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은 곳

군산 월명공원

바보처럼1 2006. 4. 23. 00:33
아픈 역사 간직한 채 활짝 핀 벚꽃
군산 월명공원에서 상념에 잠기다
ⓒ 김현
사월의 전군가도(全群街道)는 꽃길이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달리는 길 내내 아이 눈망울 같은 벚꽃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그 꽃잎의 흐름을 따라가면 왠지 모를 스산함이 묻어난다. 나무 하나하나가 거무튀튀한 모습을 하고 서있음을 볼 수 있다. 세월에 찌들고 자동차 매연에 찌들어가면서 수명(樹命)을 다해 마지막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이형기의 <낙화> 중에서 -


시인은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길가에서 수십 년 세월을 묵묵히 견뎌오며 상처 난 몸을 끌어안고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가야할 때 가지 못하고 서있는 것들에 대한 애상이 마음 한켠으로 밀려옴을 어찌할 수가 없다.

▲ 벚꽃 사이로 보이는 흥천사
ⓒ 김현
상념에 젖으며 우리가 가는 곳은 군산의 월명공원이다. 고향이 군산인 지인의 아름다운 꼬드김에 열 명의 동료들은 월명공원으로 벚꽃 구경을 가고 있다. 몇 번 군산에 가긴 했었지만 공원은 그냥 스치는 정도였다.

차에서 내려 그리 멀지 않게 보이는 공원의 모습은 초록빛깔의 숲속에 별빛 같은 꽃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공원 아래 자리 잡고 있는 흥천사는 연등을 달아놓고 부처님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흥천사 114 계단을 오르면 월명공원의 산책로가 시작되는데 강한 바람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에 여념이 없다.

▲ 벚꽃 사이로 흘러가는 금강
ⓒ 김현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수시탑과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조망을 하면 군산앞바다에 떠있는 배들과 금강 건너편의 장항 일대와 군산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벚꽃은 장관을 이루어 그저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그러나 이곳 지금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는 월명공원 '벚꽃'의 아름다움은 근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 저 건너 충남 장항의 모습이 가깝게 보인다.
ⓒ 김현
일제시대 때에 이곳은 '각국공원'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들은 공원을 조성하면서 산에 있던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그들의 국화인 벚꽃(사쿠라)을 심어 한국을 일본처럼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벚나무는 수명이 다해 죽고, 지금 있는 벚꽃(보통 벚꽃의 수명은 60년 정도라 함)은 70년대 다시 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벚나무들도 우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심어진 게 아니라 일본인들이 기증한 것을 심었다고 한다.

전쟁 후 일본은 우리나라의 각 지역과 어떤 관련을 맺으면서 그들의 국화인 벚나무를 심었는데 주로 기증을 하는 형태였다. 지금 전주와 군산을 가로질러 심어진 벚나무도 일본이 재일동포를 앞세워 심은 것으로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즐길 때 그들은 어쩌면 웃고 있을지 모른다.

▲ 벚꽃 터널을 걸어가는 사람들
ⓒ 김현
얼마 전 일부 언론에서 여의도 의사당 주변 벚꽃축제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여의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심어져 있는 벚나무들은 어쩌면 일본인의 숨은 손이 들어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진 꽃을 보고 일본의 국화니 뭐니 하며 입방아 찧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지만 벚꽃 축제 현장엔 일본인의 뜻모를 그림자가 아른거림을 어찌하겠는가.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의 영토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바다 속에 묻힌 섬에까지 탑을 쌓고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 그들에게 지금의 독도 영유권 문제나 EEZ 영역 침범 같은 사건은 그들의 끊임없는 욕심의 발로이지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채만식 선생 문학비
ⓒ 김현
산책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조각공원이 나온다. 조각공원을 끼고 조금 더 가면 채만식 선생의 문학비를 만나게 된다. 그 문학비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백능 채만식 선생은 이 고장이 낳은 작가로 그의 업적은 한국문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있다...(중략)...그의 대표작 탁류는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풍자적 작품과는 달리 철저한 리얼리즘 수법으로 세태묘사에 뛰어난 작품이다. 탁류의 배경은 이곳 항구도시 군산이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농민이 어떻게 몰락했으며 도시화 과정에서 한 고장의 삶의 풍속이 어찌하여 타락할밖에 없었는가를 역사와 현실이라는 삶의 혼탁한 현장으로서 깊이 있게 표현되었다...(중략)...

비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일제 시대에 일본은 군산을 식민지 수탈의 본거지로 이용했다. 그들은 호남의 곡창지대에 난 미곡들을 일본으로 실어나갔고, 이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눈물과 한숨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갔음을 <탁류> 뿐만 아니라 조정래의 <아리랑>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채민식은 <탁류> 에서 금강을 '눈물의 강'이라 부르기도 했다.

▲ 벚꽃 사이에 핀 목련꽃이 이채롭다.
ⓒ 김현
백능 선생의 비문을 지나면 벚꽃의 화려함은 갈수록 장관을 이룬다. 만개한 산 벚꽃이 하늘 높이 솟아 하늘을 가리고 있다. 산벚은 길가에 심은 벚나무의 꽃보다 더 화려하고 흰 빛을 띠고 있다. 그 화려한 벚꽃을 바라보며 송 선생이 꼬마전구를 무더기로 달아 놓은듯 하다고 하니, 옆에 있던 미세스 한 선생이 '꼬마전구가 뭐야. 좀 더 이쁜 비유를 해야지. 스무 세 살 처녀의 모습 같구만' 그러면서 자신의 어깨를 으쓱하자 옆에 있던 유 선생이 '그럼 뭐야. 난 사십대 할미꽃이네' 하며 웃음보를 터뜨린다.

▲ 산책로를 따라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벚꽃들
ⓒ 김현
도로변에 심은 벚꽃들은 대부분 졌는데 월명공원(서울의 남산과 같은 산을 공원화 함)의 벚꽃은 싱싱하게 살아있다. 강한 바닷바람에도 꽃잎을 달고 흔들릴 뿐 휘날리지 않는다. 그 곱고 화려한 꽃을 보고 스무 세 살 처녀 같다던 한 선생이 하얀 포도송이 같다며 따먹고 싶다고 한다. 길 따라 피어있는 벚꽃을 구경하던 사십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머리에 벚꽃을 꽂은 모습이 참 예쁘다. 그러고 보니 스무 세 살 처녀는 한 선생이 아니라 그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벚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그 아름다움 속에 숨은 우리 선조들의 아픔과 한숨의 얼굴들이 스치듯 떠오르며 지나간다. 탁류가 되어 도도히 흐르는 금강의 아픔처럼.
  2006-04-22 09:40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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