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부 사이에서도 재산은 각자가 관리하고 부채도 각자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법원칙입니다. 부부별산제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만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 소비자는 경상적인 수입과 지출 및 재산의 취득과 처분을 부부 공동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법적으로는 가족 구성원 개인의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이것들을 ‘가계’라는 단위로 통합해 인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재정적 파탄상태를 치유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파산법은 법 형식 여하에 상관 없이 경제적인 실질을 따지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하나의 단위로 경제생활을 하면서 재산은 일방 배우자 앞으로 취득하는 반면 다른 배우자는 금전을 빌려 가족 전부가 생활하면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게 된다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서 돈을 빌려 감추어 놓은 상황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별산제의 법 원칙을 들어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에 관해 파산과 면책을 신청한다면 파산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보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실무입니다. 그리하여 2008년 1월 이후 시행된 표준 파산면책신청서 양식에는 배우자, 부모, 자녀 명의의 1000만원 이상 재산이 있으면 이를 기재하고, 부동산인 경우에는 등기부등본과 재산세과세증명서, 인근 중개업소나 인터넷에서 확인한 적어도 2곳 이상의 시가확인서 등 시가증명자료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급불능 직전에 채무자가 가족 앞으로 재산을 도피하는 행위가 있었는지를 심사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표준 양식은 나아가 재산의 취득시기가 지급이 불가능하게 된 시점으로부터 2년 이내인 경우에는 재산 취득 자금 마련 경위에 관한 소명자료(예를 들어 재산 명의자의 취득 자금에 관한 금융 거래 명세 등)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무가 발생한 것이 ‘가계’ 전체와 관련된 것일 경우 그것을 가계 전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고려일 뿐입니다. 질문하신 바와 같이 아내가 빚을 져서 남편에게 주거나 공동의 생활비를 하고 남편이 그 돈으로 또는 자신이 번 돈으로 재산을 취득한 것이 아니고, 아내가 결혼하기 이전에 발생한 채무인 것이 명백하다면 법률상 별산제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같은 경우에는 ‘가계’의 책임을 물을 상황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시어머니가 증여해 준 것으로 부동산등기부에 기재되어 있다면 그것이 채무자의 노력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증명되기 때문에 이정숙씨가 과거의 채무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파산 신청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표준서식에 의하면 파산신청시 배우자의 재산 이외에도 현재 올리고 있는 소득이 얼마인지를 기재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무자의 생활상황, 즉 현재 채무가 지급불능인지, 앞으로 상환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따지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생활비를 대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인이 어느 정도 소득을 올려도 상환능력이 없다고 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생계비를 뺀 나머지 소득 전액을 상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가계와 상관 없이 배우자 일방이 진 빚을 다른 배우자에게 갚게 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