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벽 푸석해져 벽화 일부 `골다공증` [중앙일보]
고구려는 살아있다
길이 남길 민족 재산
길이 남길 민족 재산
남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다른 고구려고분과 달리 여성적 섬세함이 살아 있는 수산리고분(평안남도 강서군.5세기 후반기)의 그림이다. 지난달 27일 평양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30분을 달려 도착했다. 고분 앞에는 화강석 채석장이 있다. 번뜻 스치는 생각. 고구려인도 이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을까. ◆ 응급처치 서둘러야=수산리고분은 삼국시대 한.일 문화 교류의 '산증인'이다. 1972년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발견된 일본의 첫 벽화무인 다카마쓰총(高松塚.7세기 말)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두 곳에 그려진 주름치마의 색상.모양이 비슷하다. 다카마쓰총이 최근 심각한 곰팡이 피해로 해체.이전이 논의되는 데 비해 수산리고분은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물론 수산리벽화도 '세월의 칼날'을 피해 가지 못했다. 널방(玄室) 북벽, 무덤 주인공을 그려놓았던 부분이 손상됐다. 동쪽 회벽 역시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북측은 박락(剝落) 부분을 석회.백시멘트 등으로 보수했다. 남측 조사단은 응급처치를 제안했다. 석벽화(강서대묘.안악3호분 등)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회벽화(진파리고분.덕흥리고분 등) 곳곳에 균열.이탈 현상이 나타났다. 문화재연구소 김순관 연구사는 "일부 회벽이 푸석푸석해지는, 사람으로 치면 골다공증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며 "그림이 더 이상 벽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속히 손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개방이냐, 폐쇄냐=1일 강서중묘(평안남도 강서군) 앞 잔디밭. 남북 학자 20여 명이 둘러앉아 총정리 시간을 가졌다. 남측 단장을 맡은 최광식(고려대) 교수가 "지금까지 평양에 여섯 번 왔지만 현장 토론회를 열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열었다. 지승철 북한 사회과학원 부국장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고 거들었다. 토론의 핵심은 고분 공개 여부였다. 연구.보존을 위해선 공개가, 원상태 유지를 위해선 밀폐가 유리할 수 있다. 북측은 대표적 고분 6곳(강서대묘.수산리고분 등)을 전문가에게 열어놓고 있으며, 나머지 무덤은 밀봉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지승철 부국장은 "고구려인이 만들었던 그대로 폐쇄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최광식 단장은 "폐쇄에 앞서 보존 처리를 해야 한다. 또 무덤 인근에 모형관을 세워 일반인의 관람 욕구도 충족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 측은 고분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무덤 입구에 'ㄷ'자 형태의 통로를 상하좌우로 겹쳐 만들어 외부 공기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고, 무덤 안에도 벽화 보호용 유리벽을 설치했다. 남한 학자 일부가 유리벽이 공기 흐름을 방해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조사 결과 유리벽은 사람의 진입에 따른 고분 내 기온 상승, 미생물 증가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 과학.경험의 만남=북한의 고분 관리는 '아날로그적'이다. 일례로 자동 온.습도 측정장치가 없다. 무덤 관리인들이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있지만 정밀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훼손된 고분을 복원하면서 봉토(封土)를 원래보다 크게 입혀 유네스코에서 '(원형) 진정성' 문제를 꺼내기도 했다. 고분에 과도한 압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학자들은 남측의 과학적 관리 기법을 기대했다. 문화재연구소 정용재 연구사는 "고분 환경과 관련된 데이터를 종합해 앞으로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남한에는 벽화고분이 별로 없어 깊이 있는 연구가 어려웠다"고 인정했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가 "북한의 경험과 남한의 과학을 결합하면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자 김일성대 이광희 교수가 "남북 공동 연구인 만큼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중.장기적 관리계획도 함께 만들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고구려 고분 연구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최종 보고서는 8월 말 나올 예정이다. 평양 = 박정호 기자 사진=남북역사학자협의회 ◆ 조사 어떻게 했나=남북 문화재 보존 역량이 모두 투입됐다. 고분 내 생물피해와 공기성분, 온.습도, 균열.박락(剝落).결로(結露) 같은 벽화상태, 고분의 건축기법 등을 두루 진단했다. 문화재연구소 홍종욱 연구사는 "그간 몇 차례 외국 학자나 유네스코 등에서 고구려 고분을 조사했지만 포괄적이지 못했다"며 "과학적 방법에 의한 고구려 고분의 종합검진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조사단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다. 반도체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흰색 방진복을 입었고, 방진덧신도 착용했다. 적외선 카메라.현미경 카메라.X선 안료분석기 등 첨단장비를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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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0 06:04 입력 / 2006.05.10 07:1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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