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명과 후금의 정세 3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 역사 2007.09.11
(34)명과 후금의 정세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천계 연간 격렬한 당쟁이 빚어지고 결국 위충현을 비롯한 엄당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그 불똥은 곧바로 산해관 바깥으로 튀었다. 요동, 요서(遼西)의 방어를 책임진 최고위 지휘관들 또한 당쟁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당파에 속하느냐가 .. 역사 2007.08.30
(22)심하전역과 인조반정4 [병자호란 다시 읽기] (22)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Ⅳ 강홍립이 이끄는 원군이 심하전역(深河戰役)에서 패하여 누르하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은 조선 조야(朝野)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한편에서는 강홍립의 가족을 잡아들여 가두라는 아우성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항복 때문에 조선도 오랑캐가 .. 역사 2007.06.20
(18)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5 [병자호란 다시 읽기] (18)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Ⅴ 이성량(李成梁)이 병탄을 시도하고, 광해군과 왕세자를 책봉하러 왔던 명사(明使)들의 은(銀) 징색이 이어졌던 것은 광해군 시절 명나라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광해군대 누르하치의 건주(建州)와.. 역사 2007.05.11
(17)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4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우여곡절 끝에 즉위했지만 국왕 광해군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그의 친형 임해군을 처리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사관(査官) 엄일괴 등을 은으로 구워삶아 위기를 넘겼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부터 신.. 역사 2007.05.03
(15)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광해군은 성공적인 분조 활동을 통해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부왕 선조의 견제 때문이었다. 왜란 초반,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의주까지 파천하기에 급급했던 선조는 지존(至尊)으로서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 역사 2007.04.18
(14)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1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왕가수가 격문을 보.. 역사 2007.04.11
(13)누르하치,明에 도전하다 5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서 비롯된 난맥상은 명의 발목을 잡았다. 환관(宦官.. 역사 2007.04.03
(11)누르하지,명(明)에 도전하다 3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覇者)로 등장하기 전까지, 명이 상대하기에 가장 버겁고 까다롭게 여긴 대상은 예허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르하치가 하다, 호이파, 울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예허는 고립되었다. 명은 이제 예허를 다독여 .. 역사 2007.03.22
(10)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강한 예허부(葉赫部)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역사 200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