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장 이야기

바보처럼1 2006. 4. 4. 03:06
16)

<발효미학, 장(醬) 문화예찬>

 

한국 음식의 힘, 장(醬)이야기

 

글 / 이진랑(푸드 칼럼니스트)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은들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다. 설혹 시골에 사는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신경을 쓰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중림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간행한 농사요결서(農事要訣書)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장(醬)에 들였던 공력과 그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장 맛보고 딸 준다’ ‘한 고을의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는 속담에서도 장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짐작할만하다.
예로부터 장은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이자 육류를 많이 먹지 않던 시절에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우리 식문화의 뿌리이자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지혜가 담겨있는 장(醬)!  과연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기 시작했을까. 우리 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인 장(醬)의 원류를 찾아 그 의미를 되짚어 보자.

 

 

위대한 발명품, 장(醬)의 역사
장문화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메주의 원료가 되는 콩의 원산지와 재배시기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콩의 재배시기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4000년 전에 콩을 재배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 북쪽 만주를 포함한 동북 아시아지역으로 보고 있다. 만주의 남부 지역은 본래 맥족의 발생지이자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콩의 원산지는 바로 우리나라가 된다. 우리나라의 콩 재배 흔적은 회령 오동 주거지, 합천 봉계리 유적 등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콩의 야생종과 중간종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식품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는 우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장이라는 개념 자체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장은 콩으로 메주로 쑤어 담그는 우리의 장과는 크게 달랐다.
고대 중국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에는 고대 중국의 장에 대한 설명이 나와았다. 이 내용을 보면 당시 중국의 장은 식해에 가까운 것이었다. (주석: 중국의 해는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 등을 말려 가루 내어 술에 담그고 여기에 누룩과 소금을 넣어 항아리에 밀폐해 숙성시켜 얻은 것)
이처럼 우리 조상은 장을 만드는 방법을 중국에서 배웠지만, 중국인들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재료인 콩을 발효시켜 위대한 발명품인 장(醬)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본격적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근 시기는 삼국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을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삼국지>(290년)의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인은 장 담그고 술을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장이나 술 등 발효식품을 만드는 솜씨가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무문토기 유적지나 고구려 안악고분벽화에 발효식품을 보관한 듯한 독이 나오는 것을 보아도 부족국가시대 말기나 삼국시대 초기부터는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근 것으로 보인다.
‘메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사기>다. 이 책에서는 신라 신문왕 3년에 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예물로 보낸 품목에 메주인 ‘시’(豉)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대 중국인은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인 발해(698년)의 특산물로 책성(발해의 수도)의 메주를 꼽기도 했다. 또 고려시대에는 <고려사><동국이상국집>에서 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점차 장류 및 발효식품이 가공업의 발달로 인해 더욱 다양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구황촬요><증보산림경제><주방문><규합총서> 등 음식에 관한 기록이 있는 여러 문헌에 메주와 장의 제조법 등이 상세하게 살려있다.

<삼국시대 '시'와 삼국시대 이전의 장>

 

메주와 된장은 한국이 종주국
장을 담기 위해 만드는 메주의 종주국도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조상들의 발명품인 메주는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고대 중국인들이 발해의 특산물로 메주를 꼽고 메주 냄새를 ‘고려취’라고 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식품학자들이 중국의 옛 음식을 이야기 할 때 고전처럼 인용하는 ‘제민요술(齊民要術)’ 이라는 책에 나오는 메주 만드는 법을 보면 우리의 전통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진(晉)의 장화(張華)가 쓴 것으로 유명한 <박물지>에 는 ‘시(메주)는 외국에서 들어 온 것’이라는 식의 언급이 보인다. 이는 메주의 원산지가 바로 우리나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메주는 중국 뿐 아니라 일본에도 전래되었다. 일본에서 8세기 중반 경에 만들어진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를 보면 ‘말장(末醬)’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을 일본인들은 ‘미소’라고 읽는다. 또 <동아(東雅)>의 ‘장조’(醬條)에는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 불렸고, 고려장(高麗醬)이라고 적었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인들이 항암효과와 혈전용해능력 등이 뛰어나다고 전세계에 대고 자랑하는 ‘미소’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음식인 것이다.
결국 콩의 원산지인 우리나라가 중국에는 메주를 전해 주고, 일본에는 메주와 된장을 함께 전해줘 이웃나라 식생활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를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된장, 오리엔탈 건강소스로 주목받다
조선시대를 거쳐 근래에 이르기까지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정성스런 다독임과 손맛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장문화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장 담그는 풍경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어릴 적 메주 쑤는 날이면 마치 잔치집 같은 흥겨운 분위기에 들떠 삶은 콩 한 줌이라도 움켜쥐면 마냥 행복했는데…….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장독대 풍경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해 때문에 메주 말릴 곳조차 없는데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장 담그기가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손쉽게 장을 살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물론 맞벌이 주부들은 바쁜 일상에 쫒기다보니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장담그기는 당연히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이들을 위해 된장, 쌈장, 고추장 등 다양한 장류가 시판되고 있어 입맛대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특히 신세대 주부들은 삶은 콩에 종국을 섞어 발효시키는 개량메주로 만든 시판용 장류를 선호하는 편이다. 대체로 재래식 전통장에 비해 값도 저렴하고 냄새도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판용 장류는 깊은 맛이 덜하고 뒷맛이 약간 달곰하고 텁텁한 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역시 전통방식대로 국산콩으로 만든 메주를 띄워 항아리에서 자연발효시킨 재래식 장맛이 제일인 게다.
유구한 세월동안 발전을 계속해 온 우리의 장문화는 근래 들어 콩 외에도 한약재, 죽염, 녹차, 호박 등을 첨가한 기능성 장류까지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이 같은 제품들은 맛과 기능성을 더욱 높여 직접 된장을 담가 먹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또 쌈장이나 된장국 외에도 된장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도 다양해져 야채 드레싱으로, 생선이나 고기구이 등 식품재료의 양념으로 활용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된장 등 전통 발효음식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가 TV 등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속속 발표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오리엔탈 건강소스인 된장에 대한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도 부쩍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위대한 발효음식 장(醬)문화에 온 세계가 주목한 날이 머지않다.

<사진발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 된장의 달인들'  이진랑 著 / 지오북 刊>

출처 : 월간 외식경영 2005년 8월호


 

 

 
내용출처 : [기타] 블외식경영 200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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