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본 천태종 총본산 엔랴쿠지 사찰

바보처럼1 2007. 5. 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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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25)일본 천태종 총본산 엔랴쿠지 사찰의 적산궁
'신라明神' 받드는 사당… '자각대사' 원인이 세워
 ◇엔랴쿠지 가람 북쪽의 중심 가람인 ‘요가와중당(근본관음당)
입적 2년째에 ‘자각대사’ 시호를 받은 원인(慈覺大師 圓仁·엔닌 794∼864)은 일본 성산(聖山) 히에이산(848m)에 있는 엔랴쿠지 사찰에 15세 때 동자승으로 들어가 고승이 됐다. 먼 훗날 일본 천태종 총본산인 엔랴쿠지의 ‘제3세 천태좌주’(第三世 天台座主)로 가람을 지배한 승직자다. 스승은 엔랴쿠지 사찰을 세운 신라인 전교대사 최징(767∼822). 그 제자로 입문한 것은 808년 무렵이다.

원인은 시모노국(下野國) 쓰가군(都賀郡)의 신라인 호족 니부(壬生) 가문에서 태어났다. 신라 계열 왜의 실질적인 초대왕 숭신천황(스진·3C 전후의 나라 지방 지배자)과 핏줄이 이어진다. 하루키 가게야마 박사(교토국립박물관)는 “그의 선조는 숭신천황의 제1왕자와 연결되는 지방의 명문가였다”(‘比叡山その宗敎と歷史’ 1970)고 말했다.

히에이산 입산에 앞서 원인은 9세 때 고향 쓰가땅의 다이지지(大慈寺) 사찰에 들어가 중국인 광지(廣智)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이지지 사찰은 본래 백제인 고승 행기보살(行基菩薩·뒷날 왜왕실 최초의 대승정이 됨, 668∼749)이 세웠던 48곳의 사찰 중 한 곳이다. 원인의 ‘일기’에 따르면 “어느 날 밤 꿈에 ‘위엄 있는 고승’을 만났다. 이 꿈에 나타난 고승을 히에이산에서 최징의 얼굴을 처음 대하는 순간 확인했다”고 한다.

히에이산에 온 원인 소년은 당시 42세인 최징 스님의 직제자가 되어 주로 지관(止觀)의 법문(法文)을 배우며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학생생활을 했다. ‘지관’이란 천태종에서 헛된 망상을 버리고 고요한 속에서 밝은 지혜로 천지 간의 온갖 법도를 관조하는 일을 가리킨다. 35세 때 잠시 산에서 내려와 고향땅 쪽으로 돌아다니며 포교생활도 했으나 곧 다시 히에이산으로 돌아와 산 북쪽 후미진 곳에 틀어박혀 깊은 명상 속에 참선 고행을 시작했다고 그의 전기인 ‘자각대사전’(9세기)에 적혀 있다. 원인 스님의 고행을 기록한 ‘예악요기’(叡岳要記·10세기)에 따르면 그는 히에이산 깊은 산속인 요가와(橫川)에서 죽음에 처할 만큼 큰 고통을 견뎌내며 3년 동안 참선을 행했다고 한다.

◇엔랴쿠지 사찰 근본중당 앞 언덕의 신라 해상왕 ‘장보고 기념비’(왼쪽), 요가와중당 내의 불상.

“원인은 커다란 고목인 삼나무 구멍 속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아 3년 동안 칩거했다. 밤낮없이 ‘법화경’을 외워 그 묘리를 깨달으며 참선하는 가운데 건강이 극도로 악화했다. 마침내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고통 속에 생명마저 위급하게 되었다.”

‘자각대사전’은 이런 3년 고행 끝에 꿈을 꾸니 하늘에서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 나는 ‘불사의 묘약’이 내려왔다고 전한다. 그것을 꿈결에 받아먹으니 이튿날부터 곧장 건강은 회복되고 시력마저 되찾게 됐다. 이에 힘을 얻어 초필(草筆)을 만들어 ‘법화경’ 8권 6만8000 글자를 모두 써냈다고 한다. 훗날 그 제자들은 원인이 쓴 ‘법화경’을 ‘근본여법경’이라 부르며 받들었다. 오늘의 히에이산 엔랴쿠지 사찰 북쪽의 중심 가람인 ‘요가와중당’(근본관음당)은 ‘근본여법경’을 본존(本尊)으로 받드는 터전이다.

요가와중당 맞은편 언덕에는 ‘신라명신’(新羅明神)의 신령을 받드는 사당인 ‘적산궁’(赤山宮)이 서 있다. 적산궁을 세운 이는 다름아닌 원인이다. 원인이 적산궁을 건립한 것은 10년 동안 당나라에서 고행하며 구법순례(求法巡禮)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847년. ‘요가와중당’의 경내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각대사 원인 스님이 왕의 칙허를 받아 당나라로 유학을 갔을 당시 중국 적산(赤山)에서 신라명신을 받들기로 했다. 그런 공덕에 의해 10년간의 수행을 무사하게 마치고 귀국한 후에 이곳에 사당을 세우게 됐다. 그 이후 전국 사찰에서는 천태종을 전승하는 대사(大師)로 자각대사를 우러르게 됐고 천태종의 불법수호신으로 신라명신을 제사모시게 됐다. 재해를 막고 장수를 누리도록 이끌어 주시는 신으로서 ‘적산명신’이라 받들어 부르는데 이 신은 ‘지장보살’의 화신이기도 하다.”

