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스크랩] 고1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편지 2

바보처럼1 2006. 5. 30. 11:56
 

 내면의 자신감이 유머 감각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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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들에게서 세상 살아가는 힘을 발견했다. 바로 유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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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TV를 보다가 네가 배우 몇 명의 이름을 대며 그들의 가족 관계와 사생활까지도 줄줄 풀어놓는 것을 보고, 내가 웃으며 이렇게 물었지.

“브룩 실즈의 전화번호가 몇 번이니?”

그랬더니 넌 “죄송해요, 아빠.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알아내지 못했어요. 혹시 알고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라고 받아쳤지.

네 말에 난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단다. 너에게 그런 유머 감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 뭐냐.

‘유머 감각이 있다(With a sense of humor).’ 이 말은 중국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사람을 극찬하는 말로 쓰인단다. 왜냐하면 이 말은 상대방이 친절하고 성격이 원만하며,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활력을 주는 특별한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혜와 자신감, 환경 적응 능력까지 갖추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유머는 부싯돌을 서로 부딪칠 때 튀는 불꽃처럼 아주 순간적인 영감이란다. 그러므로 유머러스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순발력과 기지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한마디가 마치 불꽃이 메마른 장작더미를 훨훨 태우듯 어색하고 긴장된 상황을 부드럽게 해주고, 또 우스운 이야기로 세태를 풍자하고 유익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단다. 게다가 상대방의 노골적인 자기 방어나 반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지.

 

국회에서 나이 든 국회의원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다른 국회의원을 난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이럴 때 누군가 국회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든 지팡이를 입구에 걸어놓고 들어가도록 엄격하게 규정하자고 제안하고, 국회의장이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치는 데 동의한다면 표결 결과가 어떻든 국회의원들 모두 떨떠름함을 감출 수 없겠지. 하지만 만약 누군가 기지를 발휘해 빙그레 웃으며, “부적절한 행동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지팡이를 국회 입구에 걸어두고 들어옵시다. 또 두 입술과 손발도 소지품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옵시다”라고 말해 좌중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면 어떨까. 아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사태가 수습될 거야.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볼테르가 어떤 사람들의 작품을 크게 칭찬했는데, 정작 상대방은 볼테르의 작품에 혹평을 쏟아 부었단다. 누군가 그에게 불공평하지 않느냐며 투덜거리자, 볼테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

“우리 둘 다 실수한 거지요.”

이 짧은 한마디로 어색한 상황이 종결되었음은 물론 상대방에게 일침을 가하는 효과까지 볼 수 있었단다.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나는구나. 미국의 한 노동자가 러시아의 한 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란다. 공장 주차장에 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 미국인이 그것이 누구의 차인지 물었단다. 그러자 러시아 공장의 직원이 대답했지.

“공장은 우리 직원들의 것이고, 저 자동차는 사장의 것이지요.”

그러자 미국인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아쉽게도 우리는 당신들만큼 운이 좋지 않군요. 우린 공장은 사장의 것이고, 자동차는 우리의 것이랍니다.”

이 짤막한 대화에 심오한 풍자의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니?

 

하지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유머와 풍자는 엄연히 다른 거야. 유머에도 풍자의 뜻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방식이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단다. 남에게도 사용할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도 물론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유머가 유머로 받아들여지려면 풍자하는 사람과 풍자를 당하는 사람 모두 여유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단다.

예전에 머리가 훤히 벗겨진 사람을 만났는데, 누군가 그의 머리를 보며 우스갯소리를 몇 마디 건넸더니 금방 정색을 하더란다. 아마도 상대방의 유머가 적절하지 않아 그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야. 그 사람이 원래 자기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 다음에 한 신문사의 편집장을 만났는데, 그 역시 대머리였어. 그런데 남들이 그에게 반짝이는 두뇌를 가졌다며 낄낄거렸더니, 뜻밖에도 그가 같이 웃으며 이렇게 되받아치지 뭐냐.

“날 얕잡아보지 말게나. 두뇌 회전이 얼마나 빨랐으면 머리카락도 견디지 못하고 몽땅 빠져버렸겠나?”

만약 이 편집장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아 상대의 말을 되받아칠 수 있었겠니?

 

개방적이고 풍족한 사회일수록 그 사회 구성원들이 유머를 즐기고, 폐쇄적이고 각박한 사회일수록 유머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란다. 사회에 유머가 부족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럴 만한 재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고, 또 사람들이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자괴감을 감추고 있는 것이지.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바로 원만하고 긍정적인 인격이란다.

1981년 3월 30일,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 백악관 언론 담당 비서관 제임스 브래디도 이마에 총을 맞는 중상을 입었단다. 그가 피범벅이 된 얼굴로 고꾸라지는 모습에 미국 전체가 경악했지. 당시 그가 사망했다고 보도한 매스컴들도 적지 않았단다. 어느 누구도 그런 중상을 입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거든.

그런데 아들아! 바로 오늘(1987년 11월의 어느 날), 나는 TV에서 놀라운 뉴스를 접했단다. 제임스 브래디가 대뇌의 절반이 손상되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를 딛고 일어나, 승마를 하고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게다가 예전과 다름없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살고 있다는구나.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단다.


“유머는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습니다. 불운은 나의 육신을 쓰러뜨릴 수는 있었지만, 나의 유머 감각을 말살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아, 넌 유머 감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건 우리의 삶을 낙관적으로 보는 태도란다.

 

 

-<자기를 극복하라> 중에서

출처 : 추수밭
글쓴이 : 추수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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