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1) 마거릿 대처

바보처럼1 2008. 3. 27. 16:07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1) 마거릿 대처

이명박 시대의 화두는 경제다. 대선에서 민심이 압도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것은 경제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화답해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맞춰 경제발전을 이뤄낸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철학과 동인(動因), 성공 요인, 인생 역정과 명암 등을 되새기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웅변은 남에게 맡기고 나는 행동만 하겠습니다.”

1979년 5월4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 이제 막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54세의 마거릿 대처는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 없었다.

1970년대 영국 ‘혹독한 겨울´

영국은 70년대 내내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고 있었다. 대처가 총리가 된 것은 그 유명한 ‘불만의 겨울’이 온 나라를 무정부 상태에 빠뜨린 직후였다. 그해 1월 전국의 발전소와 공장이 멎고 병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자동차·운수·병원·청소 등 노조의 파업이 2∼3주나 지속됐다. 쓰레기가 쌓인 거리에 장례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신들까지 방치되면서 영국사회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3월 노동당이 다수당인 의회가 해산됐고 5월에 총선이 치러졌다.

자본주의의 종주국 영국은 옛 대영제국의 위용을 상실한 채 심각한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었다.‘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재정고갈로 마비상태였고 정치·사회·경제의 실질적인 권력은 노동조합의 손에 있었다.73∼79년 노동생산성은 연간 1.1% 늘어난 반면 임금은 22.0%씩 상승했다. 물가상승률도 연 평균 14.8%나 됐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으로 76년에는 외환위기가 찾아와 1년여간 선진국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는 수모도 겪었다.

물가안정·규제혁신에 박차

대처는 수십년간 나라를 지배해 온 케인스식 ‘큰 정부’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다. 공공지출 삭감, 세금인하, 공기업 민영화, 금융개혁, 노조활동 규제, 인플레이션 억제 등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나는 (합의가 아닌)대결의 정치를 바란다.” 그의 개혁은 야당 등 반대파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됐다.

집권 1기(79∼83년)에는 물가안정, 재정적자 축소, 노동개혁 등에서 많은 조치가 이뤄졌다.2기(83∼87년)에는 민영화와 구조조정, 규제혁신에 박차를 가했다.3기(87∼90년)에는 교육개혁 등 패러다임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핵심에 기업이 있었다. 대처는 “개혁의 관건은 딱 한 단어, 바로 ‘기업’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전기·통신·도로·조선 등 2차대전 이후 국영화된 기간산업을 3단계에 걸쳐 민간에 넘겼다. 활력을 잃은 영국 기업에 ‘기업가 정신’을 되찾아 주고 재정을 건전화하자는 목적이었다.

공영주택은 거주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함으로써 민영화했다. 공영주택 신설을 억제해 정부지출도 대폭 줄였다. 행정서비스를 민간에 이관하는 등 방법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해 공무원 수를 79년 73만 5000명에서 90년 56만 7000명으로 23%나 줄였다.

과도한 노조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시로 고용 관련법규를 고쳤다. 노조원만 회사원이 될 수 있는 ‘클로즈드숍’의 보호조항을 없애고 파업 전 찬반투표 의무화, 노조간부 면책특권 제한 등도 법제화했다.

대처는 노조의 불법행위에 최대한 법과 원칙을 적용했다.84년 전국 20개 탄광 폐쇄와 2만명 인력 감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석탄산업 구조조정 계획에 탄광노조가 불법파업으로 대응하자 대처는 곧바로 경찰력을 보냈다.1년 이상 이어진 파업은 결국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그 대신 실업급여, 실업자 재교육을 활성화하는 한편 종업원지주제·이윤배분제 등 노동자에 도움되는 제도를 속속 도입했다.

79년에는 외환 관련 규제와 해외투자 관련 규제를,82년에는 예금은행에 대한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했다.86년에는 주식매매 수수료 자율화, 은행과 증권사간 장벽철폐, 외국 금융회사의 시장진입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금융빅뱅’ 법안을 통과시켰다.

외국인 투자확대로 자본모아

자유로운 이윤송금 보장, 외국인 소득세율 경감 등을 통해서 외국인 투자 확대도 꾀했다. 그 결과 영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많은 자본이 몰려드는 나라가 됐다. 근로의욕 감퇴와 조세포탈의 주범이었던 높은 세율도 대폭 낮췄다. 평등주의가 영국의 교육을 망친다며 중등교육 평준화를 해제하고 대학에도 경쟁원리를 도입해 학교재정 지원과 학생 등록금 지원을 대폭 감축했다. 동시에 기술교육을 강화하는 등 고용창출과 산업경쟁력 확보방안도 시행에 옮겼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개혁의 그림자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은 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늘도 드리웠다. 우리나라가 개혁을 추진하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지나치게 ‘승자(勝者) 독식 경제’를 만들어 계층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게 우선 지적된다. 대처 집권 이후 1992년까지 영국내 상위 10% 계층의 소득은 62% 늘었지만 하위 10%의 소득은 오히려 17% 줄었다. 여기에는 세율인하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제조업 쇠퇴도 확연해졌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개혁의 덫’에서 “대처 이후 영국은 제조업보다는 금융업에 너무 초점을 맞췄다.”면서 “체계적인 산업정책 없이 ‘누가 됐든 영국에 투자만 한다면 환영한다.’는 노선을 취하면서 제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대처 정부는 제조업의 빈 자리를 서비스업이 메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구제하지는 못했다. 지역간 양극화도 심화돼 남동부는 발전한 반면 북서부는 쇠락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급격하게 슬럼화가 진행됐다.

고용불안도 심화됐다. 영국은 200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용보호 수준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약한 나라가 됐다. 공공부문 민영화로 수도·가스·교통·통신 등 보편적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영화 이후 기업들이 수익에 집착해 가격은 올리고 투자는 줄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려가 미흡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대처의 개혁에서 배운다

영국 대처 정부 개혁에 대한 평가와 우리경제에 주는 시사점을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로부터 들어 봤다.

현재 우리경제가 처한 상황은 마거릿 대처 집권 당시와 비슷하다. 분배와 소외계층 보호가 중시됐던 지난 10년간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바뀌는 시점이다. 차기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경제전반의 효율성 증대,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노사관계 선진화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처가 개혁을 추진한 최초 3년간 영국의 경제상황은 오히려 전보다 나빠졌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갈등구조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경제·사회적 비용도 발생했다. 그러나 집권 4년을 넘기면서 경제가 조금씩 살아났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급하게 당장 1년 지나면 뚜렷하게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또 영국 국민들은 대처가 하려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번 정부조직 개편만 해도 여러 저항에 부딪혀 본래 밑그림과는 조금 다르게 변형되고 말았다.

약자의 보호 등 복지정책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상 복지정책에는 교육·육아·의료 등 일반적인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북유럽’식이 있고 실업자·저소득자 등이 혜택을 받는 ‘유럽대륙’식이 있다. 대처가 추구했던 것처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북유럽식의 생산적 모델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생산성과 효율의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민영화로 공익목적 서비스가 약화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기업의 본래 목적이 경쟁력과 수익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민영화는 가야 할 방향이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 교수

기사일자 : 2008-02-22    17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