개까지 절레 절레 흔들며 “시를 안 쓰면 안 썼지 아이들하고 떨어져선 내가 못 살지” 하는 게 아닌가? “사실 시를 쓰는 것보다 아이들과 노는 게 좋아요. 아이들이 없었으면  시를 못 썼을 것이고, 아이들하고 생활을 안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늙어버렸을 거예요. 나는 아직 철이 안 든 사람입니다. 시인이 철들면 쓰나요? 일단 철이 들었다 하면 그 시인이 쓴 시는 더이상 재미가 없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법이죠.” 시인은 교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을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며 “화가가 따로 없다” 고 감탄. 교실 문 앞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렸다는 시인의 초상화가 있다. 언뜻 보면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산도둑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인은 “내가 눈이 좀 안 좋아서 빨갛게 충혈될 때가 많은데, 한동안 붉은색이 살짝 들어간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더니만 저렇게 나를 조폭처럼 그려놨다”며 껄걸 웃음. 그제야 시인의 아이들을 향한 핀잔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아이들에 대한 불만과 타박은 김용택 시인만의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 것. 쉰을 넘긴 노스승과 아홉 살 꼬마아이들의 사랑 싸움이 이 자그마한 교실 안에서 계속될 걸 생각하니 그 모습이 그렇게 흐뭇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 아이들과 부딪치고 싸우며 정 들어가는 이 사랑 싸움을, 그는 즐기고 사랑한다 했다. 김용택 시인은 자신을 ‘이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설명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는 건 기본.
싸움이 벌어지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왜 싸우지?’라며 싸움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고, 길에 차가 뒤집혀져 있으면 가는 길을 멈춰서라도 이유를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단다. 지나가다 슬쩍 쓰레기를 길에다 버리는 아이를 발견하면 옆에 부모가 있든 없든 꾸중부터 하고 본다. 이런 그에게 사람들은 “남의 일에 왜 그리 간섭이 심하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 하지만 시인은 “그건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라 못 박는다. “나만 아는 세상, 내 것만이 중요한 세상은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시인의 세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은 학교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는 섬진강변 그의 고향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계속됐다. 마을을 휘감고 있는 길게 이어진 산을 바라보며 “천지사방이 온통 푸른 빛깔이네요”라며 좋아했더니 시인은 “저 녹색은 사람을 참 지루하게 만든다”며 뜻 모를 말을 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을 얼마나 질리게 만드는지 몰라요. 늘 푸릇푸릇, 그 모습 그대로 좀처럼 변할 줄을 모르죠. 여름은 반성을 할 줄 모르는 계절이에요.” 시인다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섬진강댐 부근 별장 같은 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도 시인의 눈엔 가시 같은 존재. “우리나라처럼 멍청하게 집을 짓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산이나 들이나 강은 빼어나고 아름다운데 집은 아무렇게나 지어버려서 늘 문제죠. 예쁜 계곡에 세울 집이면 자연에 맞게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하게 지어주면 좀 좋아요? 아름다운 산을 다 버려놨어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그가 거침없이 입 밖으로 쏟아내던 말들을 머릿속에 주섬주섬 모아 정리해보니 그 자체가 더없이 아름다운 시상이다. 시인의 세상에 대한 ‘간섭’이 아닌 ‘관심’은 그렇게 한참 동안 계속됐다.  그의 시 속엔 섬진강과 진메마을,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정님이’는 우리 모두의 추억 속 그리운 이름입니다” 섬진강과 마주하고 있는 시인의 고향 집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방 두 칸에 마루, 부엌이 전부인 네 칸 집. 이곳에서 그는 일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산다. 마당에는 잔디가 푸르름을 뽐내고 대문 옆에는 능소화가 그 아름다움을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시인의 방 앞에는 ‘관난헌(觀瀾軒)’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관난헌’은 처마에서 물결을 바라본다는 뜻. 시인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보니 길게 이어진 산 아래로 섬진강의 물줄기가 보인다. 시인은 50평생 살아온 고향집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공간으로 관난헌 밑 마루를 꼽았다. “산 아래 달이 뜨는 날, 방문을 활짝 열고 마루에 걸터앉으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스물일곱 되던 해 내가 심어놓은 느티나무와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섬진강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죠.” 진메마을은 시인 김용택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며 시를 일구어낸 텃밭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 변해버렸다. 사람도, 자연도, 풀 한 잎, 나무 한 그루까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의 수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처럼 진메마을의 인구도 감소일로에 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이 마을엔 노인들만 남아 생의 저물 녘을 지키고 있다. 