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봄마실_자연이야기] 봄을 알리는 작은 존재, 야생화의 삶과 지혜

바보처럼1 2010. 3. 30. 02:49

[SPECIAL | 봄마실_자연이야기] 봄을 알리는 작은 존재, 야생화의 삶과 지혜
4개월 가까운 추위 속에 온통 회색빛으로 덮여 있던 삭막한 대지를 서서히 초록으로 바꾸는 자연의 힘.

▲ 개불알풀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실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단단한 땅속에서 눈이 빠져라 기다린 뒤라서일까? 봄을 맞은 온 세상은 발 디딜 틈 없이 솟아오른 크고 작은 풀들로 넘쳐나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른 봄,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따스한 양지에(제일 먼저 피어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쪽빛 꽃잎을 가진 개불알풀이 꽃망울을 내민다. 이들은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살지 않던, 흔히 말하는 귀화식물이다. 이름을 보면 개의 생식기 모양을 정말 잘 활용하고 있는데, 실제 이들이 만들어낸 종자낭(씨앗주머니)이 개의 불알(고환)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이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바람 따라 물 따라 자연스럽게 삶의 터전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귀화식물이니 자생식물이니 나누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나누어 먹고살도록 해주는 식물들보다 포용과 융화의 마음이 훨씬 부족해 보인다.

▲ 할미꽃

개불알풀이 피고 지는 자리 주변에는 우리 식물이라고 하는 꽃다지와 봄맞이가 모래 눈곱을 떼지 못한 꽃망울을 단 채 기지개를 펴고 있다. 꽃다지는 온몸이 털투성이라서 마치 하얀 솜털을 묻혀둔 것 같다. 이 친구만 털투성이가 아니다. 배냇저고리를 미처 풀어내지도 못한, 손싸개를 하고 있는 신생아의 앙증맞은 손 모양을 빼닮은 봄맞이 잎에도 온통 흰색 털이 나 있다. 묘지에서 볼 수 있는 막 피어오른 젊디젊은 꽃인데도 할머니 이름이 붙은 할미꽃도 역시 흰색 털투성이다. 솜방망이도 그 이름처럼, 온몸이 솜으로 뒤덮인 것처럼 하얗다.

이처럼 빽빽한 흰색 털로 무장한 이유는 빛이 털 속으로 들어오면 수많은 털과 충돌하면서 열을 발생시키는데, 이 열에너지를 최대한 추출 및 저장할 수 있게 하려 함이다. 봄철 짧은 햇살로도 살아가는 지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가늘게 자란 잎과 줄기 그리고 꽃대에 달린 털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길게 자라나기 때문에(사람으로 말하면 몸통 폭의 서너 배인 1m쯤 되는 털로 뒤덮임)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두툼한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된다.

▲ 꽃다지

외부의 힘으로부터 열을 만들어 생활할 수 없으면 스스로 열을 내어 자구책을 찾는 야생화도 있다. 눈밭에서 피어나기에 그 신비스런 힘을 담아보고자 사진가라면 누구나 탐내는 꽃, 복수초가 그 주인공이다. 실제 복수초는 개화 시기에 줄기와 뿌리에서 열을 내 땅을 녹이고 수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에 마치 항온식물처럼 여겨진다. 추위와 약한 빛으로부터 삶에 필요한 힘과 물질을 최대한 얻어내야 하는 것, 이것은 다른 식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 먼저 한해살이를 시작해야 하는 키 작은 야생화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러기에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살아남으려고 몸에 안토시안계 색소를 품고 있거나, 체온을 떨어뜨리는 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땅에 납작하게 붙어 한 해를 출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은 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지혜들을 발견하게 된다.

▲ 봄맞이꽃

이른 봄, 털북숭이 야생화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진들을 보면 질서정연하게 방한용으로 배치되었던 털을 손으로 만지고 쓰러뜨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해버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손으로 만진 식물은 대부분 동상에 결려 죽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 땅에서 살아남은 한 뼘도 채 안 되는 그 많은 식물들이 화려하고 멋진 꽃을 피워 우리의 눈과 마음 그리고 자연환경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을 잠시라도 인정해 보자. 그들이 우리 손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길이 그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임을 생각해 보자.

봄꽃을 찾아 산으로 들로 들어선 우리들의 발자국 속에서는 미처 피어오르지 못한 채 사라져간 작은 생명의 흔적만이 뒹굴고 있다. 이른 봄 내가 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이유다.

글 사진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

2009-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