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표주박통신’20년 김조년 교수

바보처럼1 2008. 6. 6. 19:07

[사람의 길]‘표주박통신’20년 김조년 교수

2008 03/11   뉴스메이커 765호

사랑하는 벗에게

안녕하십니까. 봄이로군요. 봄기운이 온몸에 쫙 퍼지기를 빕니다. 이런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행복과 평화와 희망이, 째지게 좋은 기운이 쫙 퍼지는 그림을 그려보고, 그것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꿈이 뀌어집니다. 연초에 한 친구가 연하장 대신에 ‘상운(祥雲)’이란 글씨를 붓으로 써서 보냈더군요. ‘상서로운 구름’이라는 뜻이지만, 그 글씨를 쓴 친구는 ‘상서로움이 구름처럼 가득히 덮이고 퍼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써서 보내주었다는 것이에요. 그 말이 얼마나 상서롭고 좋습니까? 고맙다는 맘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 ‘희망과 평화와 행복을 만드는 상서로운 기금을 만들어보자(2008. 2. 20)’ 중에서



지난 2월 16일 김조년(62) 교수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전 민들레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 대의원 총회에 다녀왔다. 회의가 끝날 무렵 조합 측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저금통을 나누어주었다. 건강한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것이 지켜지면 그 저금통에 얼마간 돈을 넣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한데 모아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는 운동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며칠 후 김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 하나를 보았다. 동편 하늘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데 그 하늘로 마치 세밀한 붓으로 부드럽게 그려놓은 듯한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 상서로운 기운을 온 누리에 퍼지게 할 수는 없을까. 그 아름다운 구름을 보고 기뻐하는 내 마음이 온 누리에 기쁨으로 다시금 퍼져나가게 할 수는 없을까.

그는 원래 비판을 좋아하고 날선 눈으로 사물을 본다는 평을 오래도록 들어왔던 사람이다. 한때 그것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는 것이었다. 현실 판단은 매우 낙망스럽고 절망스럽기까지 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대하는 생각만큼은 희망과 긍정을 바탕으로 하는 ‘살림’의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쾌감에 흥분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덤덤하다. 그렇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와 의문을 더욱 더 많이 가지는 듯하다. 뽑긴 뽑았는데, 뽑히긴 뽑혔는데 정말 그가 한 말대로, 또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하고, 될 것인가. …그러니 사람들아, 허망을 딛고 살아보자. 민주를 희망하는가? 희망하지 말고 민주스럽게 살아보자. 보존을 희망하는가? 파괴하지 말고 지나치게 개발하지 말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
- ‘삶이려니 해야 하겠지(2007. 12. 23)’ 중에서


김 교수는 그의 ‘표주박통신’을 통해 희망과 평화와 행복을 만드는 상서로운 기금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때때로 물질은 독이 되지만, 물론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고 그 유혹에 걸려 넘어지기 쉬울 수도 있지만, 상서로운 마음을 듬뿍 담은 물질은 생명을 창출하는 역동이 될 수도 있으리란 것이다. 아무래도 김 교수의 신춘 화두는 ‘상서로운 마음’이 될 듯하다.

1987년 3월, 한남대 사회학과 김조년 교수는 강의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표주박통신’이란 편지 글에 담아 사랑하는 벗들과 제자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항상 ‘사랑하는 벗들에게’로 시작하는 그의 글들은 고스란히 그의 생각을 담은 육필이자 육성이었다. 처음 30여 명으로 시작한 것이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편지 글을 받아보는 이만 어림잡아 27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36쪽 미만의 책자로 받아보는 이도 있고, 이메일로 받아보는 이도 있다. 그간의 글들은 몇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다.

김조년 교수의 저 유명한 표주박통신이 책으로 묶여 나온다고 한다. 우선 축하한다.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김 교수의 그 독특한 통신방법이다. 디지털매체의 그 흔해 빠진 통신방법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너무나도 원시적인, 그리고 너무나도 근원적인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의 육필에 가깝다. 육필은 육성이다. 만들어지는 소리, 기계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육성을 듣는다는 것은 거의 전율이다. - 김지하 ‘가까이, 더욱 가까이!’ 중에서

널리 알려져 있듯 김 교수는 씨알 함석헌 선생의 제자다. 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운 사제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제지간이다. 두 사람을 맺어준 것도 편지 글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글을 즐겨 읽던 김 교수는 19살 때 선생이 한·일회담 반대 단식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뜨거운 가슴으로 편지를 썼고, 놀랍게도 선생에게서 답장이 온 것이었다. 다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고… 그렇게 교류는 시작되었다.

오늘 함석헌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생각하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속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무엇인가 분명히 있는데 전혀 분명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껏 누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아니 그 사람의 영향을 내가 받아 이렇게 된 것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만났던 것을 기뻐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여기기도 하였고, 또 다른 커다란 인물들을 만나서 감화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아직도 그러한 사람을 찾고, 찾았을 때 그 사람이 가고 없거나 너무 멀리 있어서 만날 수 없으면 도대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살았을까를 알고 싶어했다.
- ‘함석헌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2001. 1. 11)’ 중에서



김 교수는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해준 개량한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제법 따사로워진 햇볕을 받으며 걷자니 등에 잠깐 땀이 맺힌다. 지난 겨울을 그 옷으로 해서 따습고 고맙게 났건만 바야흐로 이제 그 옷을 벗을 때가 된 모양이다. 역시 옷을 벗기는 덴 햇볕만한 것이 없다. 오늘은 신입생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젊음과 시작은 언제나 아름답다. 불현듯 ‘표주박통신’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한 점 물에 목을 적시고 물 흐르듯 흘러가고 싶었던.

제가 시골 출신인데, 어릴 적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목이 마를 때면 제일 반가운 것이 옹달샘입니다. 그때 떠 마시는 것이 표주박인데, 표주박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맑은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도구죠. 맑은 생각과 삶을 담은 이 표주박통신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흐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맑아야죠.

글·사진 유성문<편집위원> rotack@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