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조선 마지막 무동' 장엄한 춤사위 멎다

바보처럼1 2007. 8. 21. 01:03
[문화일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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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지막 무동’ 장엄한 춤사위 멎다
순종 앞에서 춤춘 ‘인간문화재 1호’ 김천흥 선생 별세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인간문화재 1호’였던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舞童)’ 심소(心韶) 김천흥의 영결식이 22일 국악인 장으로 치러진다.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은 한국국악협회(이사장 이영희), 한국무용협회(이사장 김복희)와 함께 22일 오전 10시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고인의 영결식을 열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김천흥은 18일 오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98세.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 명예보유자인 고인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13세 때인 1922년 궁중음악 양성기관인 이왕직아악부 아악생 양성소에 제2기생으로 들어가 궁중음악과 무용을 배웠다. 그는 1923년 봄 무동으로 뽑혀 순종황제의 50세 경축연에서 춤을 춰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통무용과 국악의 보존 및 재현에 힘써온 고인은 국악계와 무용계를 통틀어 최고령 원로로 꼽힌다. 해금에서 출발한 고인의 예술 인생은 이후 양금 연주 등 음악은 물론 처용무와 춘앵전 등 정재(궁중무)로 넓혀졌다. 1941년 한성준에게 춤을 사사한 고인은 아울러 살풀이와 탈춤 등 민속무까지 익혀 정악, 정재와 민속무를 두루 아우르는 보기 드문 예인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이화여전 음악과 강사, 대한국악원 이사 겸 무용부장, 국립국악원 자문위원, 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지내며 국악계와 무용계에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이기도 한 고인은 서울시문화상(1960), 대한민국 예술원상(1970), 국민훈장 모란장(1973), 금관문화훈장(2001) 등을 탔다.

저서로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우리춤 이야기’, ‘정재무도홀기 창사보’, ‘한국무용의 기본무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운(재미), 정완, 딸 정순(재미), 정원(〃), 정실(〃)씨 등 3남2녀가 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는 종묘제례악보존회, 처용무보존회 제자들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인 이애주씨, 학술원 회원인 극작가 신봉승씨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제자와 격의없이 농담을 나누고, 항상 천진스럽게 웃는 얼굴이어서 ‘탈 안쓴 처용탈’, ‘미소년’으로 불렸던 고인의 모습을 함께 회고했다.

발인은 22일 오전 9시이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02-590-2609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