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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외딴 구석, 해남의 고천암에서 벌이는 날것들의 화려한 에어쇼를 보라. 물을 박차고 솟구쳐 올라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으며, 빙빙 돌고, 내리고, 춤추는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라. 첨단 컴퓨터를 동원한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 이건 수십만 마리 새떼의 회오리, 새떼 |
의 구름, 새떼의 파노라마다. 이건 감히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예술이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드라마다. 지금 해남군 황산면 고천암호에는 이 감동적인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한창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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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에 따르면 고천암에서 겨울을 나는 가창오리(기러기목 오리과)는 20여 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창오리의 9098퍼센트에 해당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가창오리가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다.
가창오리떼의 황홀한 군무를 보려면 해뜰 무렵과 해질 무렵이 적당하다. 가창오리는 먹이활동을 나가기에 앞서 마치 가볍게 몸이라도 풀듯이 한동안
선회비행을 하는데, 보통 오후 4시쯤부터 수면 가까이 날아올라 자리를 옮겨가며 군무를 펼친다. 이렇게 2030분 간격으로 에어쇼를 선보이고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둑신해지면, 녀석들은 편대를 나눠 차례차례 인근에 펼쳐진 무논으로 먹이활동을 떠난다. 주로 논바닥에 떨어진 벼 낟알과 풀씨가
이들의 먹이다.
밤중에 몰래 배를 채운 녀석들은 새벽 해뜰 무렵 다시 편대를 이루어 호수로 돌아오는데, 이는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가창오리의 생존술이기도 하다. 호수로 돌아온 녀석들은 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호수의 중간지점에 앉아 이제 저녁 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군무 때와 달리 녀석들이 휴식을 취할 때면 호수의 가장 안쪽 자리만을 차지하다 보니 고천암호 중간지대는 마치 길다란 섬이 새로 생겨난 듯하다.
가창오리는 매우 민감하여 만일 사람이 500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놀라서 달아나 버린다. 가창오리가 쉴 때면 호수 중간지점에 길게 섬을 형성하는
것도 바로 땅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편안한 휴식을 얻기 위함이다.
이들 가창오리의 고향은 바이칼호와 캄차카 반도를 아우르는
시베리아 동부 지역이다. 여름까지 녀석들은 고향에서 새끼를 낳고 살다가 9월이 되면 남쪽 땅 한반도를 향해 멀고도 위험한 여행을 떠난다. 사실
철새의 여행은 낭만적인 여행이 결코 아니다. 그들로서는 목숨을 건 모험이다. 상당수의 새가 기나긴 이동 중에 죽거나 다친다. 매서운 강풍과
눈보라,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 느닷없는 비행기의 출현 등이 이들의 이동을 가로막고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한반도까지 날아온 가창오리는
그 모든 위험과 역경을 건너온 ‘불사조’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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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철새들은 기류를 타고 이동한다. 즉, 겨울철새들은 차가운 기류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가을에 기류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조류학자인 원병오 박사에 따르면, 철새는 보통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비행한다. 평균 시속으로 따지면 5090킬로미터
정도인데, 오리류가 가장 빨라 녀석들의 비행은 거의 시속 100킬로미터에 육박한다고 한다.
철새들이 이동하는 까닭은 먹이를 찾아
떠나는 본능 때문이지만, 더러 생식선의 변화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현재 고천암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은 청둥오리,
노랑부리저어새, 저어새, 큰기러기, 쇠기러기, 혹부리오리, 마도요, 황새 등 국제적으로 중요한 종만도 20여 종이 넘지만 주로 가창오리와
청둥오리가 주종을 이룬다. 고천암(900만 평, 1981년 영산강 하구언 공사로 생겨남)에 이렇듯 철새떼가 모여드는 까닭은 주변 간척지와 호수,
갯벌 등에 먹이가 풍부하고, 호수 곳곳에 드리운 무성한 갈대숲이 철새들의 안전한 은신처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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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산의 천수만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철새들의 낙원으로 통한다. 천수만은
고천암과 비슷한 시기인 1984년 대규모 간척지 사업으로 탄생한 호수(4,700여 만 평)로, 간월호(A지구)와 부남호(B지구)로 나뉘며,
대부분의 철새는 간월호를 택해 활동한다. 이 곳에는 모두 300여 종, 그 중 큰고니와 황조롱이, 노랑부리저어새, 저어새, 황새 등의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종 38종, 가창오리, 큰기러기, 뜸부기, 말똥가리 등 보호종 32종의 철새와 텃새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철새와
텃새로 나눠보면, 여름철새 40종, 겨울철새 95종, 나그네새(봄, 가을 잠시 머물다 가는 철새) 111종, 텃새가 38종에
이른다.
그러나 최근 천수만을 비롯한 많은 철새 도래지의 수질이 점점 오염되고 있고, 차량 통행으로 인한 소음도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어선의 무분별한 출입과 밀렵행위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철새 기착지’로서의 미래는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간척사업으로 인해 철새들의 먹이처인 갯벌과 보금자리인 갈대밭이 옛날 같지 않고, 탐조 관광객들의 몰상식한 탐조활동도 한반도를 찾은 철새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협하고 있다. 철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이라면, 사람도 살기 힘들어진다. 철새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훼손은
곤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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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용한 시인 | 사진·심병우 사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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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가까이 가서 관찰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며,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탐조여행시에는 망원경을 준비하는 것이 좋으며, 되도록 몸을 숨겨 새들을 관찰해야 새들이 놀라지 않는다. 새들은 냄새에 민감한 만큼 짙은 향수나
화장품을 몸에 바르는 것도 좋지 않다. 새들의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원색의 옷도 피해야 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도 금물이다. 천수만에서는
해마다 10월 말에서 11월 말까지 철새탐조투어 프로그램(투어요금 5천 원, 문의: 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 041-669-7744)을 운영하며,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철새탐조버스를 운행한다. 고천암호 철새 탐조 문의: 해남군 061-530-5229 순천만 철새 탐조
문의: 순천시 061-749-3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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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암호에 가려면 광주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해남까지 가서 18번 도로를 타고 진도
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고천암 철새 도래지’ 입간판이 보인다. 그 길(77번)을 따라 57분쯤 달리면 고천암에 닿는다. 목포까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목포에서 영암방조제 길을 따라 진도 쪽(우항리 공룡화석지 방향)으로 내려가도 된다. 천수만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해미인터체인지나 홍성인터체인지로 나와 안면도 방면으로 가다보면 천수만 간월도를 만날 수 있다. 순천만에 가려면 남해고속도로 여수
방향으로 나와서 벌교 쪽으로 향하다 좌회전하면
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