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엔 서너 채가 빈집으로 버려져 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도 적지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던 마을 앞 징검다리도 넓은 시멘트 다리 사이로 그 형상을 감춰버린 지 오래. 사람들은 떠나고 물은 줄었어도 마을 앞 강가에는 좋았던 시절의 추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의 섬진강과 진메마을에 대한 사랑은 ‘그렇기 때문에’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의 절대적 사랑이다. 풀이 자라고 꽃이 피었다 지고, 같은 자리에서도 해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잎이 무성했다가는 어느 순간 속절없이 버린 뒤 흰 눈이 내려 덮이고…. 사시사철 하루하루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시인은 이곳에서 세월 가는 줄을 모르겠단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예가 바로 천국인 것을. 때문에 시인은 한시도 이곳을 떠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김용택 시인에게 있어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 시인은 그가 절실히 느끼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 시로 담아내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으로 세계를 논하려고 하면 안 되지. 시는 ‘짓는’ 게 아니라 ‘쓰는’ 거예요. 있는 것, 경험한 것, 본 것을 그대로 담아서 시적 감동을 줘야지, 시적 감동이 없으면 아무리 옳은 시라도 좋은 시라곤 할 수 없죠. 때문에 전 시가 안 써진다 하더라도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아요. 그냥 생활에 빠져 매 순간 충실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써져요. 그러면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시를 써 내려가죠. 작업이 그렇게 신이 날 수 없어요. 때에 따라선 보름 만에 시집 한 권 분량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시는 머리로 짜낸다고 써지는 게 아니에요. 삶의 내용이 모이면 시라는 형식을 통해서 내 삶의 내용이 형상화되는 것이죠.” 김용택 시인은 시인의 길과 인간의 길이 다를 수 없다고 했다. 시를 생각하기에 앞서 인간을 생각하고, 인생을 가치 있게 꾸려 나가려 할 때 그것이 그대로 시에 반영되어 ‘좋은 시’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치는‘진실, 정의, 정직’이다. 진실, 정의, 정직을 갖춘 삶, 이 세 가지가 통하는 사회가 가치 있는 사회라고 했다. 시는 이런 바탕 위에서 존재해야 하고, 그는 이런 가치를 표현하려 한다. 어쩌면 그는 이러한 이유로 이곳, 섬진강변 진메마을, 시골 학교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최근 신작 산문집 �정님이�를 펴냈다. �정님이�는 김용택 시인이 집필중인 ‘섬진강 이야기’의 가장 앞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 절판된 아동물 �옥이야 진메야�의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수정하여 다시 쓴 작품인 �정님이� 에는 김용택 시인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추억 속 그리운 이름 ‘정님이’를 기억에서 끄집어내며 자신의 고향, 정겨운 옛 모습을 더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시를 쓰면서 세상을 더 깊게 바라보고, 문학을 하면서 고향 진메마을이 얼마나 아름답고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를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그는 좋은 시가 부조리하고 부패한 사회를 정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것 자체가 ‘환경운동’ 아니겠느냐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올려다본 진메마을의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차창 한구석에 앉아 찬바람과 마주한다. 풀 내음이 물씬. 김용택 시인이 두 손에 꼬옥 쥐어준 �정님이�를 꺼내들었다. 그간 잃어버리고 살았던 초등학교 시절, 그때의 순수함이 그리워진다. 어느새 시인의 마음이 나에게 전이된 걸까?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황정옥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 1969년 순창농림고 졸업 / 1970년 임실 청웅초등학교 옥석분교 교사 / 현재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 1982년 창작과비평사 발행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 8편 발표 등단 / 1986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 1997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 작품으로는 시집 "섬진강" "꽃산 가는 길"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그대 거침없는 사랑"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나비가 날아간다",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산문집 "섬진강 이야기" "섬진강 아이들"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작은 마을" "정님이" 등이 있다. 1 김용택 시인은 덕치 초등학교의 2학년 담임.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35년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2 아이드링 직접 그렸다는 시인의 초상화. 3 슬하게 1남1녀를 두고 있는 시인은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3년 전 마련한 전주의 한 아파트와 건메 마을의 고향집을 오가며 두집 살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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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금록GUM ROK金鹿 / 블로그 / 詩人의 마을 / 2007.09.14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