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몰아치면 바다는 까매지고, 넓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줄기와 바람소리가 좁은 실내로 들이친다. 맑은 날의 바다는 창문을 넘어와 책상을 푸르게 물들인다. 우주와 교신하기에 적합한 집이다. 제주시 애월읍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통나무집은 소설가 윤대녕(41)의 집필실이다.
윤씨가 20여년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제주로 내려온 것은 지난 4월이었다. 그가 살았던 곳은 경기도 일산이지만, 주변에는 언제든지 함께 통음할 수 있는 지인들이 있었다. 도시의 생활리듬 속에서 아무리 자신을 다잡는다고 해도 통제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는 지인들과 어울리는 ‘위로’보다 외로움을 선택했다. 스스로 유배된 것이다. 서울에서 그의 집필을 방해하러 내려온 벗들을 윤씨는 공항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맞았다.
“한동안 사람과 술이 그리울 때마다 무작정 공항으로 와서 대합실에 앉아 들고 나는 사람들을 구경했습니다. 바다가 붉게 물들다가 캄캄해지고 마지막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며 집 위로 떠오를 때면 마음이 산란해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 와서 짧은 기간에 단편 2편을 마무리했고 장편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벗들과 함께 제주를 주유하는 차 안에서 그는 그동안의 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에는 아예 해외로 떠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현실감각이 둔해질까봐 차선으로 제주를 선택했다. 제주는 이미 그가 데뷔 초창기부터 소설 구상과 집필을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는 일상의 공간을 떠나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면서 소설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천지간’은 해남의 바닷가에서, ‘상춘곡’은 쌍계사에서, ‘신라의 푸른 길’은 동해 7번 국도에서 탄생됐다. 1990년대 한국문학을 여는 새로운 세대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았던 윤씨는 벌써 40대에 접어들어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다. 그는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현대문학’ 7월호에 발표한 단편 ‘찔레꽃 기념관’으로는 올해 이효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는 나에게 갇힌 곳이 아니라 오히려 열린 곳입니다. 서울은 물론 상해 일본 시드니까지 다 열려 있는 출발점이지요. 대합실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이제는 작품 속의 세계도 현실 쪽으로 한 발짝 더 내려온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생활인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윤대녕 문학의 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쑥스럽게 자신의 입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지만, 분명히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었다. 모처럼 내려온 벗들은 무심히 떠들면서 풍광을 즐겼지만, 그는 아직 도시에서 묵힌 피로가 완전히 씻긴 표정은 아니었다. 방해꾼들로 인해 제주조차도 도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윤대녕이 생산해낸 소설들은 이전 소설들과 빛나는 감수성으로 차별화되는 새로운 작품들이었다. 그중에는 제주가 이미 기여했던 작품도 있다. 그의 진정성이 육화된 대표적인 장편 ‘달의 지평선’에는 제주의 우도가 신화로 등장한다. 소설 속 인물 중의 하나인 ‘주미’는 어머니가 우도의 한 우물에 몸을 던졌다가 용케 마을 사람들이 알고 건져올린 날 난산 끝에 태어난 돼지띠의 여자였다. 소설 속에서 주미는 말한다. ‘저 섬엔 아주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어요. 새벽이 되면 달이 들어와 잠자는 우물 말예요. 그러고 밤엔 다시 하늘로 올라가죠.’
자신의 삶이 비롯된 곳이면서 동시에 원초적인 상실의 장소를 운명처럼 업고 태어난 그 여인은 다른 사내 사이를 오가다 일식이 진행되던 날 떠나간다. 전날 밤 통음 끝에 쓰러진 벗들을 뒤에 두고 함덕 백사장으로 달려갔었다. 하늘에는 하현달이 어린이의 그림처럼 어색한 구도로 금방 떨어질 듯 하늘에 가깝게 매달려 있었고, 수평선에는 한치잡이 배들이 지나치게 밝은 촉광의 수은등을 밝히고 있었다.
차귀도에서 벗들과 자리돔을 낚던 윤대녕은 모처럼 피로한 얼굴을 벗고 부지런히 낚시줄을 드리웠다. ‘은어낚시통신’이 그의 첫 창작집의 제목임을 아는 이들이라면 낚시와 윤대녕의 인연을 알 것이다. 그는 제주에 내려와서도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슬리퍼를 신은 채 집 앞의 바닷가로 달려가 고기들과 씨름한다. 그는 최근에는 꽤 큰 참돔을 잡아 새벽에 집에서 자고 있는 식구들을 깨우기도 했다.
“나는 편하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편입니다. 차가운 곳에서도, 따뜻한 곳에서도 머물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렇게 떠도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낮은 자리로 내려와 적어도 작품 속에서는 세상과 뒤섞이기를 원합니다.”
소설은 현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집필하는 곳은 일상에서 떨어진 공간이어야 하는 작가의 고통이 새삼스럽다. 벗들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온 윤대녕은 여전히 피로하고 쓸쓸한 표정이었다. 소설의 긴 여로에서 쌓인 피로와 짧은 이별이 주는 쓸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용호기자 jhoy@segye.com
<사진>빛과 어둠, 바다와 바람 속에서 새로운 문학인생을 맞은 윤대녕씨. 카페에 앉아 문득 고개를 쳐든 그의 눈빛이 아득하다. |
2003.09.03 (수) 1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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