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도예가 김구한씨

바보처럼1 2007. 7. 24. 10:58
 
[송성갑의 新匠人탐구]도예가 김구한씨
'도자기 집' 굽는 전통 지킴이
 김구한씨가 일본 니가타현 츠난군 우아노 지방에 설치한 자신의 작품 ‘도자의 집’ 앞에 서 있다.
“우리의 전통예술에 담긴 민족적 원형을 찾아 세계적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흙으로 집을 굽는 쪽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요산도요’를 꾸려 가고 있는 도예가 김구한(57)씨는 자신이 건축물을 도자기처럼 구워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현재 일본 니가타현 쓰난초에 설치돼 있는 그의 대표 작품 ‘도자의 집’은 이미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일본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지로부터 매일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도자의 집은 김씨가 2002년 이 지역에서 열린 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에 한국 대표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작품. 흙벽돌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쌓고 그 둘레를 기둥 없는 가마로 감싸 구운 이 작품의 규모는 내부가 3.5평, 높이 4.8m, 둘레 26m로 일종의 토굴 형태를 띠고 있다.

구조물 전체 모양은 거대한 학이 앞을 주시하며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고, 외부벽에는 거대한 화분대와 새집이 부착돼 있다. 꼭대기는 솟대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작품 출품 당시 일본의 한 일간지는 ‘세계적인 발명’이라며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NHK방송은 최근 김씨의 작품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조만간 방영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정도다. 니가타현 정부는 현재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 중이다.

서울대 미대 출신인 김씨가 도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75년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쫓기는 신세가 된 그가 경북 문경에 숨어 지내는 동안 할아버지 도공을 만난 것이다. 이후 도자기를 배워 봐야 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경기도 이천으로 거처를 옮겨 정식으로 도자 공예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개입한 것이 화근이 돼 공안당국의 추적을 받던 그는 8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 미학예술과 대학원 연구생으로 진학했다. 도자의 집을 만들어야 겠다는 그의 발상은 일본 체류 기간에 이뤄졌다.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의 민예관에 들렀다가 성인 5명가량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독을 관람한 적이 있었어요. 그 독을 뒤집어 놓고 문을 만들면 집이 될 것이란 생각이 스쳤죠.”

그는 87년 초 귀국하자마자 이천에 소규모 도요를 차리고 도자의 집 연구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옛날 가마터를 찾아 전국을 떠돈 것도 이 무렵. 그러던 중 또다시 문경에서 기둥 없이도 가마 축조가 가능한 원추형 벽돌의 원리를 발견한다. “고구려 고분의 흔적을 찾아내 복원한 셈이었는데 당시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30∼64㎝ 두께의 벽을 건조시키는 것이 난제였다. 3㎝ 두께의 일반 도자기만 해도 자연 건조시키려면 10일이 소요되기 때문.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인공 건조가 가능한 특수 흙을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 이때까지 그가 투자한 기간만도 자그마치 7∼8년. 그는 이 기간이 도자의 집을 성공시키기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니가타현의 작품은 그가 도자의 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결정판인 셈이다. 그는 현재 도자의 집 축조에 필요한 열두 가지 흙을 배합해 만든 조합토와 기둥 없는 가마제조법 등 자신이 개발한 관련 기술 일곱 가지를 특허출원 중이다.

그는 95년 서울 강남의 한 빌딩에 초대형 ‘백두대간’ 도자조형물을 설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99년엔 독일 뒤셀도르프홀에서 열린 대예술제에 ‘유량민의 역사’를 출품해 영구보존 작품으로 선정됐으며,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자신의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내년에 열리는 경기 도자 엑스포에도 도자의 집을 출품할 예정”이라는 김씨는 “나의 공들인 작품이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도자기 산업을 회생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여론독자부기자/sk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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