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킴이

(18)백제토기 재현 신승복씨

바보처럼1 2007. 8. 8. 21:18
▶한국의 名人◀ (18) 백제토기 재현 신승복씨
백제토기 재현 신승복씨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자리잡은 백제요의 대표 신승복씨가 백제요 뒤편 황토 가마에서 토기를 굽기 위해 소나무 땔감을 집어넣고 있다./김지연/문화/사회/2006.11.21 cherora@yna.co.kr">(부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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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백제토기를 재현하는 40대 장인이 있다.

   백제의 옛 수도인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자리잡은 `백제요'(百濟窯)의 대표인 신승복(辛承復.43)씨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토기는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계속 발전하면서 맥을 이어갔기 때문에 우리나라 토기의 대표격이 됐습니다. 그러나 선이 부드럽고 해학적이면서도 화려한 맛이 나는 백제토기도 신라토기 못지 않습니다. 백제토기의 그런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게 저의 일이지요."
가증리 백제요 뒤뜰에는 길고 비스듬한 언덕 모양으로 만들어진 전통 황토가마가 놓여 있으며, 그 옆에는 통으로 잘린 국산 소나무 장작이 한 무더기 쌓여 있다.

   산과 언덕에 굴을 파고 땅 속에서 불을 때 구웠던 백제시대의 토기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신 씨는 토기를 빚을 때도 "전기물레를 사용하면 그릇의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면서 발 물레를 고집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빚은 토기는 그늘에서 30-40일간 말린 뒤 가마에서 4박5일 동안 온도 조절을 꾸준히 하면서 굽는다. 신 씨는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나 한겨울 혹한 속에서도 가마 옆을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백제시대에는 토기를 주로 800-900℃의 온도에서 구웠다는 게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있지만 신씨는 가마의 온도를 1천200℃까지 올리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신씨는 "제 토기는 그저 두고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그릇이므로 무엇보다 단단하고 실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씨가 만든 백제토기들의 경우 크기와 모양은 천차만별이지만 빛깔은 한결같이 투박하면서도 온화한 짙은 회색을 띠고 있다.

   "토기를 가마에 넣어 불을 땐 뒤에는 한나절 동안 가마의 연기 구멍을 모두 막아놓고 계속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릇이 연기를 머금어 바로 이런 색의 토기가 나옵니다. 유약을 발라서 굽는 것보다 토기가 숨을 쉴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색도 입힐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 입니다."
신씨는 자신이 구워 만든 진회색 꽃병을 대견하다는 듯이 쓰다듬으면서 "여기에 꽃을 꽂아두면 더 오래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는 현재는 백제토기의 `명인'이 됐지만, 보통의 도예가들처럼 어렸을 적부터 스승 밑에서 그릇 굽는 법을 배우는 `도제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신씨는 졸업 후 곧바로 상경, 직장생활을 했으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기반을 잡겠다고 마음먹고 지인의 소개로 백제요에 `취직한' 것이 지금부터 15년 전 일이다.

   그러나 잠시 머물며 삶의 의욕을 재충전할 곳으로만 생각했던 백제요는 어느새 그에게 정겨운 직장이 됐다. 백제 토기에 혼을 뺏기면서 결국 평생의 터전이자 집이 된 것이다.

   신씨는 "학교에 다니면서는 미술이 가장 못하던 과목이었다"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토기를 만드는 게 내 길이고 운명인 것같다"고 말했다.

   이후 신씨는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로 작심하고 모교인 목원대에서 도자기 분야를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문화재 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15년간 현장에서 백제토기를 만들고 연구하면서 토기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백제토기의 재현과 복원에 필요한 전문지식은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학계나 예술계에는 저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 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백제 토기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의 바람대로 백제요의 토기들은 서서히 장식장과 진열대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의 식탁과 탁자, 책상 위로 자리를 찾아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신씨의 백제요가 백제토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현재 연간 1만명의 단체 관람객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지난해에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서동요'에 그의 토기들이 등장해 세련미를 뽐냈다. 이어 지난 9월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00일 민심 대장정' 도중 백제요를 찾아오는 바람에 신씨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인들도 어디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백제요를 찾아 그의 작품들을 사가기도 한단다. 신씨는 지난 4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전시회를 열어 미국 교포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백제요'를 한국토기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30-40년은 더 백제토기를 만들 수 있겠죠. 그때까지 백제요를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신씨의 꿈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브랜드의 입지를 굳히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저는 토기들에 제 이름을 새기지 않습니다. 제 이름 석자보다 '백제요'라는 브랜드가 후세까지 남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요."
진회색 백제토기에 깊이 새겨진 '백제요' 세 글자를 손으로 훑는 그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면서 이 토기 만큼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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