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세월을 빚은 60년의 기록,도예 명장 천한봉옹

바보처럼1 2007. 11. 1. 23:22
 
세월을 빚은 60년의 기록
도예 명장 천한봉옹 예술의 전당서 회고전
“투박한 한국 찻사발에 서양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요강 장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도예명장이 된 도천(陶泉) 천한봉(74·무형문화재 사기장·사진)씨가 그의 도예인생 60년을 회고하는 전시회를 갖는다.

오는 12월5∼11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사람은 그릇을 만들고, 그릇은 사람을 만들고’전이 그것. 천씨가 60년 동안 만들어 온 온갖 도자기를 한곳에 모아놓고 보여주는 자리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면 도자기를 굽는다. 그가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장작불로 구워 내는 찻사발은 신기하게도 물이 닿으면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가 빠른 속도로 번지듯 사발 안에 물자욱이 생긴다. 천씨는 이를 ‘도자기가 땀을 흘린다’, ‘꽃이 핀다’ 등으로 표현했으며, 이러한 ‘살아 있는 도자기’를 만나기 위해 800개를 구우면 750개 이상을 깨버리는 아픔을 겪는다.

그는 70 노구임에도 고려다완을 재현하는가 하면 한국 찻사발을 해외로 수출, 짭짤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도천은 영국 전시회에서 서양사람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 찻사발이 서양 식탁의 인기품목으로 오를 날도 머지않았음을 간파했다.

일본서 태어난 그는 광복 이듬해 부친을 따라 문경으로 돌아왔으나, 47년 부친이 숨을 거두자 14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릇 굽는 일. 지금은 도예명장 소리도 듣고 훈장도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요강을 굽는 비천한 ‘그릇쟁이’에 불과했다.

이때 조계종 종립선원인 문경 봉암사에서 그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스님들이 찾아와 “찻사발을 구워 보라”며 그가 굽는 찻사발을 적극 팔아주었던 것. 이 사건은 훗날 천씨가 도예명장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천씨는 일생을 ‘좋은 도자기 만들기’에 밤낮없이 바쳤다. 74년에는 한국의 전통도예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1년 만에 전수를 마치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쑥쑥 성장했다.

“질그릇도 이제 나이를 먹는지 청장년기 시절에 만든 그릇이 힘이 있다면 요즘 만드는 그릇은 온화한 느낌이 들어요.”

이번 전시회는 지난 60년 세월을 10년 단위로 묶어 6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품을 전시한다. 또 유약과 성형 과정에서 사용하던 도구며, 초창기 작품활동하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도 전시할 예정이다.

천씨는 전시기간 중 도예인생 60년을 반추하는 ‘그릇과 나의 인생’ 제하의 회고록 출판기념회도 갖는다. 책에는 도자기에 얽힌 애틋한 사연, 흙과 도자기에 대한 인생철학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정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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