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16) 참빗장 고행주
(담양=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사는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 대(代)에서 가업을 끊기게 할 수는 없었어"'이'가 득실했던 과거, 참빗은 `달갑잖은 동반자'인 이를 몰아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도구였다.
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참빗으로 머리카락 한 움큼을 빗어내리면 방 바닥에 깔아둔 신문지에 머릿니와 서캐(이의 알)들이 수없이 떨어지는 어려운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6대 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60년 넘게 참빗을 만들어 오고 있는 전남도 무형문화재 15호 참빗장 고행주(73)씨.
전남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위치한 고 씨의 작업장을 찾아 `참빗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죽녹원 인근 향교리 생기마을 고 씨의 벽돌집 마당 한 편에 자리잡은 10평 남짓한 작업장에서는 수십년이 족히 된 듯한 참빗 만드는 연장, 대나무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고 씨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양반다리를 한 채 작업을 하느라 다리 모양이 변할 지경"이라며 참빗 만드는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 씨는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참빗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어깨 넘어로 기술을 익혔다.
`하루에 참빗을 몇개나 만드느냐'는 질문에 고 씨는 "누구나 여기 오면 그것부터 묻는다"며 참빗 제작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3-4년생 대나무를 매듭 길이로 쪼갠 다음 겉과 안(內)죽으로 분리한다. 참빗살은 겉죽으로만 만든다. 이 나무 조각을 V자형 조름틀로 다듬어 실로 엮는다. 이어 빗살을 직각으로 세워진 3개 기둥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런 다음 짜여진 빗살에 색을 입힌 뒤 참빗의 기둥격인 등대를 아교로 붙여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돌방에 8시간 정도 말린다고 한다.
살을 엮는데 쓴 삭대(기둥)와 실을 풀고, 들쑬날쑥한 빗살을 밀고 다듬은 뒤 헝겊에 참기름을 묻혀 골고루 닦아내면 마침내 윤기가 흐르는 참빗이 완성된다.
이 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참빗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참빗이 널리 쓰였던 60년대만 해도 서울, 부산, 인천 등 도회지에서 주문이 밀려 한 달에 수천개씩 참빗을 만들어 `참빗조합'에 내다 팔았지만 요즈음은 우편주문을 통해 소량 판매하는게 고작이다.
2천∼1만원 하는 참빗을 한 달에 100개를 팔기도 힘들어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 씨는 2남 6녀를 키울 수 있게 해 준 참빗을 놓지 않을 참이다.
오히려 참빗에 대한 고 씨의 애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화학물질로 만든 일반 빗이 몸에 닿으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참빗은 정전기도 없고 모근부터 빗어내리는 순간 개운한 느낌은 플라스틱 빗에 비할 바 아니다"고 참빗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 씨는 아프지 않게 머릿니를 '제거'하는 방법도 들려줬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참빗질을 싫어하는 것은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라며 "몇십 가닥만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참빗으로 모근부터 서서히 빗어내리면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이도 잘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지난해 부터 단조로운 색을 탈피, 빗살에 4-5가지 색을 입힌 `색색이 참빗'을 만들고 있다.
이 참빗은 머리를 빗는데 쓰지 않더라도 소장용으로 지니고 싶을 만큼 빛깔이 곱다. 그의 미적 감각이 빚어낸 걸작이다.
고 씨는 대학생 손녀를 둔 나이지만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 검은 물을 들이는 등 것 모양 부터 평범한 노인들과는 달라 보였다.
`세련돼 보인다'는 칭찬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가씨들이 멋을 내기 위해 입는 청바지는 비싸지만 싼 청바지는 5천원이면 시장에서 살 수 있다"면서 "일하기 편해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아직 '젊은 감각'을 가진 고 씨지만 세월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친다.
짧은 머리와 퍼머 머리 스타일이 유행하고, 하루가 다르게 디자인이 바뀌는 플라스틱 빗이 나오고, 셀수 없이 많은 모발 관리제품이 생산되는 세상에서 참빗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 씨의 마을에만 한 때 300가구 가량이 참빗을 만들어 왔으나 이제는 2-3명 정도의 장인이 `담뱃값'을 벌기 위해 참빗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현재 큰 아들 광록(47)씨 부부와 셋째 딸이 그의 기술을 전수받고 있지만, 고 씨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고 씨는 "나야 6대째 이어온 가업을 끊기게 할 수도 없고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이 일이라 숙명처럼 하고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집을 나서는 기자에게 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등이 적인 표지판을 읽어보도록 권하는 고씨에게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명인의 자부심과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sangwon700@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6/11/06 11:00 송고

'전통지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백제토기 재현 신승복씨 (0) | 2007.08.08 |
---|---|
(17)방짜수저 달인 김용락씨 (0) | 2007.08.08 |
(15)주철장 문화재 원광식씨 (0) | 2007.08.08 |
(14)허벅장 신창현옹 (0) | 2007.08.08 |
(13) 나침반 문화재 김종대 옹 (0) | 2007.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