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26) 韓紙 장인 홍춘수옹
(임실=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노인의 손은 나무껍질 처럼 거칠었다.닥나무의 뻣뻣한 껍질을 벗겨 부드러운 한지(韓紙)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쳐온 홍춘수(洪春水.70) 옹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된 '지장(紙匠)' 홍옹은 58년 동안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홍옹은 각고의 노력끝에 최고 품질의 한지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손은 흉터 투성이의 나무껍질 처럼 변해 있었다.
새해 벽두 전북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에 있는 홍옹의 집을 찾았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그의 집 마당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다.
100평 남짓한 마당 곳곳에는 닥나무 가지와 말린 메밀 줄기가 2m 높이로 쌓여있었으며. 한쪽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아궁이와 솥, 시멘트로 지은 실내 작업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을 종종 걸음으로 오가며 바쁘게 손은 놀리고 있는 홍옹은 왜소한 체격에 새하얀 머리칼, 돋보기 안경을 쓴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시골까지 뭣하러 오셨소"라며 기자를 맞는 말투도 느릿느릿하다.
그러나 홍옹은 이어 마당과 작업장을 돌며 한지 제작 과정을 재현하는 2시간 동안은 전혀 피로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난 홍옹은 12살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고 한다. 부친인 고(故) 홍순성씨가 운영하던 전주시 서서학동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다.
"아버지가 생업으로 종이를 만들어 내다 팔았지.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종이 뜨는 법을 접하게 됐는데 이 일이 3대(代)째 가업이 됐지"
초등학교 5학년 중퇴 학력의 그는 "58년 동안 종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밥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지는 닥나무를 하루 동안 삶아 벗겨낸 껍질을 주재료로 만든다.
'피닥'이라고 부르는 껍질은 빳빳하게 될 때까지 볕에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리면 속껍질만 벗겨낼 수 있다.
'백닥'이라고 불리는 속껍질은 옅은 아이보리색을 띈다. 말린 메밀대와 콩대 줄기를 태워 우려낸 잿물에 백닥을 삶아 새하얗게 되도록 잡티를 긁어낸다.
홍옹은 "잿물을 내는 시간을 줄이려고 화학 약품을 조금이라도 섞으면 보드라운 한지가 나오지 않는다"며 거무튀튀한 잿물을 손으로 한번 휘젓는다.
새하얗게 삶아진 백닥을 짓이겨 흐물흐물한 반죽으로 만든다. 백닥 반죽을 맑은 물에 풀고 닥풀뿌리로 쑨 풀을 첨가해 걸쭉하게 만들면 '종이물'이 된다.
대나무발 위로 종이물을 10여차례 덧씌워 얇은 막을 만든 후 달궈진 철판에 올려 건조하면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인 한지가 된다.
한 공정을 마치는데 최소 한달 이상이 걸리는 데다 수백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한지는 백지(百紙)'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홍옹은 품을 덜기 위해 기계나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꼼수'를 부린 적이 없다고 한다.
"한지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가는 거라오. 조금이라도 인공 재료를 섞거나 기계를 대면 한지가 망가져 버리지. 싸고 편리한 맛에 기계지를 찾던 사람들도 차츰차츰 전통 한지로 돌아오고 있다오"
그는 19살 되던 1952년 선친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의 현 부지로 공장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6.25 직후 정부가 유실된 호적대장을 복원하기 위해 대규모로 종이를 사들이면서 이들 부자의 가업도 활기를 띠게 됐다.
일상 생활에서도 문에 바르는 창호지나 족보를 옮겨적기 위한 복사지, 부채나 사군자에 쓰는 화선지, 청첩장용 태지(苔紙) 등으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여서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다.
"홍씨네 한지는 질기면서 보드랍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홍씨 부자의 공장도 80년대 한때 기술자를 20명까지 둘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어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중국산 화선지가 가짜 한지로 둔갑해 유통되면서 전통한지는 급속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홍옹은 "전통 방식으로 종이를 뜨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계지 만드는 곳으로 빠져나갔다"며 "6남매를 먹이고 가르칠 정도는 되던 종이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백발의 노인은 평생을 같이 해온 종이를 놓을 수는 없었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천연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 감각에 맞춘 다양한 한지를 개발하기로 했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 두장의 한지 사이에 단풍잎을 끼워넣은 장식용 '단풍지', 김을 뜯어 넣어 자연스런 무늬를 입힌 '김종이'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한지의 전통과 우수성이 잊혀지지 않도록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1999년 노동부 지정 한지 기능전승자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003년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전협회 장지부문 입선 등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특히 홍옹은 지난해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35호 '지장(紙匠)'으로 지정됐다. 또 큰사위인 노정훈(40)씨가 기능이수자로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홍옹은 "나무에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거라오. 밑을 내려다보면 무섭고 꼭대기에는 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다만 전통 한지를 지킬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라며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이제는 손마디가 곱은 데다 기력도 떨어져 종이 만지는 날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홍옹에게는 아직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한지 체험장을 세워 다양한 종류의 전통 한지와 각종 도구, 기술 자료 등을 전시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 만드는 방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홍옹은 "다음주에 박물관에서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견학을 온다는데 날도 춥고 너무 좁지는 않을지 걱정"이라며 창문이 뚫려 겨울바람이 숭숭 통하는 작업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홍옹은 "갑자기 눈이 내린다"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보드라운 한지에서 뜯어낸 것 같은 새하얀 눈송이가 노인의 백발 위로 가만히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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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glass@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1/16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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