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내내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선한 것이 선한 것이냐?’ 등의 아리송한 명제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신 백발의 우리 철학 교수님.
기말고사로 딱 한 문제만을 출제하셨다.
‘용기에 대해서 논하라.’
오픈북 시험이었기 때문에 강의실 안은 한숨 소리 반과 책 넘기는 소리 반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 안된 시간에 강의실 저편에서 한 학생이 답안지를 제출하고 당당히 나갔다. 당연히 조교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완전히 포기했나 보군. 뭐라도 좀 쓰지.’
나중에 그 학생에게 성적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A학점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그 때 쓴 답은 딱 한 줄.
‘바로 이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