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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 전, 홍콩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이삿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한국에서 배달되어 온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한동안 못 만났던 자식을 만나 쓰다듬어 주듯 표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루만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쁜 이삿짐 정리도 뒤로한 채 혼자 조용히 지난 2년간 책을 준비했던 과정들을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10년만의 무더위, 요리책 위해 '피땀' 흘리다
한 쪽에서는 에어컨이 쉼 없이 돌아가고 바로 옆에서는 프라이팬에 불이 붙을 정도로 강한 화력의 가스불이 열기를 내뿜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여름 내내 연출되었던 것이죠. 상상이 되시나요? 거의 탈진할 듯 너무 힘이 들 때에는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짓을 한다고 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이지 괴롭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었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무릎이 다 까져 피가 날 정도로 바닥을 기어 다녀야만 했던 일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직접 요리 사진을 찍었지만 아마추어인지라 짧은 시간에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 가장 좋은 구도를 잡는다고 생각하며 행한 방법이 요리를 식탁에 올려놓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수십, 수 백 장을 찍다보니 나중에는 무릎이 까져 옷에 피가 스미는 줄도 모르고 셔터를 눌러댄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아픈 추억'이었습니다. 엄마 생각에 요리하며 눈물을 쏟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엄마가 돌아가셨나보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 엄마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도 엄마가 늘 해주셨던 무말랭이며 생선구이 같은 반찬들에 대한 원고를 쓰고 또 제 손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다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어려서는, 그리고 무심히 먹을 때는 몰랐던 '엄마의 사랑과 수고'가 새삼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을까요? '엄마는 가족을 위해 이 반찬을 만드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반찬투정을 하며 오기로 유독 이 반찬만 도시락에 남겨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하는 따위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 때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요리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고 사랑이 담긴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눈을 뜬 시간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다
호두죽을 만들던 날, 죽 위에 호두 반 알씩이 가지런히 올라가야 음식의 식감도 살고 사진도 잘 나올 텐데 이 호두알이 워낙 무거워서 죽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것이었어요. 할 수 없이 방책을 마련한 것이 죽 아래에 오이 동강을 잘라 고임을 하고 호두알을 올린 후 다시 죽을 부어서 오이를 가리는 '공사'를 하는 것이었지요. 또 된장찌개의 진정한 맛은 호박이며 조갯살을 푹 끓여 우러나오는 맛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곤죽이 되어서 도저히 요리책용 사진으로 쓸 수가 없지요. 그래서 파릇한 호박이과 입 딱 벌어진 조개 안에 통통한 살을 보이는 조갯살은 슬쩍 익혀 찌개에 얹어내는 '장난'을 쳐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록 뭉그러진 호박과 곤죽이 된 된장찌개일지라도 그 맛은 기막히듯, '세상에서 꾸며지지 않은 볼품없는 성근 모양새의 것이라도 그 안의 참된 맛과 가치가 있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맘 편하게 만들고, 즐겁게 먹자!
전문 요리사가 아닌 '비전문가'가 만든 책이라서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로 인해 요리하기가 겁나고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친구 같은 요리책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도 아니요, 요리학원 근처에는 가 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낸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책과 관련한 주변 사람들의 인사도 아주 묘합니다. "책 냈다면서? 축하한다. 잘 팔려?"와 같은 '상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도대체 네가 요리책을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폭탄주 제조 비법을 담은 책이라면 몰라도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나운서일 하다가 때려 치고 나와서 요리책을 다 쓰고, 정말 '멋대로 인생'인가 봐요. 나중에 '멋대로 폭탄주'나 한 잔 만들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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