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FTA의 최대 피해자다. 일부 제조업이 FTA의 과실을 챙기겠지만 농업은 뿌리마저 뽑힐 위기에 놓였다. 우리 농작물의 판매와 생산 감소는 농민들의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때문에 도시와 농촌의 격차 확대, 즉 양극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농가는 맨주먹으로 맞서야 한다.UR 이후 ‘잃어버린 10년’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하며 농민은 영농을 선진화해야 한다. 앞으로 농산물 관세가 완전히 철폐돼 미국산 농산물이 거침없이 들어올 때까지 10년은 우리 농업의 운명이 걸린 시간이다. 개방은 한국 농업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문제를 회피하려는 자세가 더 큰 시련을 가져왔다. 개방에 맞서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지 못했고, 그 결과 농가 피해는 커져만 갔다.
정부의 계획성 없는 지원에 따른 농가빚의 증가는 농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구조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80년대 초부터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던 농가빚은 개방으로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가 자급자족의 농업 구조를 시장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해 계획성 없는 농촌 지원을 늘리면서 자연스레 농가빚은 쌓여갔다. 농림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빚은 지난 10년새에 140%나 급증했다. 반면 소득은 39% 느는데 그쳐 농가 부담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개방 파고를 뛰어넘는 지혜 필요
특히 우루과이 라운드 체결 이후 지난해까지 42조원 투융자계획,15조원 농어촌특별세 신설 등을 통해 농업에 130조원 이상 투입됐다.
그러나 농업의 체질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해 여전히 개방에 가장 취약한 분야로 남아 있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농업개방과 함께 지난 10년간 충분한 ‘시그널’이 있었음에도 농업계 스스로 변화 대응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정부 정책의 비효율성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업 최강국인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불리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한 농업 피해 규모는 최대 2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농산물 교역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금도 농수산물 교역량의 90%가 대미 수입품이다.
그러나 ‘농업의 사형선고’로 치부했던 UR와 한·칠레 FTA 등 파고를 이겨낸 경험을 떠올린다면 한·미FTA가 넘지 못할 벽도 아니다. 차별화 전략으로 개방 이전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며 해외수출까지 하는 농가도 많다. 재배한 지 몇년 만에 네덜란드 등을 누르고 일본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하는 등 세계를 석권한 파프리카가 있다. 수입산 키위를 우리만의 ‘참다래’로 만들어 뉴질랜드나 칠레산의 콧대를 꺾은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선진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앞으로 10년간 농업의 구조조정이 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10년을 회생의 기회로
삼성경제연구소는 10년 뒤 농가 수는 현재의 절반, 반면 농가 소득은 2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변화를 예측한 농정 정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 동안 미국,EU, 중국 등 여러 나라와 FTA가 체결되고 쌀도 관세화가 될 것”이라면서 “농가는 ‘블루오션’을 찾아 품질을 고급화한 명품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고, 정부는 소득 보전 등 대책을 마련하되 엄격한 기준으로 체질 개선을 앞당기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수석연구원은 “한국 농업 경쟁력은 ‘월드 베스트’가 아닌 ‘차별화’에 둬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가격보다 안전성, 친환경성, 맛을 우선해 농산물을 구매한다.”면서 “농산물을 단순 먹거리로 보지 말고 문화, 예술,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등과 결합해 먹고 즐기는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농정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