신라명신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신라명신은 본래 원인의 스승인 최징을 수호한 신이다. 그 발자취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최징은 803년 4월16일 간무왕(781∼806 재위)의 칙허를 받아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그가 구다라스(백제주·지금의 오사카부)의 ‘나니와쓰’(난파진)에서 배를 타고 찾아간 곳은 당나라가 아닌 규슈의 신라신 터전인 ‘가와라다케’(香春岳)의 가와라신사였다.

◇요가와중당 경내 ‘원인’(圓仁) 스님의 모습 그림과 설명문.

최징 스님은 “이곳에서 1년3개월 동안 ‘신라명신’을 모시다 804년 7월6일 신라배를 얻어타고 당나라로 떠나갔다”(‘叡山大師傳’)고 기록에 전해진다. 그 무렵 일본의 학문승이나 사절은 항해의 선진국이었던 신라 배에 의존해 당나라를 오갔다는 것이 규슈대 불교사학자 다무라 엔쵸(田村圓澄) 교수의 연구 결과다.

“…일본으로 귀국할 때 신라를 경유한 것이 틀림없다. 일정 기간 신라에 머물렀을 것이며 신라의 왕도 경주에 체류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신라 불교가 일본으로 전해지는 길이 열렸다.”(‘古代日本佛敎と朝鮮佛敎’ 1985)

최징은 당나라 유학을 무사히 마친 후 9년째인 814년 다시금 신라신의 터전 가와라다케로 찾아가 ‘가와라신궁사’(香春神宮寺)라는 사당 겸 사찰을 창건하고 신라명신을 모셨다. 고대 일본에서 신령님과 부처님을 함께 합사하는 이른바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는 왕실제도를 따르는 것이 바로 ‘신궁사’다. 신과 불은 일심동체라는 종교관에서였다.

원인도 당나라로 가면서 스승이 세운 ‘가와라신궁사’에 참배했고, 이때부터 스승이 모시던 신라명신을 숭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인이 10년 당 유학 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것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다. 현재 교토국립박물관에 수장된 ‘입당구법순례행기’의 고본에 의하면, 원인은 836년 5월14일 구다라스의 나니와쓰 나루터를 떠나 가와라신궁사로 향했다. 7월2일 신궁사를 떠나 당나라로 가려 했으나 폭풍 때문에 눌러앉았다. 결국 당나라 항로에 오른 것은 2년 후인 838년 6월13일이다.

◇‘요가와중당’ 언덕 위로 보이는 ‘신라명신’의 ‘적산궁’(赤山宮) 사당.

양자강 하구에 당도한 것은 838년 7월. 그러나 중국 관헌들은 목적지인 절강성 천태산으로 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고 일본으로 추방했다. 원인 일행은 11개월을 허송하다 신라인 승려이자 일본어 통역인 도현(道玄) 스님과 신라 사람들, 특히 해상왕 장보고(출생년 미상∼846)의 도움으로 839년 6월7일 산둥반도의 동쪽 기슭에 당도해 신라 사찰에 가서 보호받게 됐다. 원인은 이 사찰을 ‘적산승원’(赤山僧院)으로 일컬었다. 원인 일행은 산둥성 신라방 사회의 따사로운 보호 속에 신라 승원에서 대접받으며 가을과 겨울을 조용하게 보냈다.

적산승원의 신라 스님들은 원인에게 멀고 가기 힘든 남쪽의 천태산 대신에 그곳에서 가까운 산시성 동북쪽의 오대산으로 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오대산도 성스러운 산으로서 천태산에 못지않은 불교 학문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원인은 권고를 따랐다. 840년 2월19일에 적산승원을 떠난 원인은 신라인 친구의 도움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중국 관청의 허가증도 받았다. 그 후 원인은 수업과 고행을 하며 당나라 순례를 마치고 다시금 신라 선박의 도움으로 847년 9월2일 중국 연안을 떠나 15일간의 항해 끝에 출발지였던 가와라신궁사로 일단 귀국했고, 848년 3월29일 왕도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 히에이산)으로 귀환했다.

원인 연구로 저명한 미국 하버드대 교수였던 에드윈 라이샤워 박사는 “원인은 장보고를 몹시 존경하며 대사라고 존칭했다. 또 원인은 장보고가 적산승원을 창설한 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보잘 것 없는 이 사람에게 너무나 큰 행운을 안겨주셨고 대사님의 서원에 의해 축복된 터전에 체재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힐 정도로 장보고의 은혜에 감사했다”(‘Ennin’s Travels in T’ang China’, 1955)고 지적했다. 엔랴쿠지 경내 문수루(文文殊菩薩堂) 옆에 서 있는 ‘청해진대사장보고비’(완도군 건립)는 유난히 참배자들의 눈길을 끈다.

당나라로 타고 간 선박에 대한 원인 일기의 기록도 주목된다. 신라신인 ‘스미요시대신’(住吉大神)의 신단을 모시고 무사 항해를 기원했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스미요시대신이란 최징의 생가 사카모토에 이웃한 ‘스미요시대사’(住吉大社)의 신주인 ‘신라명신’을 가리킨다. (다음주에 계속)

한국외대 교수 senshyu@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