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Report]당신 주위의 위험 인물들--호호야

바보처럼1 2008. 6. 26. 18:12
 

[CEO Report]당신 주위의 위험 인물들

당신을 싫어하는 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위험한 인물이다. 당신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한탄한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편집자 주>
-글_박순욱/ CEO리포트(ceoreport.co.kr) 경영사례분석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계하여야 할 사람은 당신이 싫어하거나,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당신에게 조언하기 좋아하는 사람, 욕망의 충족을 약속하는 사람, 당신을 현혹하는 사람. 이들이 당신 주위를 맴도는 위험한 인물들이다.

 

 

1. 조언을 즐겨하는 사람

 

장자(莊子)는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지식은 끝이 없다.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쫓다 우리의 생명은 파탄에 이른다.”라고 경계한다. 아인슈타인도 백사장을 산책하다 “내가 아는 지식이란 백사장의 모래 한 알 정도이다.”라고 한탄한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황주에 있을 때 강 맞은편 금산사에 한 소식했다고 소문난 불인 선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주 시문을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동파(東坡)가 부처를 찬송하는 게송을 지어 불인선사에게 전하였다.

稽首天中天 게수천중천
毫光照大千 호광조대천
八風吹不動 팔풍취부동
端坐紫金臺 단좌자금대

백호의 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는
하늘 중의 하늘에게 고개 숙여 절하노니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금대에 단정히 앉아 있구나.

'팔풍‘은 인생에서 만나는 이익, 쇠퇴, 훼손, 명예, 칭송, 비난, 고통, 즐거움의 여덟 가지 일을 말한다.

게송을 읽은 불인 선사는 소동파가 글로는 부처님을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글재주를 자랑하고 있음에 불과 하다고 판단하고는 붓을 들어 게송 아래에다 ’헛소리 헛소리‘라고 크게 적어 시동(侍童)에게 전하게 하였다.

이 글을 받은 소동파는 불인선사가 자신을 무시함에 크게 화를 내며 금산사를 찾았다. 불인선사는 강을 건너 찾아온 소동파를 힐긋 보고는 붓을 들어 이렇게 적었다.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더니, 헛소리 한 마디에 바로 강을 건너 왔네.”

당송팔대가로 이름난 소식(蘇軾)조차 자신의 지식을 뽐내다 그만 불인선사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다. 소식(蘇軾)이 비록 만권의 독서는 했을지라도 선(禪)의 세계에서는 불인선사에게 미치지 못함이 당연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타인의 스승임을 스스로 자임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지위를, 혹은 기술을 자랑하며 당신의 스승임을 자처하고, 자신의 지도를 따르기를 강요한다.

허나 그들의 가르침이란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다 “헛소리 한 마디에 이를 따져야겠다.”고 강을 건너는 소식보다 나을 리 없다.

스스로 당신의 스승임을 자임하며 자신의 지도를 따를 것을 강요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그들이 자랑하는 지식이란 하잘 것 없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이 보잘 것 없을수록 자신이 옮음을 더욱 강조하다.

그리고 당신이 자신의 말을 믿고 따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일이 틀어졌을 때 그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믿고 따른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성공은 자신의 몫이지만 실패는 당신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앎에는 끝이 없다. 스승임을 자처하는 사람의 앎 또한 하잘 것 없다. 그들은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들이 자랑하는 지식은 상대에 대한 교만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자랑하는 지식이란 검증되지 않는 표피적인 지식일 뿐이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깊이 있는 대화의 자리는 회피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는 겸손을 가장하다 당신에게는 조용히 속삭인다.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2. 언행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미사여구로 사람을 현혹시키지만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에게 속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그 사람에게 속기보다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은 부당한 것을 욕구할 때 그것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의지한다. 그리고 그 약속이 자신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흔히 하는 속된 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강압으로 이루어진 정권이 아니었다.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와 엘리트의 공모로 이루어진 정권이다. 나치정권은 독일국민에게 경제성장을 약속하고 정치적 안정을 장담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책임을 면제할 것을 약속하였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지우지 않는 정권에게 국민들은 환호하였고, 그들이 자행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눈 감고, 입 막으며 동조하였다.

결국 나치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독일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이 시대의 탁월한 정치 사상가로서 나치정권을 피해 독일로 이주하였던 한나 아렌트(Hnnah Arendt)는 2차 대전 직후 독일을 방문하여 광범위한 조사를 끝내고는 아연질색 하였다.

한나 아렌트(Hnnah Arendt)가 조사한 바로는 2차 대전 직후의 참혹함속에서도 독일 국민은 여전히 “전쟁 없는 히틀러”를 희망하고 있었다. 부와 번영을 약속하지만 자신에게는 책임을 면제하는 지도자라면 기꺼이 그를 따르겠다는 것이 독일국민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일이 과거,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국가라는 거대 틀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사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언젠가 소위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이 그런 자리에 있다 보니 “사기를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거액을 건네주고는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경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부당한 욕망에 대해 책망하고는 그 사람들을 돌려보낸다고 한다. 그들의 거래조건에는 반드시 부정, 위법, 탈법이 존재하고, 그로인한 막대한 이익이 약속되고 거액의 돈이 건네지는 것이 일반적 수순이라고 한다.

맹자는 “이유 없이 주는 선물은 환심을 사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어찌 환심을 사려고 주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겠는가?”고 말한다. 군자애재 취지유도(君子愛財 取之有道),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도에 따라 그것을 취한다.

재물만이 선물이 아니다. 당신의 환심을 사기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사람을 경계하라. 대가없이 무엇인가를 약속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맹자는 “사람이 함부로 말을 내뱉는 것은 그 말에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3. 본질을 흐리는 사람


사건이 진행될 때 본질을 도외시하고 말단에 치중하거나, 논의 도중 본질을 흐리고 논점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만일 그들이 우둔하여 그러하다면 깨우치면 되지만 당신과 함께 있는 그 사람은 우둔하지 않다.

그들이 본질을 흐리고 논점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이익은 대부분의 경우 모두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익이기 십상이다.

당신이 혜안을 갖추지 못한다면 어리둥절 하는 사이 당신도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얻는 이익보다 더 많은 손실을 당신이 감내하여야 한다. 사물을 꿰뚫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집 아래 그림자를 살펴 해와 달의 움직임과 음양의 변화를 알 수 있고, 그릇에 언 얼음을 보고 추운 날씨임을 알고, 물고기와 자라가 몸을 숨길 것을 알 수 있으며, 솥 안의 고기 한 조각을 맛보고도 솥 전체의 고기 맛을 알 수 있다.”


전체를 보아야만, 결과를 보아야만 비로소 일의 진행을 알 수 있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부분을 보고, 원인을 알아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일의 진행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고비가 있지만 혜안을 갖춘다면 그 결과는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옳은 길을 택한다면 후회할 일은 없다. 설령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행하였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그러나 그 잘못된 방향이 부정한 사익을 추구하는 자에 의해 정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추종세력이 되어 그 자를 도왔다면 그 얼마나 후회스러운 결과인가? 부분을 보고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 본질을 흐리는 자에게 현혹되지 않는 유일한 방안이다.(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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