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28)전통 빗자루 장인 이동균씨
(제천=연합뉴스) 박 일 기자 = "빗자루같이 억세고 질기게 지켜온 기술입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돈 안되는 기술을 집어 치우라고 권했지만 망설이며 지켜온 세월이 만 40년입니다"충북 제천시 교동의 열 평 남짓한 광덕빗자루 공방에서 진공청소기 등에 밀려 `추억의 소품'이 되어버린 전통 빗자루를 제작하고 있는 이동균(65)씨.
이씨는 지난해 9월에서야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전통 빗자루 기능전수자로 인정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손맵시가 좋았던 할아버지가 심심풀이로 빗자루, 왕골자리, 노끈 등을 만드는 것을 보고 옆에서 하나 둘 따라 하며 배운 솜씨가 동네 어른들한테까지 인정받아 이곳 저곳을 불려 다니며 소품을 만들어 줄 정도가 됐다.
25세에 군을 제대하면서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이씨는 어렸을 때 남들이 인정했던 솜씨를 되살려 본격적으로 빗자루를 만들게 됐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빗자루 소비가 많아 부인 장성길(61)씨와 남동생 2명, 직원 등 십수 명을 데리고 10여년간 빗자루 공장을 운영해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이후 진공청소기와 중국산 수입제품이 들어오면서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전통 빗자루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하긴 공장이 잘 될 때도 직원들 임금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더라고.."
빗자루 제작이 돈과는 인연이 없다는 이씨의 말에 부인 장씨가 원망섞인 한마디 말을 덧붙인다.
"당시에 빗자루 끈 묶는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어깨가 아파 늙어 고생하고 있다"며 "공장을 떠났던 동생과 직원들이 빗자루 제작을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자며 그렇게 권유했는데도 막무가내더라구요. 나도 차라리 막노동을 하자고 졸라보기도 했으나 저 양반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장씨의 원망과는 달리 공방에서는 아들 연수(39)씨가 대를 이어 빗자루 제작기술을 익히고 있다.
인근 H시멘트 용접공으로 있던 연수씨는 아버지의 후계자가 없어 빗자루 제작기술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해 6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익히고 있다. 이젠 제작 기술이 쉬운 마당비를 생산하며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아들이 연수를 자청했을 때는 이 일을 물려 줄 수 없다고 했지. 하지만 타고난 업인데 어쩔 것이여"
이씨 부자가 생산하는 전통 빗자루는 이름도 생소한데, 수수를 재료로 한 비는 모두 `장목비'라 부른다.
수수의 여러 가지 종류 중 장목종만이 비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열매의 수확보다는 비의 재료로만 활용되고 있다.
수확하기 전의 수수 목줄기를 사용하는 비는 부드럽기 때문에 방비로 사용하기에 좋으며, 수확 후 뻣뻣해진 목줄기를 재료로 한 비는 거친 특성 때문에 마당비나 막비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름도 여러 가지여서, 엮은 비에 대나무 또는 나무 등을 끼워 손잡이를 길게 해서 쓰는 비는 `대장비', 시골 사랑방 화로주변 등 작은 공간을 치우는데 사용했던 동그란 모양의 비는 `솔비', 솔비와 방비 자루에 수를 놓고 모양을 갖춘 비는 `꽃비'라 한다.
이씨 부자는 7월 중순이면 제천 일대 산과 들을 헤매며 재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갈대꽃이 피기 전에 낫으로 벤 갈대와 수수 목줄기를 소금물에 30∼40분간 삶아 질기게 만들어 그늘에 말린 뒤 납작한 칼을 이용, 줄기에 묻은 이물질과 꽃가루 등을 긁어내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보관한다.
준비된 재료는 분무기로 약간의 물을 뿌려 촉촉하게 만든 뒤 한 가닥 한 가닥 모아 일렬로 정렬하고,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만큼의 묶음에 수수대를 함께 넣어 실과 나일론 끈으로 동여 묶음을 만든다.
