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전원속 작가기행]②모악산자락 외딴집서 13년째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 | ||
무덤같은 山房…세상미련 '훌훌' | ||
|
박남준(46)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무덤' 같다고 표현한 모악산(전북 완주군 구이면)의 외딴집에서 13년째 홀로 살고 있다. 그 집은 한때 무당이 살다 떠난 빈집이었다. 대처살이에 지친 그는 선배가 소개해준 그 집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버렸다. 때는 이른봄이었고, 그는 한 끼의 양식을 위해 낙엽 사이를 뚫고 양지쪽에서 돋아나는 쑥을 뜯었다. 검은등뻐꾸기가 '흐흐흐' 울었다. 뻐꾸기마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뜯던 쑥을 팽개치고 주저앉아 울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하루살이들이 창호지 바깥에서 파르르 떠는 소리, 멀리서 부엉이 소쩍새 소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시인은 산 아래 세상에 두고 온 사랑과 미련과 그리움을 떠올리며 홀로 뒤척거렸다.
그렇게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고 다시 봄이 오고 갔다. 모악산에서 10년째 맞이한 어느 봄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앞마당에서 쑥을 캐는데 검은등뻐꾸기가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를 바라보며 울었다. 그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시인은 헛헛하게 웃으며 뻐꾸기에게 말을 건넸다. 너도 이제야 나를 한 식구로 반기는구나…. 시인이 원고료도 몇 푼 나오지 않는 시만 쓰면서 대처에서 처자식 거느리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년의 총각으로 살아가는 박남준은 많은 것을 버렸다. 그 산속에서는 푸성귀와 된장과 쌀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남들에게는 술값도 안 되는 원고료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남는다."시인에게는 두 가지 몫이 있다고 봅니다. 한 부류는 슬픔에 빠진 이에게 다가가 세상에는 눈부신 것들이 많이 있잖아, 하며 어깨를 다독거리는 쪽이지요. 또 하나는 슬픔의 응어리 곁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 나도 당신 못지않게 슬프다며 동지적 위안을 주는 쪽입니다. 나는 후자 쪽입니다. 내가 써온 시들은 한없이 우울하고 비참하고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주제들입니다. 나는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풀이나 돌멩이를 보면서 고통을 치유하고 상처받기도 하지요."
박남준은 집 주위의 풀과 나무와 새와 동물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대화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혼잣말인 셈이다. 말없이 들어주는 그것들에게 묻고 스스로 답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위로받고 상처받는다. 그에게 물었다. 생각이 없는 그런 미물들에게서는 위로를 받으면서 왜 정작 따뜻한 피가 흐르는 동반자를 찾아 위로받고 위로해줄 생각은 하지 않는가. 그는 쓸쓸하게 답했다. 사람은 풀과 나무와 새보다 참을성이 없다고. 내 안의 나와 더불어 묻고 대답하며 깨달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나에게는 소중하다고.
"저건 애매미 소리다 여름,/ 뻐꾸기 한 마리 저만큼 전봇줄 위에 앉았다/ 그렇게 목 메이는 것이라니 바람을 불러모은 미루나무 작은 잎새들/ 일제히 흔들린다 모든 것들이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개울가 딱 하루만 피었다 지는/ 각시원추리가 기다리는 첫날밤은,/ 주황빛 꽃불을 끄고 차린 신방을 엿보고도 싶은데/ 엿보고 말았다 꽃잎의 빗장을 닫은 신방 뚝 떼어 들췄더니// 거기 글쎄 아그그그/ 애들은 가라/ 눈을 감아라/ 흠흠 그런그런 것이 아니라/ 각시원추리의 신방 속/ 아직은 작고 어린 별 하나가 마악 잠들고 있었다./ 꿈꾸는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끊임없는 것, 기약하는 것,/ 삶이 그럴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사랑도 그럴 것이다/ 내 사랑도 그럴 것인가/ 아니다 나는 틀렸다"
시인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릴 '첫날밤'이라는 시를 보여주었다. '끊임없는 것, 기약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람의 사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나는 틀렸다'고 짐짓 도리질 친다. 산 아래 두고 온 상처 때문일까. 그 상처가 여인에게서 생긴 것이든,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과 번잡함 같은 보편적인 혐오감이든, 시인은 어쨌든 홀로 살아가는 자연 속의 삶에 깊이 빠져버렸다. 한때 박남준도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시편을 썼다. 그런 그에게 지인들이 왜 당신은 절망스럽고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진 시만 쓰느냐고 비판할 때, 그는 다만 삶의 중심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박남준도 이제는 예전처럼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가 살고 있는 '모악산방'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다시 중심을 옮길 궁리를 하는 중이다. 이제 그가 다시 옮겨갈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대처의 번잡한 네거리라도 괜찮고, 지리산 깊은 움막이라도 상관없다. 이제 그는 누구도 불쑥불쑥 쳐들어올 수 없는, 비바람과 새소리와 세상의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속 깊은 산중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부기자 jhoy@segye.com
2003.08.06 (수) 16:42 |
'전원속의 작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제주도 바닷가에 둥지튼 소설가 윤대녕 (0) | 2007.08.05 |
---|---|
(3)안성 저수지가 '수졸재' 지키는 장석주 시인 (0) | 2007.08.05 |
(1) 소설가 한승원 (0) | 2007.08.05 |
전남 장흥 폐교서 사는 화가 유승우 (0) | 2007.07.11 |
양평 북한강가에 사는 황명걸 시인 (0) | 2007.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