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39) 민족의 영산 백두산

바보처럼1 2010. 3. 30. 02:09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39) 민족의 영산 백두산

산용담·두메자운·하늘매발톱 다투어 ‘활짝’ 이슬먹고 자란 ‘고산들꽃’ 낙원

단군신화가 어려 있는 우리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요, 국토의 뼈대산줄기인 백두대간이 발원하는 백두산은 높이·면적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한다. 산의 높이는 광복 전 일제가 측량한 병사봉의 높이 2744m로 알려져 오다 최근 2750m로 밝혀졌고, 병사봉이라는 이름도 원래 이름인 장군봉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산세는 1000년쯤 전인 고려 초기의 화산 대폭발 뒤에 형성됐다. 이때 천지도 만들어졌고, 이후 1597년과 1668년,1702년 등 세 차례에 걸쳐 화산활동이 있었다. 면적은 중국 쪽 백두산을 합해 3만㎢에 이른다.

백두산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천지는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칼데라 호수다. 화산이 폭발한 뒤에 중심부가 움푹 내려앉아 호수가 된 것인데, 해발 2190m에 위치한다. 깊이는 평균 213m, 최고 384m에 이르며, 둘레 14.4㎞, 면적 9.2㎢, 저수량 20억t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천지 둘레에는 해발 2500m가 넘는 봉우리가 16개 이상 이어지며 칼데라의 외륜산을 형성하고 있는데, 천지 쪽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천지는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칼데라 호수

높은 해발고도와 넓은 산역, 그리고 특수한 지형 등은 백두산에 특별한 식물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살고 있는 식물들이 특별할 뿐만 아니라 그 숫자도 많아서 중부지방의 산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된다. 최신 중국자료에 의하면 백두산에는 1279종,175변종,39품종 등 1493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식물들은 몇 개의 식생대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식생대는 크게 활엽침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고산초원대 등으로 구분한다. 해발 1100m 이하에서는 낙엽활엽수와 침엽수가 섞여 자라고 있으며, 이후 2000m까지는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숲이 이어진다. 그 위로는 큰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고산초원지대가 펼쳐지는데, 경계가 되는 높이는 1800~2000m다. 이 높이를 수목한계선이라고 한다. 이 선을 경계로 위쪽에는 키가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풀과 아주 작은 떨기나무들만 자라고 있다.

수목한계선 아래쪽으로는 완만한 경사 지역에 ‘산림의 바다’라고 부를 만한 짙고 푸른 숲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데, 목재 생산지로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이 지역에는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잎갈나무 등의 침엽수와 사시나무, 자작나무, 피나무 등의 활엽수가 섞여서 숲을 이루며, 숲 바닥에는 까치밥나무, 물싸리, 들쭉나무, 백산차 등의 떨기나무와 눈개승마, 날개하늘나리, 분홍노루발 같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수목한계선이 가까워지면 활엽수는 거의 없어지고 침엽수인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잎갈나무, 종비나무 등이 자라며, 이곳보다 더 위에는 사스래나무가 순군락을 이룬다. 사스래나무숲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키가 큰 나무는 자라지 못하는 고산초원지대가 정상부까지 이어진다.

수목한계선 위엔 고산 툰드라 지대

수목한계선 위의 고산툰드라 지대에 살며 짧은 여름 동안에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고산식물들은 식물학자나 동호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가솔송, 노랑만병초,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시로미, 월귤, 좀참꽃, 홍월귤 같은 키가 무릎보다 낮은 떨기나무와 구름국화, 껄껄이풀, 돌창포, 두메양귀비, 두메자운, 바위구절초, 산용담, 털개불알꽃, 큰오이풀, 하늘매발톱, 화살곰취 등의 고산풀꽃이 때를 달리하며 2개월 남짓한 해빙기 동안 바삐 꽃을 피워 고산화원을 장식한다. 이런 식물들이 앞을 다투며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산초원의 화원 풍경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바뀌게 마련이다. 같은 날짜에 백두산을 찾아도 해마다 다른 종류의 꽃밭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백두산만이 가진 묘미 가운데 하나다.

 

고산의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자라서인 듯 구름국화, 구름꽃다지, 구름범의귀, 구름송이풀, 구름패랭이꽃 등 이름에 ‘구름’이 붙은 것이 많다. 또한, 높은 곳에 자란다는 뜻으로 산속단, 산용담, 산쥐손이, 두메냉이, 두메분취, 두메양귀비, 두메자운, 두메투구꽃처럼 ‘산’이나 ‘두메’가 이름 앞에 붙은 것도 많다. 이들 모두 백두산 높은 곳에서 맑고 영롱한 이슬을 먹고 사는 고산식물들이다. 혹독한 고산환경에서 꽃가루받이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고산식물만의 특징을 가진 것은 물론이다.

중국 쪽 백두산의 고산지대에는 이런 꽃들이 자라고 있어서, 북한에만 자생하는 식물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달래준다. 우리식물로 기록은 되어 있지만,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북한의 고산식물들과 북방계식물들을 이곳 백두산의 고산초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쪽의 백두산을 20여 차례나 방문한 식물학자도 있을 정도다. 생태적으로 보아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백두산을 중국이 아니라 북쪽 삼지연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2008-11-22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