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33)'천년 紙匠' 장용훈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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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紙匠' 장용훈 옹
(가평=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 장용훈 옹이 6일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한지 제작소 '장지방'에서 완성된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전국부기사 kyoon@yna.co.kr">참조>> kyoon@yna.co.kr (끝) |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산골마을에 자리한 한지 제작소 장지방(張紙房).
마침 한지 원료인 닥나무를 삶는 가마솥 옆에서 지장(紙匠) 장용훈(74)옹이 첫마디를 건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장 옹은 1996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으로 선정됐다.
지장이란 전통 한지 제조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장 옹이 큰아들 성우(41)씨에게 4대째 한지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이 제작소는 '장씨 집안에서 종이를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장지방'이라고도 불린다.
장지방에 들어서자 물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고 바닥에도 흥건하게 고여 있었지만 은은한 닥나무 향기가 한지 만드는 곳임을 알게 했다.
장지방 내외관은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시중 가격에 비해 2-3배 가량 비싼데도 미리 주문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 옹은 기자에게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란 말을 꺼냈다.
"종이는 1천년, 비단은 500년을 간다"는 말로 1966년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유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 옹은 "8세기에 만들어진 인쇄본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보존된 것은 한지의 오랜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옹이 한지 제작에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씨 집안의 한지 제작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제 1대 장경순 옹이 농사를 짓으며 닥종이를 만든데 이어 제 2대 장세권 옹이 한지 제작을 전업으로 삼았다. 이제 장용훈 옹을 거쳐 아들 성우씨로 이어지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장 옹은 1951년, 당시 17살때부터 순창과 전주 등에서 아버지에게 한지 제조법을 배웠다.
6.25 전쟁 직후 관공서 등에서 소실된 문서를 복원하느라 한지 수요는 폭발적이었으며 장씨네 한지도 196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1973년 장 옹은 닥나무가 많이 나고 물이 풍부한 가평으로 옮겨왔다. 이미 이곳에는 6-7군데 작업장에서 한지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로 찍어낸 양지가 보급되고 근대화로 인해 양옥이 들어서면서 한지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장인들이 한지 생산을 포기했지만 장 옹만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가업을 지켜갔다. 장 옹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 장씨 한지의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장 옹은 "아버지가 한지는 품이 많이 들지만 전통 방식대로 만들어야 변하지 않고 오래 보존된다고 늘 말했는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내가 이 말을 아이들에게 자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 옹은 장지방 텃밭에 심은 고추대를 태워 숯으로 만든 뒤 이 숯에 걸러진 핏빛 잿물로 닥나무를 삶는다.
보통 메밀대와 콩대 줄기를 태워 우려낸 잿물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장씨 집안에만 내려오는 방식이다.
또 닥나무를 삶을 때에도 가스불을 사용하지 않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가마솥 온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 옹은 한지 제조 방법을 소개하느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큰 소리로 아들을 부르며 가마솥에 가 보라는 잔소리를 해댔다.
장 옹은 "닥나무를 삶는 물과 삶을 때 온도가 장씨 한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성우씨가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며 막내 아들 갑진(34)씨도 일손을 거들고 있다.
그러나 그는 10년 넘게 종이를 만지고 있는 성우씨에 대해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장씨네 한지는 11월에서 다음해 2월 사이 베어낸 1년생 닥나무가지를 주원료로 한다.
닥나무 가지는 5-6시간 삶아 '피닥'으로 불리는 껍질을 분리한 뒤 다시 햇볕에 말려 속껍질인 '백닥'을 떼어낸다.
다시 백닥은 고추대를 태워 우려낸 잿물로 6-7시간 삶아 수작업으로 잡티를 제거한 뒤 돌 위에 놓고 나무 방망이로 40-60분간 두들긴다.
반죽이 된 백닥을 `황촉규'라고 하는 식물 뿌리에서 축출한 닥풀과 함께 물에 넣고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저어준 뒤 대나무발을 양쪽으로 흔들면서 뜬 습지를 2장을 겹쳐 말리면 장씨네 전통 한지가 완성된다.
장 옹은 "고추대 잿물이 종이의 탄력과 광택을 유지하게 하고 닥풀은 종이의 두께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장 옹은 10여년에 걸친 한지 기술 개발 끝에 무늬가 있는 한지와 다양한 빛깔의 한지 등을 생산하는데 성공,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대나무발에 요철을 넣어 격자무늬 한지를 만들고 맑은 물에서 자란 이끼를 섞어 푸른색 한지와 옻칠 한지도 만들었다.
현재 장지방에서는 화선지와 도배지, 특수한지 등을 1달에 2천장 정도 생산하고 있으며 가격은 1장에 1천500원에서 18만원까지 다양하다.
특히 국내 잘 알려진 한국화가들이 장지방 한지를 애용하고 있으며 우수성이 일본에까지 알려져 매월 생산량의 절반은 수출하고 있다.
장지방 한지는 주로 주문 판매되고 있지만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장 옹은 이곳에 같은 '장지방'이란 이름으로 점포를 냈으며 현재 큰 며느리가 관리.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한지 제조 설명이 끝날 무렵 아들을 못 믿겠는지 직접 가마솥 불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 장 옹은 "이 세상에 태어나 천년 넘게 보존되는 한지에 이름을 남겼으니 여한이 없다"며 "요즘 사람들이 쉽고 빠른 것만 찾으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고 말했다.
아궁이 장작불을 서서히 태우는 장 옹의 모습에서 천년 한지를 만드는 장인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kyoon@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3/06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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