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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라는 이름도 축산항 인근 죽도(竹島·대나무섬) 해역에서 잡아올린 게의 다리가 대나무 마디처럼 생겨 붙여졌다고 한다. 이처럼 축산항은 대게와 오징어 등 어업생산의 전초기지 역할도 담당해 왔다. 지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어업과 농·축산업을 연계하는 지역특화의 전초기지로 자리잡고 있다. 해법은 ‘발상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살기좋은 지역만들기’ 30개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게맛’은 살이 아닌 껍데기에 있다?
매년 수십만명의 방문객이 축산항 일대 음식점에서 먹어치우는 대게는 위판장을 통해 외지로 팔려나가는 양보다 월등하게 많다. 전체 대게 어획량의 80%가량이 직거래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에는 대게 껍데기 같은 잔해물들이 수북이 쌓여 있을 법한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게와 같은 갑각류 껍데기에는 키토산이 풍부하다. 키토산은 노화 억제 및 면역력 강화 기능과 더불어 생체리듬 조절 기능까지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대게 껍데기는 어민들에게는 처치 곤란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농민에게는 논밭에 뿌리는 유용한 비료용 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특산품인 ‘키토산 쌀’은 이렇게 탄생했다.
지난 28년간 대게잡이 어선을 운영해온 김해성(50)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게 껍데기는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농민들의 경쟁이 치열해 없어서 못 가져갈 정도”라고 전했다.
에덴농장에서 생산되는 ‘키토산 계란’도 닭에게 주는 모이에 대게 껍데기를 갈아넣은 것이다. 일반 계란의 납품가가 10개당 1800∼1900원 정도인 반면, 키토산 계란은 이보다 30∼80%가량 비싼 2300∼3200원 수준이다. 때문에 에덴농장은 연매출만 20억원이 넘고, 직원 수도 10여명에 이른다.
에덴농장 이상환(31)씨는 “영덕에서 유일한 양계농가라 질병 예방과 브랜드화에 강점을 가진 것”이라면서 “남이 하는 일을 따라하기보다 남이 하지 않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경쟁력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성게·불가사리,‘바다의 해적’서 ‘농사짓는 단비’로
새로운 ‘쓸모’를 찾은 것은 비단 대게 껍데기만은 아니다.
인근 해역에 많이 서식하는 성게는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對)일본 수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한때 성게는 불가사리와 더불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수출길이 막히면서 어민들이 성게 채취를 중단하자, 전복의 먹이가 되는 미역 등 해초류를 먹어치우는 ‘바다의 해적’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농민들이 성게는 물론, 불가사리를 식용이 아닌 퇴비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게에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물질인 타우린 등이, 불가사리에는 인체에 유용한 칼슘 등이 각각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논밭에는 화학비료 대신 성게와 불가사리를 가공한 천연비료를 뿌리는 친환경 농법도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일반쌀 80㎏ 한 가마당 16만∼17만원선인데 반해 이곳에서 생산돼 ‘불가사리 쌀’,‘타우린 쌀’ 등의 상표가 붙을 경우 25만원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김병목 영덕군수는 “수산물의 활용 범위를 김치 등 가공식품까지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면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기에 앞서 지역 특성을 살려나가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덕 김상화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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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달 ‘물가자미 축제’ 김병목 영덕군수 “특성 없는 지역축제 난립 문제”
“고만고만한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최해서야 경쟁력이 생기겠습니까.”
김병목 경북 영덕군수는 지역축제 난립에 대해 이같이 일침을 가했다.
예컨대 산지가 전체 면적의 81.5%에 이르는 영덕군은 우리나라 전체 산송이버섯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북 영덕군·울진군·봉화군과 강원 양양군 등 국내 4대 송이 주산지 가운데 ‘송이 축제’를 열지 않는 곳은 영덕이 유일하다.
또 과메기 생산량도 인근 포항시에 뒤지지 않지만,‘과메기 축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영덕군은 이 지역 대표 축제인 ‘대게 축제’에 이어 또다른 주산물이자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고 있는 ‘물가자미 축제’를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인 축산마을에서 오는 4월 말 열 계획이다.
김 군수는 “이미 다른 곳에서 특화돼 있는 축제를 따라하는 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라면서 “인근 지역끼리 협력·조정해야 인지도는 물론, 지역 경쟁력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군수는 또 영덕군의 가장 큰 장점으로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공장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주저없이 꼽았다. 물론 뭉칫돈이 들어올 곳이 없다보니 지방재정은 열악하다. 연간 예산 규모는 2000억원이 넘지만, 지방세 수입은 담배소비세 25억원 등 80억원이 고작이다.
그는 “종합부동산세다 뭐다 말들도 많지만, 딴세상 얘기”라면서 “무리하게 공장을 짓기 보다 지역 주산물에 청정지역이라는 포장을 씌우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축산마을에 향후 3년 동안 투입될 국비 186억원, 지방비 132억원, 민자유치 27억원 등 모두 345억원은 ▲수변공간 정리 ▲생태공원 조성 ▲하수종말처리장 설치 등 생태환경 보존에 집중 투입될 예정이다.
김 군수는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해양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뒤 “수산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보존하기 위한 ‘바다종합개발계획’도 수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무분별한 대게잡이 자율규제키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를 위한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마을 주민들의 첫걸음은 ‘대게 지키기’이다.
대게잡이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대상지역 선정 직후 12월 이전에는 대게잡이를 자제하기로 주민들이 합의했다. 또 자율 규제와 관리를 위해 이달 초에는 주민 공동으로 영어법인까지 설립했다.
김해성(50)씨는 “어족 자원이 줄어들면서 대게를 잡으려는 연·근해 어선간 영역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라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대게를 마구잡이식으로 잡아들일 경우 우리 지역의 대표 자원인 대게가 고갈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환(40)씨는 “전국적으로 대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영덕 대게로 팔려나가고 있다.”면서 “영어법인을 통해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해 차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번영회와 청년회, 어촌계 등 자생단체 대표자들은 기존 60대 이상 노년층에서 40∼50대 젊은층으로 이른바 ‘물갈이’도 이뤄졌다. 마을의 앞날은 젊은층이 책임지고 주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성만(49)씨는 “축산항 일대 개발 문제는 선거철마다 20년 넘게 나온 얘기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면서 “지금까지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기다리지 않고 주민들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축산마을 주민들의 전체 소득 가운데 90% 정도는 대게와 오징어 등 수산물 생산·가공을 통해 얻고 있다. 수산물 직거래를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임상휘(47)씨는 “수협에 위탁 판매하는 것보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 등과 직거래할 경우 같은 양을 팔아도 소득은 2배 이상 높아진다.”면서 “아직은 마을이 볼품 없는 곳도 많지만, 외지인들이 와서 머물고 싶은 곳으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영덕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