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刻字匠 이창석씨
(고성=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바칠 생각입니다"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기법으로 나무 활자를 만드는 각자장(刻字匠)인 소제(素齊) 이창석(李昌石)씨.
2004년 5월 21일 강원도무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된 이씨는 우리나라 각자의 전통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인이다.
이씨의 작품활동 무대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강원서각'에 들어서자 마자 몸에 밸 듯 진하게 풍기는 향나무의 독특한 냄새가 콧속으로 가득히 들어왔다.
작업실 벽면에 걸린 목판 병풍과 액자, 현판 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기온돌 패널이 깔린 작업실 한쪽에서 작업을 하던 이씨는 불쑥 찾아간 불청객을 반갑게 맞았다.
IOC 평가단이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도시 현지실사 때 잠시 들릴 평창지역 한 음식점의 현판 제작을 맡은 이씨는 목판에 새길 글자를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능한 빨리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며칠 간은 바쁠 것 같습니다"
"30년 이 길을 걸어왔지만 작품을 만들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렌다"는 이씨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이려니 생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활자를 하시는 분들은 꽤 되는데 목활자를 하는 사람은 오옥진 명인과 저 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더욱 보람을 느끼지요"
이씨는 또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대를 잇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어 요즘은 마음이 뿌듯하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각자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 데는 목수 일을 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부친은 고성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건봉사의 복원에 참여하는 등 목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목수일과 서각작업은 서로 달라 직접적으로 기술을 전수받은 것은 없지만 나무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부친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19세 때인 1973년 고향을 떠난 이씨는 가구전문 업체인 상일공업사(상일가구)에 입사해 이윤종씨로부터 약 2년간 가구에 붙이는 조각물 제작을 배웠으며 삼익악기 하청업체로 직장을 옮겨서는 바이올린 몸체에 붙이는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경북 금릉군 봉산면 신동에서 사찰건축과 목탁에 조예가 깊은 현창화씨를 만나 새로운 조각기술을 배운 것과 부산대 유탁일 명예교수를 만나 활자에 대한 고증지도를 받은 것이 장인을 길을 걷게 된 밑거름이 됐다.
"유 교수는 활자에 대한 이론가로서 활자조판 방법 등에 대한 지식을 아끼지 않고 전수해 줬다"고 회고 했다.
벼루함과 병풍, 문중의 현판 등을 제작하면서 객지생활을 하던 이씨는 드디어 지난 90년 고향으로 돌아와 반암리 7번 국도변에 '강원서각'을 열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서각과 화각 작품활동에 매달린 것도 이 때부터다.
객지생활을 하던 1980년 반야심경 현판을 제작하기도 했던 이씨는 '강원서각'에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4년 후인 94년 조선역대황인판각 제작을 시작으로 96년에는 월인석보 권22를 36판(72면)의 목판으로 완판했으며 99년에는 강원국제관광엑스포 기념작인 신증동국여지승람 86폭 목각병풍을 제작했다.
전체 길이가 29.92m인 이 병풍은 기네스북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대작이며 현재 속초 관광엑스포주제관에 전시돼 있다.
이어 이씨는 2001∼200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목판으로 복원한 데 이어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퇴계선생 문집, 부모은중경,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맹자언해본 등도 복원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전국공예품대전과 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동상을 받는 등 20차례의 수상 경력과 함께 2005년에는 대한인쇄문화협회가 수여하는 인쇄문화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씨가 제작한 작품은 전국의 인쇄박물관을 비롯한 인쇄 관련 전시관과 사찰 등에 다수 전시되고 있다.
"시간만 있으면 나무를 구하러 나섭니다"
병풍용은 향나무, 현판용은 피나무... 좋은 나무를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좋은 나무를 구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찾아다닌 덕분에 '강원서각' 작업장은 작품제작용 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작업장에 가득 쌓인 나무들을 둘러보며 이씨는 "이것이 나의 전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목판제작은 좋은 나무 선별에서부터 시작된다.
좋은 나무를 찾으면 일단 제재소로 옮겨 적당한 두께로 켜 판자로 만든 뒤 작업장으로 옮겨와 몇달을 건조시킨다.
건조시킨 나무는 제작할 작품 크기에 알맞게 재단한 뒤 대패질로 표면을 다듬고 양쪽에 마구리를 붙여 틀을 만든다.
이어 목판에 새길 글자를 목판 표면에 붙이고 칼이나 끌로 여백부분을 파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목판은 주로 은행나무나 돌배나무, 산벚나무 등을 사용하고 마구리 부분은 육송을 주로 사용한다.
목활자를 만드는 나무는 재질이 연하면서도 오래 견딜 수 있고 먹물 흡수가 좋은 황양목이 제격이나 박달나무나 돌배나무, 산벚나무, 자작나무 등도 사용된다.
사찰과 정자의 현판은 변질이 적고 조직이 고른 피나무가 주로 사용된다.
이씨는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는 아들이 대견하지만 이 일이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가져다 주지 못하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안타까워 했다.
"각자장으로 지정됐지만 각자 이외 하는 것이 많습니다. 사군자 병풍을 비롯해 능화(책표지), 필통, 펜꽂이, 소품함, 문패, 가훈 등 나무에 문양을 새기는 공예품 제작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고 나면 또 하나의 나의 분신이 만들어졌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는 이씨는 "사라져가는 목활자 제작기술의 경지를 한단계 높이는 데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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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2/13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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