비의 크기에 따라 수십 개의 묶음을 하나의 큰 묶음으로 만든 뒤 수수자루를 한 곳으로 모아 비틀어 모양을 완성한 후 자루 중간 중간을 색색의 실과 나일론 끈으로 묶어 견고함과 장식을 더한다.
묶음이 끝난 비의 자루 끝을 낫을 이용해 일렬로 잘라주면 한 자루의 빗자루가 탄생한다. 이런 과정에 마당비는 개당 2시간여, 방비는 5시간 이상의 품이 들어간다.
자루에 갖가지 매듭을 넣는 꽃비는 3일이나 걸려 가격도 30만∼40만원대의 고가다.
빗자루의 제작과정은 시간이 많이 들고 복잡하지만 장비는 단순하다. 그만큼 손을 이용한 작업이 많다는 것이다.
허리를 조여주는 벨트에 연결된 긴 줄 끝에 다리 사이에 끼울 수 있도록 만든 쇳조각이 있어 두 다리로 쇳조각을 당겨 허리와 다리 사이에 줄을 팽팽하게 만든 뒤 줄 사이에 자루를 놓고 실을 단단하게 묶도록 도와주는 '조리개'가 장비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실과 끈을 잘라주고 꿰매는 가위, 바늘, 망치와 자루 마감을 하기 위한 낫 등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고작이다.
한 때 이씨는 생활용품으로는 한계에 달한 빗자루의 다른 용도를 찾아내는데 골몰했다.
전통 빗자루 그 자체로도 충분한 장식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이씨는 작고 섬세한 장식용 빗자루를 생산하기로 하고 소재개발에 나섰다.
7년전 충북 제천시 고암동 비행장 들녘에서 발견한 '애기부들'은 빗자루 제작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했다.
당시까지 장식비는 수수 목줄기를 사용해 장식용으로 만들더라도 두꺼운 자루에 색색의 실을 엮어 매듭을 짓거나 모양을 새겨넣는 단순 작업에 그쳤지만 애기부들은 빗자루 제작방법을 응용해 작은 소품 등 다양한 제품개발이 가능토록 했다.
애기부들은 줄기의 가늘기가 수숫대의 10분의 1밖에 안되는데다 강도가 강해 자루로 활용할 수 있어 작고 예쁜 소품들을 만드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소품용 장식 빗자루와 휴대전화 고리, 열쇠 고리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된데다 무엇보다 어떤 작품이라도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얻게 됐다.
작은 빗자루 여러 개를 태극문양의 주위로 돌려 비치한 작품, 큰 빗자루와 작은 빗자루 2개를 배치한 액자, 형형색색의 매듭을 넣은 빗자루와 한자어를 곁들여 만든 액자 등 새로운 장식용 빗자루는 실내장식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이씨의 노력으로 전통 빗자루에 이어 장식용 빗자루는 해마다 전국공예품경진대회 등에 출품돼 상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제천시 공예품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도내외에서 40여차례나 수상했다.
하지만 이씨의 작업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는 소재연구와 디자인 개발을 위해 산과 들의 이름모를 잡초를 찾아다니고 디자인 개발을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애써 부탁한다.
아들 연수씨도 전통 빗자루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에 분주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통 빗자루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장식비를 홍보하는 한편 동호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빗자루를 제작하고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씨는 최근에 갈대를 얇게 찢어 만든 붓을 개발하는 등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빗자루 기술과 소재를 활용한 제품개발에 몰두하는 이씨의 손에서 또 다른 제품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공예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고 제작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각 가정에서 청소용은 물론 장식용으로라도 하나씩은 갖춰놓고 싶은 전통 빗자루를 만들어 낸다는게 이들의 바람이다.
작은 공방, 늦은 밤까지 비춰 나오는 불빛, 전통 빗자루만큼이나 투박한 그의 손, 그 손을 닮아가고 싶은 아들의 손에서 전통 빗자루 생산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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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il@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30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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