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정묘호란의 후유증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인조는 1627년 4월12일, 서울로 돌아와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1624년 이괄의 난을 맞아 서울을 버렸다가 되찾았던 경험을 3년 만에 되풀이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어렵사리 정권은 지킬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청북에서는 의병들이 계속 저항하.. 역사 2007.10.21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4 [병자호란 다시 읽기] (30) 이괄(李适)의 난(亂)이 끼친 영향 Ⅳ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정권의 취약점과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인조정권이 구상하고 있던 계획들을 흐트러뜨렸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후금을 정벌하여 명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호기롭게 내세웠던 표방은 물거.. 역사 2007.08.01
(29)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3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1624년 2월10일 이괄이 서울로 입성한 직후, 도원수 장만은 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장만은 초조했다. 반란군에게 도성을 내주고 국왕으로 하여금 파천 길에 오르게 만든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장만은 파주 혜음.. 역사 2007.07.25
(28)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28)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 Ⅱ 인조반정을 일으키던 당일, 대장 김류는 미적거렸다.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경에 모이기로 했던 약속을 어겼고, 그가 나타나지 않자 반정군 진영은 동요했다. 바로 그 때 군사들을 다잡아 대오를 안정시킨 사람이 .. 역사 2007.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