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전통

큰댁, 작은댁 윗마을의 두 아낙네

바보처럼1 2008. 6. 6. 19:02

[사람의 길]큰댁, 작은댁 윗마을의 두 아낙네

2008 02/26   뉴스메이커 763호

윗마을 평산(平山) 신(申)씨 집성촌에 살고 있는 두 분 노파의 거동은 사진 속에서 깊은 침묵에 싸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침묵의 생활이다. 큰할머니께서는 귀가 어둡다. 그러니 작은할머니의 말씀은 독백이나 다름없다. 아들이 지어준 아담한 양옥에서 생활하는 두 할머니는 한 영감과 더불어 반생을 살았다. 영감은 저세상으로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래도 과부가 된 두 할머니는 그 속내를 헤아리기 어려운 침묵 속에서 여생을 함께 지내고 있다. 큰할머니는 이 고장에서 태어났고, 작은할머니는 시집온 뒤로, 아들 뒷바라지 때문에 잠시 대구에서 지냈던 기간을 제외하고 내내 이곳에서 살았다. 윗마을은 두 분의 완전한 고향에 다름없다.

- 정진국 ‘경북 예천군 호명면 저우리 윗마을의 두 아낙네’ 중에서


백내장에 골다공증으로 힘겨운 작은할머니(양분순·75)는 마을 건조장에서 아낙네들의 허드렛일을 눈으로만 거들다가 문득,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습니다. 그래도 볕이 좋아 다행입니다. 마을길에 깔린 묵은 눈과 얼음끼들을 제법 녹여내 지팡이에 의지한 걸음이 한결 수월하기만 합니다. 노적가리 쌓인 앞논을 지나면 대문조차 없는 마당이 나오고, 창고용 비닐하우스 곁에 개장에 갇힌 멍멍이놈이 까닭도 없이 낑낑거립니다. 현관문을 열자 그나마의 온기에도 거실은 왠지 휑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며칠 전까지 설이랍시고 대처에서 온 아이들로 득시글거렸는데….

안방에는 큰할머니(황후봉·91)가 여느 때처럼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잠들어 있습니다. 그 벽 위에는 돌아가신 영감(신동환·60세 때 작고)과 형님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왜 작은할머니의 것은 없냐고요?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맞은편 벽에는 자손들의 사진이 잔뜩 걸려 있습니다. 작은할머니는 말없이 잠든 형님의 어깨를 흔들어 깨웁니다. 점심을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슬며시 일어난 형님의 얼굴이 웃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습니다. 큰할머니는 이제 귀가 먹어 거의 듣지 못합니다. 듣지 못하니 말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긴 듣는들 따로 할 말이 무어 있겠습니까. 말하지 않는들 그 속내를 모르겠습니까.

작은할머니는 서른이 넘어서 저우리(형호리)로 시집을 왔습니다. 말이 시집이지 작은댁으로입니다. 작은할머니 또한 전 남편과 아이 셋을 낳고 사별한 처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작은할머니를 새로 맞이한 것은 큰할머니에게서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큰할머니는 30년 시집살이에 딸만 내리 셋을 낳았고, 작은할머니는 시집오자마자 아들만 내리 셋을 낳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환갑도 채 치르지 못하고 여섯 자식과 두 부인만 남겨놓은 채 훌쩍 세상을 떴습니다. 작은할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자식들을 데리고 대처로 나가 날품을 팔았습니다. 공사장 노가다일도 했고 식당 허드렛일도 했습니다. 아홉 번이나 이사를 하며 닥치는 대로 산 덕택에 아이들 뒷바라지도 하고 돈도 조금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큰아들 장가 밑천으로 덥석 내놓고 나니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건축 일을 하는 큰아들이 새 집을 지어준 후에야 작은할머니는 다시 저우리로 돌아와 큰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게 어느덧 10년도 더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미 삶의 고단함으로 실컷 눌러앉은 육신은 점점 더 망가지고 못쓰게 되었습니다. 큰할머니는 겨우겨우 뻗정다리로 농사일을 거들거나 기다시피 집 안팎을 드나들더니 이제는 아예 운신하기조차 어렵게 되었고, 작은할머니도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눈이 자꾸만 더 침침해지고 저린 다리는 구부리기조차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작은할머니가 끌다시피 살림을 꾸려나가지만 갈수록 버겁기만 합니다.

형님 병원에 데리고 가면 영양제 한 번 맞고 하면 한 오만 원씩 들어. 자주 아프긴 한데 병원에 한 번씩 갔다 오면 괜찮아. 간식거리도 사먹고 그래서 돈은 내보다 더 많이 써. 형님은 돈이 조금씩 들어오면 쓰도 안 하고 저금해놓잖아. 돈을 안 써. 내 돈을 쓰지. 겨울에는 기름값이 두 번 넣으면 육십만 원 정도 나오지. 다 내가 책임지지.

그래도 작은할머니는 웃기만 합니다. 어디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고생이야 이골이 난 일이고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 낫지 싶기 때문입니다. 서로 밉거나 보고 싶지 않은 때인들 왜 없었겠습니까. 세월은 한도 미움도 다 묻어버렸습니다. 그나마 형님마저 먼저 세상을 뜨고 나면 혼자라는 것이 더없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두 할머니와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로 난 형호다리를 건넜습니다. 전에 있던 다리는 태풍 매미에 휩쓸려 떠내려 가버렸습니다. 다리 밑으로 내성천의 바짝 마른 물줄기가 얼음장을 핑계삼아 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괴어 있지도 않은 듯했습니다. 그 물줄기가 한반도대운하의 수계에 포함되는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호명에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농민이 ‘한·미 FTA’ 타결 소식에 분개한 나머지 공기총을 난사해 주민 몇 사람을 숨지거나 다치게 했습니다. 이제 고향도 그렇게 덧없이 무너지고 고향 사람의 삶 또한 가뭇없이 흩어지기만 하는 것일까요. 내성천 메마른 백사장엔 경운기 바퀴 자국만 어수선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글·사진 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