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WBC 예선전을 통해 본 약자 살아남기 ‘선택과 집중’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전, 7일 한국과 일본 1차전. 우리나라는 '일본 킬러'라던 김광현이 홈런 1개를 비롯한 안타 11개를 두들겨 맞으며, 겨우 2점을 얻고 무려 8점이나 내줬습니다. 이때 김광현에게 공을 넘겨받은 투수는 지난해 선발투수진이 무너진 삼성에서 이틀이 멀다 하고 등판 ‘노예'라는 별명이 붙은 정현욱. 그는 시속 140㎞ 중후반 대 묵직한 직구를 무기로 달아오른 일본 타선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1과 3분의 1이닝 동안 1탈삼진 무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펼치며 일본 타자들을 압도했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들 내심 정현욱 선수가 일본타자들을 깔끔하게 돌려세워 나름 자존심을 세워줄 거라 기대하고 있을 그 때. 김인식 감독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정현욱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결과는 2대14. 7회 콜드게임패. 네티즌들은 들끓었고, 야구팬들은 분통이 터져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대참사’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고육지책, 수모를 감수하고서 승리를 얻기 위한 애씀
김인식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14대2로 패하나 1대0으로 패하나 마찬가지다. 콜드패도 1패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기에서 지는 경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한국은 일본처럼 선수층이 두텁지 못했기 때문에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가려서 싸워야 했습니다. 7일 게임에서 콜드패는 ‘어쩔 수 없는 약자선택’입니다. 선발 투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을 동원해 추가 실점을 줄이기보다는 투수들을 아끼면서 ‘고육지책苦肉之策’. 지는 경기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아껴둔 정현욱은 일본과 2차전에서 디딤돌을 놓아 승리를 견인하는 역할을 톡톡해 해냈습니다. 결국 9일 두 번째 게임에서 나온 1-0 완봉승은 김인식 감독이 지닌 포기할 줄 아는 마운드 운용 덕분이었습니다.
롬멜에 견줄 리더 그라운드 여우 김인식
김인식 감독은 세계 제2차 대전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독일 장군 롬멜에 견줄 만큼 노련한 여우였습니다. 1940년 2월 제7기갑사단 사단장직을 맡은 롬멜에게 1941년 2월 6일 히틀러는 독일 추축군 통수권을 주어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 행진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롬멜은 6일 뒤 트리폴리 공항에서 최초로 아프리카 땅을 밟았습니다. 롬멜 추축군은 ‘아프리카군단’이라는 정식명칭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롬멜군은 연합군보다 장비나 인원, 모든 면에서 모자랐습니다. 부족한 군수지원과 해독기로 사령부와 오가는 전문을 해석하고 있는 연합군 수뇌부와 싸움에서 계속해서 밀렸습니다. 롬멜은 그 같은 열세를 디디고,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치밀한 약자 전략이 숨어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면 적이 우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병력 열세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고 판단한 롬멜은 마치 이순신 장군이 강강술래로 병력을 위장한 것처럼, 거짓 진지를 세우고, 끊임없는 이동으로 연합군이 위치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약자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곤 상대가 취약한 곳을 발견하면 집중공격해서 이기는 전략을 썼습니다. 속임수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기습공격으로 연합군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프랑스 해협 연안에서 보여준 기습공격은 로멜이 가진 대담성과 창의력을 알려주는 최초 증거가 되었죠. 결국 롬멜이 지휘한 제7기갑사단은 연합군으로부터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 바탕엔 ‘약자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이 있습니다.
패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패는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그 패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 뭔가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바른 선택을 할 자유와 힘이 있습니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한, 선택하나가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선택이 우리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김인식 감독이 보여준 것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가진 패를 잘 분석하고 어느 곳이 승부처인지를 잘 가려 냉정을 잃지 않고 게임에 임한 냉혹한 승부사 기질입니다. 게임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선택과 집중을 위한 위대한 포기’를 몸으로 가르쳐준 리더 김인식 감독. 미국에서 들려올 WBC 본선에서 펼쳐 보여줄 용병술을 기대해 봅니다.(C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